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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온

by 기면민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던 하루가 다 지나고, 다음날을 맞이하기 위해 침대에 아내와 나란히 누웠다. 아내의 차가운 발이 내 다리에 닿을 때면 냉기에 정신이 번쩍 들곤 한다. 아내의 발에 의해 내 다리도 차가워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발과 다리 모두 따뜻해진다.


가만 보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면 조건이 맞아야 하는 듯하다. 첫 번째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따뜻해야 하고 두 번째로 따뜻하더라도 차가워질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 따뜻하더라도 잠시 차가워지는 게 싫다면 그 사람은 돕지 않는다.


요즘 세상이 과거보다 삭막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과거엔 다들 추웠기에 서로 뭉쳐 조금이라도 서로가 따뜻하고자 했다. 반면 지금은 따뜻한 사람과 추운 사람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고 게다가 더욱더 따뜻한 사람을 주변에서 손쉽게 볼 수 있기에 따뜻한 사람이 스스로 춥다고 생각하여 추운 사람에게 체온을 나눠주길 망설인다. 본인이 적당히 따뜻한 거로는 만족하지 않는데 과연 누굴 도울 수 있을까….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사회는 삭막해진다고 한다. 그로 인한 피해는 본인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다. 추운 걸 넘어서 얼어붙은 자들은 타인의 옷을 빼앗으려 들 것이다. 그런 자들이 많아질 것이고 주변에서 그들을 맞닥뜨릴 경우 또한 많아질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우리가 잠깐 차가워지는 걸 감내하면 서로 따뜻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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