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지만 나도 누군가의 딸이다

엄마 아빠 미안해

by 혀나

내가 암에 걸렸다는 걸 알고 엄마가 가장 먼저 한 얘기는 내가 아프지 왜 젊은 네가 아프냐였다.

나도 엄마가 되고 보니 그 말이 정말 마음 아팠다. 내 자식이 아픈 것보다 차라리 내가 아픈 게 훨씬 낫다.


나는 딸 셋의 둘째로 사실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의 사랑을 충분히 받는다고 생각하진 않았던 거 같다. 아빠는 첫딸인 언니를 눈에 보이게 더 많이 사랑하셨고 엄마는 막내인 동생을 예뻐하셨다. 사실 내가 아기를 딱 하나만 낳고 싶었던 것도 결혼을 늦게 한 탓도 있지만 둘 이상 낳아서 사랑을 똑같이 주는 게 어렵다면 하나만 낳아서 충분히 사랑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이를 30살 넘게 먹도록 부모님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게 내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초등학생 일 때 하루는 배가 많이 아팠었는데 그날따라 언니와 동생이 다 아프다고 찡얼거려서 나는 아프다는 말을 못 하고 그냥 참고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자매가 많다 보니 그중에 부모님에게 좀 덜 칭얼거리는 그런 포지션을 스스로 찾아갔던 거 같다. 그래서 나이를 먹고 애를 낳았어도 나는 부모님에게 도와달라고 하거나 부탁을 하는 게 좀 어려웠다. 몸이 안 좋아져서 그랬는지 퇴근하고 아기를 데리러 가면 숨이 턱끝까지 차는 느낌이라도 엄마에게 아기 밥 좀 먹여달라는 얘기가 입에서 절대 안 떨어져서 한 번도 부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해본 적 없던 부모님께 부탁하기를 시작했다. 새벽에 병원에 가서 항암주사를 종일 맞으려면 남편도 휴가를 쓰고 같이 가야 해서 아기는 전날 부모님께 부탁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항암주사를 맞고 컨디션이 급격히 안 좋을 때도 부모님이 아기를 봐주셔서 정말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다. 입맛이 떨어져서 밥한술 넘기기 힘들 때도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서 조금이라도 먹어보라고 챙겨주셔서 엄마 앞이니 억지로라도 먹고 기운을 차리곤 했었다. 특히 수술을 했을 땐 입원도 길게 했고 회복할 때도 시간이 필요해서 그때도 엄마 보고 싶어서 찡얼거리는 딸기요정을 얼르고 달래 가며 보살펴 주셨다. 그리고 엄마는 지금까지 가본 적 없는 교회를 나가기 시작하셨다. 매주 빼놓지 않고 가셔서 늘 내 건강을 빌고 오신다. 그렇게 나이 드신 부모님은 엄마가 된 아픈 딸을 지켜주셨다.


아이러니하게도 몸이 아프면서 부모님께 사랑받는 느낌이랄까. 나이 드신 부모님께 근심걱정을 안겨드렸으면서 오히려 나 스스로는 못 받은 사랑을 챙겨 받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부모님이 계셨기에 항암치료나 수술 모두 걱정 없이 마음 편히 받을 수 있었고 지금도 병원에 갈 때면 딸기요정의 등하교를 챙겨주신다. 몸에 좋은 건 나부터 챙겨주시고 어떤 스케줄도 내 병원 스케줄에 앞세우지 않으시는 모습에 부모님의 사랑을 의심했던 지난날의 내가 부끄럽다.


내가 암에 걸려서 치료받는 이런 상황이 없었다면 절대 몰랐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40, 50살이 되어서도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을 어딘가에 남겨두었을 것 같다. 그러나 암치료를 받으며 그런 마음의 구멍도 다 메워진 느낌이다. 참 자식은 이렇게 이기적이다. 부모마음에 큰 상처를 냈으면서 자식은 이렇게 위안을 받는다. 내가 딸기요정을 지키듯이 부모님도 이렇게 나를 지켜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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