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고 있잖아.

전달되지 못한 말, 그 침묵 너머.

by 나린글
내가 말하고 있잖아.jpeg

별점: ★★★★★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해외 생활을 했던 나는 최근 아예 한국에 들어왔다. 몇 년간 넘어 화면 속 책만 보다 종이책을 펼치니 얼마나 편안한 지 모른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거의 10년 만이라 책을 찾는데도 꽤나 오래걸렸다. 숫자며 글자며 얼마나 복잡하던지. 여튼 친구의 추천을 받아 읽었던 "내가 말하고 있잖아". 짧으면서도 강렬했던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사실 책을 끝내고 난 이후에도 나는 주인공의 진짜 이름을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체구가 왜소하고 키가 작으며 소심한 아이라는 건 알지만 그의 이름만은 끝내 알 수가 없었다. 글 중간에 나왔을 수도 있다. 내가 그저 까먹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주인공의 이름이 이야기 내내 언급되지 않았다면 그곳에 분명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은 말을 하지 못한다. 말은 한다. 그런데 말을 전달할 수가 없다. 나는 ‘말을 한다’는 것과 ‘말이 전해진다’는 것 사이엔 꽤 깊은 간극이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입은 열려 있지만 그 단어들이 상대에게 닿지 않는다. 아니, 닿기 전에 길을 잃어버리는 느낌이다.


그는 말을 심하게 더듬는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한 언어 교정원에 등록하게 된다. 그의 회상으로 보건대 이 언어 교정원은 그가 처음으로 간 곳은 아닌 듯하다. 여기도 저기도 떠밀리듯 다니다가 결국 이곳에 온 거다. 하지만 이 글은 단지 주인공이 말을 고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훨씬 더 깊은 내면을 건드린다.

주인공은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가난했고, 불안했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늘 어딘가 어긋났다. 어릴 적 친구와의 다툼이나, 어머니의 무심한 말 한마디, 교정원 선생님의 차가운 시선. 그는 단순히 말을 더듬는 게 아니라, 사회에서 계속해서 밀려나는 존재처럼 그려진다.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 말은 마음의 통로인데, 주인공은 그 통로가 막혀있다. 막혀 있는 건 단순히 혀나 입이 아니라 세상이 그를 향해 귀를 닫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그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 사실이 더 슬펐다.


책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나는 왜 제목이 "내가 말하고 있잖아" 인지 실감했다. 그는 계속 말하고 있었다. 끝없이. 듣지 않는 세상 앞에서 오히려 더 필사적으로.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말은 하고 있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말의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 느낌.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이 이야기는 단순히 더듬는 소년의 성장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어본 외로움과 단절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이 소설은 짧지만 속은 굉장히 무겁고 깊다. 언어 이전의 마음, 소통 이전의 고독, 그리고 그 안에서 겨우겨우 뻗어나가려는 한 인간의 노력.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말이라는 게 얼마나 연약한 동시에 얼마나 강렬한 무기일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읽는 내내 그리고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래도록 마음이 울렸다. 누군가의 말을 정말로 듣는다는 건 단순히 귀를 여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