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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풀 Jan 31. 2022

힘룽 히말 가는 길 5

희미한 희망

드디어 말로만 듣던 불수사도북이다.

4차 훈련을 하는 동안 매번 설레고 두려웠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까지 약 40km 정도의 거리를 걷는다.

쉽사리 길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길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을 쪼개서 기억하는 탓에 감조차 오지 않는다.

이 산 다섯 봉우리가 한눈에 쫙 보이면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광양 백운산에서 멀리 곧게 뻗은 산을 바라본 적이 있었는데 누군가 지리산이라고 이야기를 해서 처음으로 지리산 전체를 바라볼 기회가 있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자로 쭉 뻗은 것이 전혀 다른 산을 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광양 백운산에서 바라본 지리산

내 갈 길이 눈앞에 이렇게 명확하게 보인다면 꿈이 좀 더 가깝게 느껴질까?

훈련을 하며 길을 걷다 문득 '선발'되어야만 한다는 '무게'와 가고 싶다는 '목표'가 이 불수사도북을 닮았구나 싶었다.

이 막연함은 언젠가 실체로 다가오겠지만 출발을 앞에 두고 있으니 여전히 아득하기만 한 길이다.

첫 훈련부터 두 달은 쫓아가느라 바빠 제대로 길을 보지도 못해 버거웠다면 이제부터의 길은 좀 달랐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새로 만난 조원들과의 만남이 설레는 것처럼 앞으로 걸을 이 길도 계속 두근거렸으면 좋겠다.


파란 하늘과 햇살이 숲을 감싸던 토요일 아침.

드디어 출발이다.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느껴지는 족두리봉을 시작으로 길을 나섰다.

땀이 차오르기 시작할 때쯤 쉬어가자는 구원의 목소리.

걷는 일이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면 이렇게 쉬는 시간에 만나는 사람들의 유쾌한 목소리와 미소가 으뜸 아닐까?

유난히 경쾌한 웃음과 미소가 고운 이들이 많은 이곳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함께 호흡을 가다듬으며 '쉼'

앞으로 나아감을 잠시 멈추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먹거리와 마실 것을 나누며 서로를 쳐다보기도 하고 멀리 풍경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간.

더없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날들이 이렇게 쌓여 간다.


지금까지 별다른 사고 없이 무탈하게 함께 할 수 있어 모두에게 새삼 고마워하며 다시 출발.

가을이 들어선 11월 북한산에는 어느새 곳곳에 서둘러온 얼음이 내려앉았다.

한 걸음이 모자라 아쉬운 내 짧은 다리가 건너기를 주저한다.

미끄러운 데다 무거운 배낭까지 몸이 휘청거릴까 조바심이 나는 곳에서 머뭇거리는 나.

어찌 알았는지 살얼음이 깔린 뜀 돌 앞에서 뒤를 지키던 대장님의 손길이 느껴졌다.

슬며시 배낭을 밀어주어 무사히 길을 빠져나온다.

무척 고마웠으나 쑥스러움에 말이 쏙 들어갔다.

한편으로는 주춤하는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그렇게 느린 걸음을 재촉해 도봉산으로 들었다.

늦은 오후 입산이기에 밤 산행이 살짝 긴장되었다.

노을이 살짝 다녀갔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산중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밤이 되니 이 산의 풍경이 또 새롭다.

'하트' 모양의 바위를 발견하고는 홀로 씨익 웃었다.

낮에 봤다면 이 바위가 '우정' 모양으로 보일까? 궁금했다.

도봉산에서 밤에 만난 풍경

쉬다 걷다를 반복하며 살짝 헤매며 걷는 이 산길이 고요하다.

힘들어서 말조차 사라진 이곳에서 앞서 걷는 대원들의 불빛이 멀리서 흔들렸다.

번번이 길이 헷갈릴 때마다 산 중에 반짝거리는 헤드랜턴 불빛이 별빛처럼 고왔다.

그 불빛을 따라 걸으며 발밑을 보며 걷는다.

한참을 걷다 보니 바람이 알싸하게 느껴진다.

밤인데도 땀이 나기도 하고 배에서는 밥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야영지인 회룡역은 아득하기만 하다.

숲을 벗어나 도로를 걸을 때는 딱 여기에서 잤으면 좋겠다 싶었다.

밥을 사 먹을까 해 먹을까 고민하던 조원들과 상의 끝에 짊어지고 온 음식을 해 먹기로 했다.

꽤 늦은 밤 하산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선가 낮은 바람이 불어오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굴다리로 짐을 옮겨 비를 피하기는 했으나 대낮처럼 밝은 조명에 잠을 설쳤다.

밤새 안녕히 주셨을까 궁금한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준비 운동을 시작으로 도정봉을 지나 수락산, 불암산을 마지막으로 대장정을 마치는 일정이다.

늘 놀라운 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앞서 걸으며 우리의 모습을 찍어주시는 최기련 이사님의 모습이 여유롭다.

MZ세대의 감성을 모른다며 대원들을 구박하면서도 번번이 우리의 모습을 멋지게 휴대폰으로 담아주는 마음씀이 고맙다.

불암산 정상을 앞두고 대장님이 2명이 뛰어서 정상 다녀오면 나머지 조원들의 정상행 면제를 제안한다.

솔깃한 찰나 이번 훈련 때 무릎이 조금 안 좋다던 안혜정 대원이 파워젤의 위력으로 허범 대원과 자원해서 다녀온단다.

대단한 녀석들이다.

호기롭게 출발하다 가끔은 느려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 없어 남은 우리들도 정상을 향해 뛰어본다.

차례차례 올라오는 대원들을 마주하며 오늘 훈련도 이렇게 끝나가는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 불암산 공원에 이르러 이틀을 함께한 배낭을 내려놓으니 무사함에서 오는 나른함이 밀려왔다.

이렇게 무사히 긴 훈련을 안전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 모두에게 고마운 날이 또 쌓였다.

이 길었던 하루가 거듭될수록 힘룽으로 가는 이 아득한 거리가 좁혀지기를 바란다.

희미하지만 희망이 살짝 느껴지는 기분 좋은 날이다.

비록 힘룽은 멀리 있지만 마음은 조금 더 가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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