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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문꾼 Jul 28. 2021

긴 글은 싫어도 책을 사는 이유


 당신은 초보라는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얼마 전 다이어트를 시작하려고 헬스장 등록을 했다. 헬스장에는 어떤 계급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옷으로 이것을 구별할 수 있다. 배꼽이 보이는 형광색 탱크탑에, 검정색 아이다스 타이즈를 입은 누나의 레벨이 가장 높다. 그다음은 겨드랑 사이로 속이 다 보이는 민소매를 입은 근육 형님이다. 내 옷은 프런트 앞에 놓여 있다. 찜질방 입구에서 나눠줄 법한 회색 체육복이다. 아참, 핑크색은 여성용이다.


 초보인 나는 그들 앞에서면 작아지기 마련이다. 가슴을 모아주는 운동을 할 것처럼 생긴 기계 앞에서, 설명서를 보고 동작을 시작했다. 5번 정도 팔을 모았다 폈다를 반복할 쯤, 나를 지켜보고 있던 근육 형님이 다가왔다.

           

“그렇게 하시면 자극을 못 받아요. 어깨 나갈 수도 있고요.”    

      

 그는 나의 자세를 교정해주었고, 무엇보다 친절했다. 부담스러웠지만, 빠른 인정. 난 초보니까. 그리고 형님의 조언을 의식하며 팔을 몇 번 들썩이다 자리를 떴다. 결국, 이 찜질방 옷을 입고 할 수 있는 운동은 정해져 있다. 자연스레 나는 런닝머신 위에 올랐고, 간섭받지 않았다. 그리고, 3일 뒤 부터 헬스장을 나가지 못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새로 산 플래너에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워왔다. 첫째가 다이어트였다면, 둘째는 독서였다. 헬스장에 등록하듯 한 달에 한 권 이상 꾸준히 책을 샀고, 몇 번 못 나가고 그만두듯 몇 장 못 넘기고 덮었다. 

       

 차이가 있다면, 독서만큼은 초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읽고 쓸 줄 아는, 한국어를 구사하는 네이티브 스피커니까. 무엇보다 책장에 있는 책을 바라만 봐도 배불렀다. 마치 그것을 다 읽은 것처럼. 내가 샀던 책을 다른 장소에서 보면 반가웠고, 대충 저런 내용 이었다고 읽은 척도 하고 싶었다. 당연히 SNS에도 책 표지가 보이게 커피사진 찍으며 해시테그를 단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커피스타그램#책읽남 #일상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늘 찝찝했다. 책장의 책은 가득 찼는데, 끝까지 읽은 게 손에 꼽혔고, 그마저도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책에 대한 내 허영심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더라. 그렇다면 나의 문해력은 단탄장토(短呑長吐)다. 짧으면 삼키고, 길면 뱉는다. 이미 긴 글을 못 읽은 지 2년쯤 되었다. SNS와 커뮤니티를 오가며 재미있는 자료를 보다가도, 어떤 후기 따위가 나오면, 3줄 요약이 필요했고, 그마저 없으면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다. 내 이해는 점점 영상 자료에 익숙해져, 궁금한 것이 있으면 유튜브로 보았다. 본론으로 가기 전에 구독을 원하는 그들의 인트로가 포함되었고, 중간 광고를 보아야만 마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그마저도 산만해서 뭔 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문해력. 그것은 읽고 쓸 줄 아는 이들에게 마치 그림자 같은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 하지만 없다면 분명 문제가 생기는 것.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이런 현상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주인공 슐레밀은 어떤 파티에 참석하게 된다. 그곳에서 낯선 이로부터 이상한 제안을 받는다.     


 “이 자루를 선물한 대신 너에게 필요 없는 것 하나를 내게 다오.”        

  

 알고 보니 낯선 이는 악마였다. 악마는 슐레밀에게 돈이 무한정 나오는 자루를 주는 대신 그의 그림자를 요구한다. 계약은 성사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공은 그림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슐레밀의 부를 존경했지만, 그가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자 주인공을 멀리한다. 그림자도 없는 사람하고는 가까이 지낼 수 없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가는 곳마다 천대받았고, 그림자가 없어 사랑하는 이도 떠났다.   

       

 그는 다시 그림자를 받기 위해 악마를 찾아다녔고, 악마는 그에게 새로운 제안을 한다.          


 “죽은 뒤에 나에게 영혼을 넘기시오.”     


 악마의 제안에 주인공은 갈등한다.     


 김영하 작가는 그의 저서 <여행의 이유>에서 그림자를 ‘성원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무엇’이라 인용했다. 읽고 쓴다는 것. 그것은 그림자와 같다. 오늘 날 유튜브와 세줄요약으로 대체할 수 있어 쓸모가 없어 보여도, 막상 바꾸자니 아깝다. 없으면 천대받을 것만 같기 때문에.

   

  읽고자하는 마음과 쓸모 사이의 괴리 때문일까. 문해력에 대한 성원권은 부끄러운 습관을 낳았다. 책을 사놓고 읽지 않고, 읽지도 않은 책을 굳이 사들이는 습관. 그것은 지적 허영심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것을 자격지심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이것이 무서운 이유는 사람을 연약하게 만든다. 그냥 모를 뿐인데, 내 무식이 탄로 날 거라 여긴다. 쉽게 표현하면 될 걸 어렵게 말한다. 있어 보이는 책 위주로 사게 된다. 당연히 끝까지 못 읽는다. 그리고 점점 책과 멀어진다.   

        

 나는 독서의 진입장벽에 가로막혀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는 독서 초보가 난관을 헤쳐가는 연대기다. 물론 한 사람의 경험을 성급히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불친절한 당위도 최대한 자제했다. 그러니까 많이 읽으라고, 다양하게 읽으라고, 여러 번 읽으라는 부류의 조언들은 다 뺐다. 책 좀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런 당위 따위를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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