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엄지 공주
‘드디어! 나도 엄마가 되는구나!’
한 여인이 임신테스트기의 빨간 두 줄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결혼한 지 3년, 처음에는 신혼의 단맛에 빠져 아이가 생기지 않아도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1년, 2년 시간이 지나고,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해봐도 아이는 오지 않았다. 매달 기대에 부풀었고 또 절망했다. 그렇게 숱한 기대와 절망의 반복 속의 어느 날, 암흑 속의 빛 같은 소식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기쁨의 큰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난임으로 고생하면서, 읽고 얻은 온갖 정보에서 우울한 사례를 보았기 때문이다. 산부인과에서도 큰 문제가 없을 거라 했지만, 아무 이유 없이 임신이 안 되었듯이 겨우 붙잡은 이 아이를 잃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행복감마저 누르며 아이를 기다렸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 어여쁜 공주를 만났다. 비록 공주가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작게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그래도 잘 버텨주어 오래지 않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엄지’라는 어여쁜 이름을 지어주었다.
엄지는 또래보다 항상 한 뼘 작았다. 학교 다닐 때도 책가방이 엄지에 비해 커 보여서, 동네 어른들이 책가방에 엄지가 매달려가는 거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엄지는 엄마의 바람대로 당차게 컸다.
“엄마, 왜 내 이름은 엄지야? 엄지는 내 키처럼 짧잖아. 난 싫어!”
“아니야, 엄지야. 만약 누군가 엄지처럼 그림을 잘 그리면 어떻게 하는지 알아? 바로 ‘엄지 척’하면서 최고라고 칭찬해주는 거야. 그래서 엄지는 손가락 중에 가장 대장인 거야.”
하면서 엄마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엄지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따라 하면서 배시시 웃었다.
“그래! 나는 엄지처럼 최고가 될 거야!”
하지만 엄지가 최고가 된 모습을 엄마는 보지 못했다. 몇 해 전 하늘나라에 간 아빠를 만나러 엄마도 세상을 떠났다. 그때 엄지는 갓 서른이었다. 엄지는 세상에서 최고가 된 모습도 행복한 가정을 이룬 모습도 못 보고 하늘나라로 나란히 간 엄마와 아빠에게 너무나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 화가 났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엔 아직도 자신은 엄지처럼 작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엄지는 최고를 의미하는 손가락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자라면서 그 자부심은 다시 가장 작은 엄지손가락만큼 쪼그라들어 있었다. 학창 시절엔 아이들에게 키가 작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았고, 대학에서도 소위 나쁜 남자였던 선배와의 연애로 마음에 큰 상처 입기도 했다. 겨우 학점, 토익, 자원봉사 등의 스펙을 쌓아 동네 행정복지센터 공무원이 되었지만, 이 역시 녹록지 않았다. 쏟아지는 민원을 처리하면서 매 순간 자신의 무능력함에 직면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까지는 그래도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갈 수는 있었다.
그날 아침, 밤새 쏟아지던 비에 잠을 설쳐 찌뿌듯한 몸으로 일어났다. 비가 오고 있으니 출근길에 차가 막힐 것은 뻔했다. 겨우겨우 밖으로 한발 나와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 갑자기 발 위로 두꺼비 한 마리가 뛰어올랐다.
“악! 뭐야?”
두꺼비의 징그러운 모습에 놀라 엄지는 그만 뒤로 넘어졌다. 하필 물웅덩이였고 결국 바지가 다 젖어버렸다. 옷에 스며든 물의 감촉은 마음의 우울함을 더 짙게 만들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차에 손에 이상한 것이 만져졌다. 온몸에 돋는 소름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설마...’
그건 쥐였다. 비에 젖어 더 볼품없어진 커다란 회색 쥐가 엄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엄지는 순간 얼어붙었다.
‘아... 꿈이었으면...’
낙담에 빠질 시간도 없이, 눈앞에 커다란 트럭이 커다란 경적을 울리며 미끄러져 오고 있었다.
“빠앙!!!!!!!!!!!!”
“엄지야! 엄지야. 일어나 봐. 우리 딸 최고지? 얼른 일어나 봐”
‘음... 엄마?’
눈을 뜨자, 하얀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이름이 뭐예요?”
순간 통증이 밀려왔다. 그리고 엄마는 없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이름.....? 엄.. 지.. 요.”
