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어떻게 살 것인가』
얼마 전, 은행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작년 가을에 입사한 신입사원이다.
“야 일주일 전에 인사이동으로 우리 지점으로 발령 온 대리님이 있거든? 근데 나 우리 회사에서 찍혔잖아. 이 사람도 내 소문을 안 좋게 들었는지, 상종도 안 해. 다른 사람들하고는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게 보이는데 난 아얘 없는 사람 취급한다니까? 심지어 인사도 안 받아. 어이가 없어서.”
사실 그는 같은 일을 하는 내가 모든 상황을 이해하리라는 기대에 자주 묻곤 한다. 남자들의 통화는 대체적으로 용건만 간단하기에ㅡ 사실 귀찮음이 대부분이지만 ㅡ채 1분을 넘기지 않는다. 하지만 입사 경력 5년이라는 시간은 그것이 무슨 훈장이라도 된 마냥, 미묘한 우월감에 취해서 1년 차에게 조언을 뿜었다. 30분이 넘는 통화시간이 서로의 자별함을 보여주었고, 고맙다는 친구는 마지막 말을 던지고, 통화를 종료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 그냥 무시하라는 거지?”
사실 그 말이 아니었는데, 허탈했다. 30분의 대화를 한마디로 요약하기엔 내 디테일이 훼손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의 경험이 한 달 정도 숙성되었고, 다시 한번 돌이켜본다. 친구의 결론은 당연했고,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과연 그날, 그가 필요했던 것은 조언이었을까. 털어내고 싶은 본인의 넋두리였을까. 얼마 전, 초등학생이 말한 인터뷰의 구절이 떠오른다. “간섭보다 싫은 것이 충고다.”
사람들은 충고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공을 최고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언어는 대부분 이런 식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3가지 법칙.' 이렇게만 하면 여러분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해주지만, 대부분 행동까지 연결되지 않고 휘발된다. 나도 다 아는 말을 대놓고 드러내기 때문이다. (#잔소리) 한 가지 확실한 건 유시민의『어떻게 살 것인가』(생각의 길, 2013)는 그런 충고에 관한 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먹고살기 바쁜 세상에서는 걱정도 바빠진다. 조언이랍시고 무심코 던지는 냉소의 언어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 받는다. 유시민은 이것들을 다듬는다. 그의 책은 살아가는 데 있어, 좀 더 괜찮은 언어를 알아가는 책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듯이 잘 다듬어진 말은 듣기도 좋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개인을 탓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의 대화방식은 다음과 같다. “너의 노오력이 부족해서 그렇다.” 그리고, ‘일침’ 따위의 냉철한 언어가 자신을 대변한다고 착각한다. 헛소리를 들었는데 듣는 이의 마음이 와 닿을 리가 없다. 노력의 한계에 부딪히게 된 개인은 제도를 탓하며, 세대 간의 갈등은 좁혀지지 않는다. 이틈을 타 '힐링'이 (누군가의 아픔으로) 돈을 벌어들이니, 갈등은 증폭된다.
저자의 언어는 조금 다르다.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타인의 위로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삶의 의미는 국가나 사회가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찾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서로가 남들을 조금 더 배려하고 제도를 합리적으로 바꾸기만 하면, 모두가 존엄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지 않나 걱정한다." (p.51)
내가 올린 기안문이 틀어지고, 업무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일을 떠맡는다. 원칙적으로 안 되는 일을 가지고 돌아갈 길을 고민하고, 책임지지 않을 방법을 생각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을 당하는 말이다. “남의 돈 버는 게 쉬울 줄 알았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직장 다니면서 어쩔 수 없지 않냐’며, 차라리 안 한만 못하는 위로를 던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저자의 비법(秘法)에 위로받는다.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인데, 그는 거리감을 활용한다. "세상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삶이 사랑과 환의와 성취감으로 채워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좌절과 슬픔, 상실과 이별 역시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하면 좌절감, 패배의식, 상실감, 절망감, 외로움, 자기 비하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통제하고 조절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p.89)
이것이 뻔한 소리 같아도 문제 안에 빠져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거리감이라는 말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엄연히 다를 것이다.
사랑에 유효기간을 두는 것 만한 어리석음이 또 있을까.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의 조언을 인생의 진리인 듯 여기며, 초를 친다. '얼굴은 3개월, 성격은 3년, 요리는 30년.' 그리고 덧붙인다. “너가 한번 결혼 해봐라. 그럼 알 거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평생의 동반자가 결국 <밥 잘하는 그냥 누나>다.
유시민은 사랑에 대해 위로한다. 그는 "몸과 마음을 다 알고 나면, 설렘과 황홀감이 있던 자리에 편안함과 친숙함이 차지한다.(p.206)"고 했다. 결혼을 하면 김칫국 묻은 면 티를 그대로 입은 아내의 모습도 보겠고, 화장을 안 한 모습을 더 많이 볼 것이다. 남편은 수트 대신 트렁크 팬티 바람으로 다닐 것이고, 방구를 트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농담도 서슴없이 던지겠지.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라고, 우리는 의리로 산다고.’
물론 이런 발상이 자연스러운 딜레마겠지만, 나도 모르게 장난을 품고 던지는 언어가 야금야금 사고를 지배할 수 있다. 성적 교감을 들여다보는 저자의 말이 통찰이 된다.
"배우자에 대한 사랑은 그 배우자가 동성이든 이성이든 성적 욕구와 교감이 기초가 된다. 이것 없이도 가족관계를 유지할 수는 있지만 이것 없이는 온전한 배우자라고 할 수 없다.'가족끼리 섹스하는 건 근친상간이야.'이것은 중년 남자들이 하는 농담 가운데 단연 최악이다. (p.208) "
옛날에 박상길이라는 백정이 시장에서 고기를 팔고 있었다. 한 양반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얘 상길아, 고기 한 근 줘라.” 또 다른 양반은 상대가 비록 천한 백정이라도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박서방, 여기 고기 한 근 주시게.” 같은 고기라도 상길이가 주는 고기와 박서방이 주는 그것은 엄연히 다르다.
아무리 좋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더라도 전달하는 언어가 와 닿지 않으면, 그 진심은 추락한다. 몸에 좋은 세상의 모든 말은 그 맛이 너무 써서 의미가 왜곡될 수 있다. 이것을 개운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유시민의 언어다. 나는 이것을 진정한 위로라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