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만 꾸셨군요?
어릴 때 봤던 달력 속에 그 풍경을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쨍하도록 파란 하늘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 거대한 흰 산이라니.
비록 달력 속 사진이긴 했으나 이상하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좀처럼 눈이 쌓이지 않는 남쪽 땅에서 겨울, 날이 흐리면 마냥 눈을 기다렸다.
조금 더 자란 후에는 첫눈 내리는 날을 홀로 기념하며 기록하곤 했다.
산에 살았기에 숲은 편안했고 가끔 찾아오는 손님 같은 눈이 그저 아쉬웠다.
그때부터 흰 산을 향한 그리움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2021년 9월 12일 첫 훈련이다.
북한산 우이동 육모정 → 영봉 → 위문 → 대동문 → 대남문→ 비봉 → 족두리봉 → 불광동 장미공원
고향에서 산 시간보다 서울살이가 더 길어진 지금, 서울에 육모정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훈련이 아니었다면 이곳을 찾아들 일이 과연 있을까 생각하며 집합 장소로 향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이르니 아직 시작조차 안 했는데도 등에 땀이 차기 시작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간이검사와 배낭 무게를 체크하는 것으로 공식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원정 훈련은 어떻게 하는 건지 늘 궁금하기만 했는데 자그마한 저울로 내 배낭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봤다.
10kg.
오늘 나와 함께 할 무게를 저울로 확인하며 4조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들을 이곳까지 이르게 한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하며 첫 훈련이라는 설렘으로 길을 나선 것도 잠시.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걸으려니 자꾸 땅으로 누군가 나를 끌어내리는 느낌이다.
이 계단은 대체 누가 다 이곳에 만들었을꼬? 괜히 길을 타박하며 쏟아지는 땀을 닦아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예방접종을 하고 난 후라 유난한 건지 아니면 9월의 기온 탓인지...
비루한 내 몸 탓은 안 하고 눈두덩이 위에 맺힌 땀이 뚝뚝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이대로 장미공원에 이를 수 있을까 스스로를 의심하며 영봉에 도착했다.
앞서 가는 사람들의 호흡을 좀처럼 따라가기 버거웠다.
한참을 뒤쳐져 걸었는데도 숨이 편안해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인수봉이 환하게 열리는 영봉에서 겨우 숨을 돌린다.
인수봉을 바라보다 여기서 불광동까지는 얼마나 걸릴지 아득했다.
영봉-위문-대남문-비봉-족두리봉 모두 한 번에 걸어보지 않은 길이니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제 시작인데 흘러내리는 땀으로 벌써 눈이 따갑다.
끝이 오긴 하겠지.
서둘러 배낭을 메고 위문을 향해 하염없이 올랐다.
힘이 들어 저절로 땅만 쳐다보며 앞을 향해 걷는데 산길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이 조차도 느리다고 여기저기서 타박의 소리가 들리니 마음만 부산스럽다.
홀로 느리게 걷는 산행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서둘러야 하는 이 속도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마음처럼 움직여지지도 않는 몸이 기어이 탈이 나려나 보다.
대남문쯤 이르렀을 때 다리 근육이 뭉치는 것이 느껴졌다.
급한 대로 다리를 툭툭 치며 걷다 구조대 분이 나눠준 알약을 입에 넣었다.
이런 내가 퍽이나 한심했다.
우리 곁에서 훨훨 나는 듯 걷는 연맹 이사님이 쥐 나는데 특효라며 밥 한 끼 값의 스포츠 보조식품을 한 봉지를 주셨다.
효과가 바로 있을 거라더니 신기하게도 얼마 가지 않아 뭔가 몸이 나아짐을 느꼈다.
약(?) 기운을 빌어 앞서간 대원들의 흔적만이라도 좁혀봐야 할 텐데...
좀처럼 그들을 만날 수가 없었다.
원정을 간다는 대원이 몸을 만들어서 훈련에 참여하기는커녕 배낭만 짊어지고 마실 나온 꼴이라니...
얼굴이 벌게지도록 바삐 걸음을 걸었는데도 나는 한참 뒤처져 있었다.
겨우 끝을 향해 다다르기는 했으나 어느새 여름 긴 해가 서쪽으로 저물기 시작한다.
힘룽 히말을 향한 나의 첫걸음은 이렇게 무겁게 끝이 났다.
흰 산을 걸어보는 게 꿈이라면서 정말 꿈만 꾸고 살았다.
이 길이 까마득한 건 오로지 그 이유가 전부다.
부끄러웠다.
난 정말 꿈만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