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안 나도 괜찮아.
올해 읽은 책 중에 유난히 가슴에 콕 박힌 한 마디.
"빛이 안 나도 괜찮아. 하지만 따뜻해야 해."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중에서
힘룽 히말 훈련을 두 달여 참여하면서 이곳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들을 놓칠 세라 정신줄을 겨우 부여잡고 걷고 있는 내가 모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산악회에서 힘룽 히말 원정 훈련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평소 후배들에게 별다른 조언을 하지 않는 형님께서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다 잘하려고 하지 마. 딱 한 가지만 잘하면 돼."
처음 입회했을 때도 내게 이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이번에도 어김없다.
그 사람 하면 이거라고 떠올릴 만한 그거 하나만 잘하면 된다고.
찾아보면 산에서 잘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냐며 지그시 말씀하신다.
탁월한 등반 실력이 갖추든지 빼어나게 잘 걷든지 하물며 술이라도 잘 마셔 사람들의 뇌리에 확 박히게 하든지 그 무엇이든 너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잘하는 걸 찾으라는 말이었다.
함께 걷는 대원들은 무엇을 잘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민소매 옷을 입고 걸으며 남다름을 보여주는 곽노성 님의 노익장
시인이라니... 그 어려운 시를... 최영규님의 걸쭉한 입담
압력 밥솥의 구수함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억만님이 나눠주시는 따뜻함
조용한 카리스마를 가진 김상헌님의 파이팅
산에 다니지 않을 것 같은 반듯한 외모를 가진 신현택님의 경험
독보적인 아우라 이숙경님 걸음
막걸리를 좋아하는 이우진님의 우리 술 사랑
홍삼의 힘, 양형열님의 넉넉한 마음
클라이머 느낌 물씬 나는 김민수님의 삘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지칠 줄 모르는 에너자이저 남궁만영님의 체력
혼자만 먹기 아까운 반찬을 고루 베푸는 이동재님 맛깔
잊을 수 없는 망고의 맛, 김광영님의 나눔
배낭 하나로 이목을 집중시킨 이태옥님의 존재감
풍성한 간식 나눔으로 늘 든든한 윤정필님의 미소
팔자로 걸어도 거뜬히 날아서 걷는 안혜정님의 헤어 나오기 힘든 마력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의 소유자 최안숙님의 정신
산행 경험을 재미나게 풀어내는 작은 김민수님의 츤데레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을 것만 같은 이건진님의 말발
함께 걸어본 기억이 없어 아쉬움으로 남는 선한 인상의 남형윤님
인간성이나 얼굴로나 빠짐없이 다 갖춘 영원한 막내 허범님
그 외 잠시나마 함께한 대원들이 떠오른다.
한 사람 한 사람 대원들을 생각하다 문득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궁금해졌다.
빼어나게 빨리 걷는 것도 아니고 특출 나게 뭐하나 잘하는 것이 없어도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만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빛나지는 않아도 그들 안에서 따뜻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그들과 함께 네 번의 훈련을 함께 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조금씩이나마 기록해보자.
각자의 길을 걸어왔던 사람들이 지금은 이렇게 치마루 암장에 모여 한 길을 바라보며 훈련을 한다.
이 시간은 각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참 궁금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쭉 기록할 수 있기를 꿈꿔본다.
욕심내거나 조바심 내지 말고...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여전히 알 수는 없지만 설령 무엇이든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오로지 따뜻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