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똑똑 의심기(doubtful story)

엄기호『공부 공부』서평

by 산문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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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부모는 자녀가 단지 서울대[일류대] 생이 되길 원하고, 진보적인 부모는 자녀가 의식 있는 서울대생이 되길 원한다.” 김규항 칼럼니스트가 『가장 왼쪽에서 아래쪽까지』에말한 문장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샀다. 시끄러운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육과 성공의 상관관계는 이념까지 통합했다.


얼마 전 방영했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시청률은 마지막 회에서 20%를 넘겼고, 우리 사회는 공부에 대한 믿음에 대해 한 번 더 쐐기를 박았다. 입시 코디네이터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출세 장벽 앞에서 겪어보지도 않은 그들의 진학 과정을 공감하고, 좌절을 느낀다. 교육이 잘못되긴 한 것 같은데, 지적하기엔 너무 거창하다. 어디서부터 의심해야 할까.


헛똑똑이라는 말이 있다. 아는 것이 많은 전문가 같지만, 정작 알아야 하는 것은 모르거나,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판단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출세로 연결되는 교육은 우리를 헛똑똑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똑 부러지는 척하면서 물질주의, 경쟁 집착, 각자도생의 현상을 두고, 그저 어쩔 수 없어한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 앞에서 생존해야 하기 때문인데, 물론 전제가 있다. ‘남들에 비해 더 잘 나가야 하는 것.’


01. 자기 한계


이러한 끊임없는 ‘도장 깨기’ 식 경쟁 앞에선, 배우면 배울수록 더 큰 고통만 따를 뿐이다. 『공부 공부』의 저자 엄기호가 말하는 ‘숨의 길이’라는 주제가 참 흥미롭다. 제주도의 해녀학교에서는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이 자기의 ‘숨의 길이’라고 한다. 자기의 숨의 길이를 알아야 물속에서 자기를 망각하고 만용을 부리다 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공부의 첫 단계이다.


Impossible is nothing. 한때, 아디다스에서 사용한 슬로건이다. 의지를 샘솟게 하는 너무 멋진 말이며, ‘한계는 극복해야 하고, ' '뛰어넘지 못하면' 노력을 탓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프레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숨의 길이라는 말이 꽤 무책임하게 들릴 것이다. 한계를 인정하라는 말은 분수를 알고 현실에 안주하며 패배자로 살아가라는 것일까. 저자는 ‘탁월함’이라는 가치로 다음의 의문에 대해 설명한다.


삶의 가치와 의미는 나에게 주어진 것인 1분이나 5분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다루는 탁월함의 정도에 의해 좌우된다. 탁월함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다루는 기예의 문제로 바뀌는 것이다. (중략) 지금은 내 능력이 거기까지 닿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렇기에 그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먼저 집중한다는 뜻이다. (본문中)


02. 주요 과목

주요 과목에 익숙한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국영수대로 세상을 바라보곤 한다. 당장 시험문제에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은 삽시간에 그만둔다. 그것이 일이든, 공부이든, 인간관계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과 조바심은 엄연히 다르다. 저자는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 상황을 참지 못하는 공부의 프레임을 비판한다. 사실 삶에서 ‘성장이 필요한 일’ 은 그것을 통해 느낄 귀찮음, 상처, 시간, 비용이 들기 마련이고, 좌절 그 자체이다. 그러나, 우리는 좌절을 다루는데 익숙하지 않다. 훈련과 올바른 방법론으로 좌절을 다룰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 주요 과목은 이래야 하지 않을까.

03. 똑소리 나는(?)


저자는 40~50대의 소위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부모들에 대해서 말한다. 그들은 공정함과 정의에 대한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자식들이 부모를 바라보는 관점은 열등하다. 우리 엄빠는 하나같이 고상하고 합리적이고, 지적이며 우아한데, 본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주눅 들게 되고, 부모의 합리성에 경멸을 느끼게 된다. 그들이 바라보는 부모는 문제가 생기면 ‘차분하고 끈질기게’ 말로 묻고, 말로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부모도 자기 딴에는 평화롭게, 평등하게 다양성을 존중하며 비폭력적으로 대했지만, 반박하지 못하는 ‘말 못 하는 사람’을 무시한다. 천박하다 생각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 깔보는 태도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스스로의 똑 부러짐에 취해 누군가를 좀 먹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겠는가.



영화 <관상>의 마지막 장면에서 관상가가 파도를 보며 말한다.

파도를 만드는 것은 바람이거늘 파도만 볼 줄 알았지, 그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진 못했다.

배움엔 끝이 없다고 하는데, 한평생 재미없고, 매번 누군가를 이겨야 하며, 그때마다 해치워야 하는 공부라면 이만한 고문이 어딨을까. 공부는 재미있고, 지속 가능하며,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배울 줄 아는 자가 되어 '배움'자체를 배움으로써, 바람을 볼 지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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