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 모르겠다.
처음 서울시산악연맹에서 2022년 힘룽 히말 원정대를 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비용이 얼마나 들까 생각했다.
어디를 가느냐보다 돈을 먼저 생각하는 현실이 슬프긴 하지만 일단 신청이나 해보자 마음먹었다.
한 번씩 앞뒤 재지 않고 튀어나오는 무모함으로 '에라 모르겠다. 저지르고 보자.' 싶어 아무 생각이 없었나 보다.
상비군이라는 어색한 이름의 지원서에 몇몇 없는 경력을 적어 내고 나니 그때서야 퍼뜩 꿈만 꾸고 살았던 나 자신에게 할 수 있겠어?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서류 심사 합격 문자를 받고 내가 뽑혔다는 기쁨도 잠시 나를? 굳이? 왜? 하며 스스로를 부정하는 나를 보고는 참 못났다 싶었다.
그때부터였다.
꿈꿨으니 여기까지 온 거지 하는 마음이 들었고 그냥 한번 덤벼보자 했다.
그렇게 2차 훈련을 마치고 얼이 빠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앞으로 어떤 길이 펼쳐질까 두려운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2차 훈련 : 2021.09.26 일요일 09:00
불암산공원 - 불암산 정상 - 덕릉고개 - 수락산 정상 - 도정봉 - 장암 고가교 굴다리
어찌어찌 저 길을 모두 완주했으니 그거면 된 거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훈련을 마치고 강평을 듣고 있으니 다시 쪼그라드는 건 또 뭐란 말인가?
길에서 만난 찰나의 순간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귀 기울여봐야지 했으나 걷는 내내 내 호흡 하나도 버거웠다.
때론 사람들과 함께 걷고 있으나 혼자 가는 먼 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포기하면 쉽다는 대장님의 말을 듣고 있으면 어쩐지 저 농담 섞인 진담이 나의 경우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의지를 다지기도 하니 이 무슨 모순인지 모르겠다.
조원들과 함께 걸으면서 뒤처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 많은 것들을 놓치고 스쳐 보냈다.
홀로 산행을 할 때는 꽃과 나무를 보며 걷는 시간이 2차 훈련을 하는 동안은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수락산의 기차바위를 지날 때 대원들이 모습이 눈에 들에 왔다.
잔뜩 움츠리며 걷는 나를 뒤로하고 사람들은 배낭이 무거울 텐데도 다들 잘 걷는구나 했다.
아니다.
우리 대원들은 원래 쭈욱 잘 걸었을 거다.
나만 더딜 뿐.
그날 훈련이 아니었다면 도정봉 부근을 지나갈 때도 이런 봉우리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곳이 526M인것도 나중에 사진을 보고서야 알았다.
길이 엇갈린 대원을 함께 기다리는 동안 처음으로 함께 걷는 사람들을 조금씩 쳐다볼 여유가 생겼다.
나만큼 땀 흘리는 사람도 그다지 없어 보이고 땀 한번 안 흘렸다는 이사님의 얼굴도 쓱 보였다.
줄곧 길잡이를 하며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선배님도 보이고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도 잘 걸어오는 선배님의 모습도 보였다.
후미를 독려하며 마지막을 함께 해주시는 이사님의 고마운 얼굴도 보이고 끈기 있게 걷고 있는 또 다른 대원의 모습도 보였다.
통신이 원활하지 않는 곳에서 머물다 보니 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한참을 이름을 불러가며 기다렸던 대원은 벌써 내려갔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다.
아무렴 나보다 늦을 사람이 있으려고?
한참을 쉬고서 차분해진 호흡으로 돌아오고서야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갈 수나 있겠어? 하는 자기 불신에다...
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불확실이 겹치는 길을 2주 차 훈련에서도 만났다.
굴다리를 날머리로 오늘의 걸음을 마무리할 때쯤 여러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힘들다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거면 아직 살~아~있~네~? 했다가도
이렇게 느려서 어떻게 원정을 가겠냐는 채찍질에 홀로 뜨끔거렸다.
이쯤 되면 나도 모르겠다.
일단 걷고 보자.
다음엔 좀 더 정신줄을 잡아 길과 사람에 집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