목을 바늘로 찌른 듯 아팠지만, 겨우 이름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엄지를 깨웠던 간호사님이 상황 설명을 해줬다. 빗길에 미끄러진 트럭과 사고를 당했다고 말이다. 이후 정신없이 여러 검사가 이루어져고, 수술과 치료가 반복되었다. 이 참담한 현실에서 머릿속은 터 비어버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운한 인간, 티끌보다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면서 점차 어둡고 습한 연옥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계속 머릿속에서 한 문장이 맴돌았다. “이름이 뭐예요?”
친구의 도움을 받아 퇴원을 했다. 그동안 쌓인 우체통 속 편지와 택배를 친구가 가져다주었다. 그중 밝은 갈색의 택배 상자에 빨간 제비 문양 로고가 박힌 우체국 상자가 있었다. 보낸 사람은 동네 우편집중국이었다. 내용물이 뭘까 하는 생각에 테이프를 뜯어 상자를 열어 보니, 그 속엔 작은 메모가 있었다. 창고 구석에 오랫동안 방치된 택배였다고, 늦게 배달되어서 죄송하다고 말이다. 엄지는 순간, ‘난 정말 운이 없구나, 다들 잘 받는 우편배달마저 나에겐 잘 안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검은 혼돈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껍데기가 엄지를 옥죄는 듯했다. 하지만 내용물을 보고선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어두운 껍질이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그건 엄마의 앨범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모습을 담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담길 사진을 위한 앨범이었다. 앨범 표지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엄지와 함께 가고 싶은 장소들”
엄지를 위한 엄마의 버킷리스트였다. 남산타워, 해운대, 석굴암, 에펠탑, 런던 아이 등, 유명한 여행지들 사진들이 있었다. 그중에 엄마가 크게 별을 그려둔 곳엔 이런 메모가 있었다.
“엄지가 사랑하는 사람과 꼭 갔으면 하는 곳”
그곳은 바로 꽃의 도시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이었다. 어느 소설과 영화에도 나왔다는 그곳, 낭만적일 것 같다고 여러 번 엄마가 말하곤 했던 그곳이었다. 하지만 잊고 있었다.
“엄지야, 여기 봐, 너무 좋다”
그날 밤 꿈에, 엄지는 엄마의 손을 잡고 좁은 계단을 한참을 올라 두오모 꼭대기에 올랐다. 엄마의 손끝을 따라 바라본 그곳은 피렌체의 붉은 지붕 대신,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꽃들이 한가득 피어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환한 미소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엄지, 우리 딸, 정말 최고야!”'
Epilogue
몇 달 후 이른 아침, 엄지는 두오모 꼭대기에 섰다. 엄마에게 보여주듯 가족사진을 들었다. 그때 한 사람이 다가와 물었다. 웃는 눈이 착한 외국인이었다. 그는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말했다.
“한국인, 인가요? 혹시, 사진 찍어줄래요?”
“아, 네.”
그의 스마트폰을 건네받고 아름다운 피렌체를 배경 삼아 찍어줬다. 이어 그는 말했다.
“나도 사진 찍어 줄게요. 그리고 괜찮으면... SNS 주소 알려줄래요?”
그렇게 엄지는 피렌체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났다. 엄마의 바람대로 될 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앞으로 엄지의 인생은 더 이상 작은 손가락이 아니라, 최고의 손가락이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린 시절 책으로 보거나 만화로 본 <엄지공주> 이야기는 항상 불편했다. 서두에 부모님이 오랜 시간 기다려서 낳은 딸이라고 쓰여있지만, 엄지 공주는 온갖 고생 끝에도 엄마의 품에 못 돌아가는 게 슬펐다. 그리고 과연 꽃의 나라 왕자님은 믿을 만한 사람인지도 불안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완벽한 완결이 없는 것이 현실과도 닮아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이번 계기로 들었다. 대신 어린 시절 읽은 엄지공주의 이야기에서 엄마를 그리워하던 엄지의 마음을 현실에 반영해서 써보고 싶었다. 더불어 엄지손가락은 그저 작고 연약한 사람을 은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최고라는 칭찬, 힘든 누군가에게 인간적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누구나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지만 부정적인 면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달리 보면, 오히려 조금은 더 큰 자신감을 얻을 수 있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게 한 아이의 엄마가 된 필자는 새롭게 엄지의 이야기를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