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몇 번이고 이야기해도, 끝내 다 말하지 못할 이야기.

by 나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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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 ★★★★★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대한민국의 정의를 위해 싸웠던 수많은 시민 군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이 책은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광주의 거리에 나아가 싸운 이들, 젊은 학생들, 청년들, 중년들, 그리고 노인들의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매일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니는 거리, 먹는 음식, 쉴 수 있는 보금자리, 그리고 부정함을 외칠 수 있는 ‘자유’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역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어려워서 외면했던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중대한 사건조차 잘 알지 못했고, 국사 공부를 제대로 해본 기억도 없다. 지금은 조금씩 배워나가는 중이지만 여전히 역사라는 것은 어렵고 무거운 주제다. 그러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처럼, 나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미래가 준비된 국민’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계엄령, 독재 정치, 전쟁. 잔인한 역사의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인간의 잔혹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 아닌가. 모두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가는 이웃사촌들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리는 이토록 오랜 시간, 같은 비극을 반복해 왔는가. 고작 돈이나 권력을 위해,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었는가.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쇠와 피 중


이 문장을 읽으며 멈춰 섰다. 그날의 군중 중 몇 명이 어린아이였을까. 그중 몇 명이 고등학생이었고, 몇 명이 중학생이었을까. 혹시 그보다 더 어린아이들도 있었을까. 그 아이들은 그 자리에 서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알고 있었을까.

나는 내 방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그날의 회상을 읽으며 감히 그들의 일기를 엿본다. 그 누구도 듣지 못할 소리로 화내고, 울부짖어본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잔인하고 괴로운 곳이다. 아무도 나의 분개를 듣지 못한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우리의 목소리는 가장 깊은 곳에 묻힌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일곱 개의 뺨 중


이와 비슷한 맥락의 문장을 나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도 읽었다. 극한 상황과 군중의 힘은 인간의 뿌리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드러낸다. 한 사람은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죽음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마지막 빵 조각을 이웃에게 건넨다. 또 다른 이는 권력을 갖자마자 야만이 된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곱 개의 뺨 중


결국,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인간의 잔인성과 냉담함, 그 역겨운 측면이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인간의 지능이나 고유성, 사랑, 순결함은 지나치게 미화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희망을 말한다. 그것은 단순한 슬픔의 기록이 아니라, 연대의 기록이고, 기억의 문학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끝내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세상이 침묵할 때 다시 말하겠다는 약속이다.

책을 덮은 뒤에도 작가의 묘사가 눈앞에 어려 잠들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문학이었지만, 동시에 애도였고 기도였다. 오래된 고통을 누군가 잊지 않고 품고 있었다는 사실 앞에, 나 역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나는 달라졌다. 더 이상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걸을 수 없다. 아무 말 없이 넘길 수 없다. 눈을 감고 귀를 막는 대신, 기억하고 말하고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다시 잔인해지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인간으로 남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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