만 39세 아기엄마의 슬기로운 항암생활

딸기요정 힘을 줘!

by 혀나

'암입니다'라는 말을 함께 들었던 언니는 그날바로 대학병원을 수소문해서 하루라도 빨리 진료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예약을 잡았다. 그렇게 일주일쯤 후에 그날도 언니와 함께 첫 진료를 보러 갔다.


암병원이라니. 처음엔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라 입에 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대기의자에 앉아서 주변을 돌아보니 나보다 젊거나 비슷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젊어도 암 걸린 사람 많다더니 나 말고 없는 거 같은데 이런 뻘생각을 하다 첫 진료를 봤다. 의사 선생님은 검사를 다시 할 건데 맞다고 했는데 아니라고 나오는 경우는 없다고 하시며 지금 상태는 열심히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만 말씀하셨다. 이미 초기는 지난 상태라 바로 선항암으로 몸에 퍼지고 있는 암세포를 잡고 다음에 수술을 하자고 하셨다.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항암치료라니. 내가 아는 항암치료는 머리 다 빠지고 토하고 쓰러지는 그런 모습인데. 수술보다 항암치료라는 게 더 겁이 났다. 그래도 마음을 단단히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은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수밖에. 확신의 대문자 J인 나는 그때부터 항암치료 준비에 돌입했다.


비교적 담담하고 씩씩해 보이는 내 모습에 다들 어떻게 그러냐라고 했었는데 나는 일단 왜라는 질문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내가 왜 암이지? 왜 나지? 왜 내가 뭘 잘못해서?라고 원인과 잘못을 찾으려고 하면 원인을 알 수도 없는데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나 탓하게 되는 마음이 커질 것 같았다. 그래서 왜는 지워버리고 뭘 해야 하는지만 생각했다.


일단 항암제 한 번이면 머리가 다 빠진다고 하니 빠지는 거 보느니 내가 먼저 밀어버린다 하며 머리부터 싹 밀어버렸다. 그때는 동생과 같이 갔는데 담담하게 머리를 밀어버리는 나를 보고 많이 놀라는 것 같았다. 예쁜 가발도 동생에게 선물 받고 일단 한 가지 클리어.


항암가방도 준비했다. 출산가방 싼 게 얼마 안 됐는데 항암가방이라니 참 기가 막혔지만 꼭 필요하다는 물품들을 꼼꼼히 챙겼다. 담요. 물티슈, 수면양말, 빨대텀블러, 읽을 책, 레몬사탕 등등 각종 카페를 찾아보며 가방을 준비했다.


그리고 첫 항암주사 전날. 그때까지 엄마와 따로 자본적이 없던 딸기요정을 친정엄마에게 부탁해서 친정에 재웠다. 새벽에 주사를 맞으러 가야 해서 전날 데려다 놓을 수밖에 없었다. 딸기요정을 데려다 놓고 밤에 집에 와서 누워있으니 마음이 착잡했다. 늘 옆에 있던 아기가 없으니 허전하고 쓸쓸하고. 그날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떨리던 첫 항암주사 맞던 날. 낮병원에 입원해서 정해진 침대에 누워서 하루 종일 주사를 맞고 집으로 가는 일정인데 연세 많으신 어른들 사이에 만 39세라는 내 나이가 어쩐지 눈에 띄는 것만 같고 조금 불편했다. 첫날이라 천천히 주사를 준다고 하시며 중간중간 체크도 해주시던 간호사 선생님들의 따뜻함에 조금씩 떨리는 마음도 진정이 되었다. 주사 맞으면서 쇼크가 오기도 하고 속이 뒤집히기도 한다는데 나는 아주 괜찮았다. 부작용도 없었고 점심도 싹싹 비우며 맛있게 먹었다.


주사는 잘 맞았지만 부작용이 오는 것까지 막을 도리는 없었다. 주사를 맞고 10일 정도가 가장 힘들었는데 뭔가를 먹는 게 그렇게 고역일 수가 없었다. 음식맛이 다 이상하게 느껴지면서 넘어가지가 않았다. 거기다 구토와 오심이 오는 건 그저 레몬사탕이나 먹으면서 견딜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름 부작용을 줄여보려고 아침에 운동도 열심히 하고 안 넘어가는 밥이지만 세 숟가락만 먹어보자 하면서 마음 크게 먹고 오랜 시간이 걸려도 꼭 먹었다. 구내염이 생기면 고역이라길래 죽염과 프로폴리스도 꼬박꼬박 썼고, 새까매진 손에 손톱영양제도 꼭 발라줬다.


그렇게 지독한 선항암을 6번이나 하면서도 무엇보다 슬프고 우울한 마음에 빠지지 않고 평범하게 일상을 살 수 있었던 건 딸기요정과 함께했던 게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아프다는 걸 모르는 아기는 전과같이 해맑고 이뻤고 밝았으니 내가 슬퍼질 겨를이 없었다 사랑스러운 아기를 아침에 깨워서 밥 먹여서 어린이집 보내고 오후에 손잡고 집에 와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다 보면 지금의 내 상황은 잊고 그냥 평범한 일상 그대로를 살 수 있었다. 작은 집안일조차 숨차게 힘들었지만 아기가 있어서 겁났던 마음이 결국은 아기가 있으므로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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