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대하여... 1

by NaRio

어릴 적 정말 듣기 싫었던 여러 말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모든 것은 정신력이야! 참아!"

그래서 억누르고 참아야 했던 것이 너무 많았던 거 같다.

물론 그저 한 개인이 자유의지로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난 내가 답답하리 만큼 규칙을 지키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니, 자유의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어린아이였던 나는 그 말이 너무나 무섭고 싫고 힘들었다.

그 말은 곧 "너의 감정이 어떻든, 아무도 받아주지 않아!"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기억 속의 어린 시절 중 하나는 끙끙 거리며 몰래 우는 모습이다. 아무도 받아줄 사람이 없을뿐더러, 정신력이 약한 나는 나쁜 아이였으니까...




커가면서 나름 사색이 많았고 전공과도 관련했기에 철학책을 많이 봐야 했다. 그리고 삶이 힘들 때마다 심리학 책이나 현인들의 글을 읽어가면서 마음을 다스리면서 살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안과 강박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회생활을 위해 익힌 방식은 가면을 만드는 거였다.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밝고 적극적인 사람이었고 심지어 엄마의 눈에는 바보같이 항상 웃기만 해서 걱정되는 애였다. 그래도 이 방향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결혼식에 너무나 많은 친구와 회사 관련 분들이 와서 신부 친구만 모여서 사진을 꽉 차게 찍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근본적인 나의 마음은 달래지지 않았다. 당연한 거지만...

그래도 어른들이 말했듯이 그냥 참고 이겨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아이를 가지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일 년 넘게 기다리다 임신을 했다. 너무나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거란 확신이 들어서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였던 거 같다. 육아 관련 채널을 보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그때 오은영 박사님의 프로그램도 즐겨봤고 그 외의 많은 전문가들의 강연과 상담 사례를 보면서 그래도 나쁘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한 태도와 방법을 곱씹었다. 관련해서 책도 사서 보기 시작하니, 남편이 그쪽으로 논문 써도 되겠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뭔가 마음에 꽉 새겨지지 않았다. 내 마음속의 무엇인가가 얇은 기름막처럼 맑은 이야기들을 막고 있는 거 같았다. 다행히 건강한 아이가 내 곁에 왔다.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이 심하게 왔기에, 육아하는 틈틈이 더 많은 책과 영상을 보았다. 혹시라도 내가 너무 우울해서 그동안 공부한 것을 잊고 나쁜 엄마가 될까 봐 말이다. 나쁜 아이였기에 나쁜 엄마가 될 것만 같았다.



가족이 없는 새로운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마음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얼른 논문을 써서 학교 졸업도 하고 싶었고 남편 역시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느라 매번 날 선 말만 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나쁜 엄마가 되지 않으려면 말 못 하는 신생아 앞에서도 예쁜 말로 웃어야 했다. 책에서 그래야 한다고 했고 '모든 것은 정신력!'이니까..

그 와중에 둘째를 갖고 싶었다. 좋은 엄마는 아이들에게 함께 클 형제자매를 만들어줘야 하는 거니까... 하지만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절에도 가보고 여행 겸 솔뫼성지에도 갔다. 김대건 신부님의 탄생지이자 성지인 솔뫼성지에 바람도 쐴 겸 가서, 진심으로 기도를 드리면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은 안 다녀도 어릴 적 엄마를 따라 성당을 다니면서 유아세례도 받았으니... 말도 안 되는 거 알지만, 그 정도로 절실했다.

그런데 솔뫼성지를 구경하다가 김대건 신부님 생가에 들어가 보았다. 작은 방이 있었고 그 안에서 여러 신도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나도 구석에서 절실한 마음으로 찔끔찔끔 나는 눈물을 참으면서 기도를 했다. 기도의 질문은 항상 그랬듯 이것이었다.

"신부님, 둘째를 갖고 싶습니다. 제가 모자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데, 그때 답이 들렸다! 정말로 귀로 들렸다!!

"너 자신을 먼저 들여다봐라."



이걸, 종교적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건지,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봐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을 분명히 기억한다. 정말로 귀로 머리로 마음으로 들렸다. '너 자신을 먼저 들여다봐라.'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거였다. 모든 것은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는 거니까, 나 자신을 살펴보는 것은 아이들을 다 키운 후에 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했다. 남편도 부모님도 모든 어른들이 다 그렇게 이야기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그때 들은 답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것이었다.

머리가 멍했다. 남편에게 이야기해줬지만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 오랜만의 외출에 신난 아이를 바라보면서 '나를 돌아보라고? 난 왜 그동안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읽은 육아서적에서도 그런 말이 있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그 전엔 그저 미사여구 같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후엔 그 말이 너무나 중요한 이유로 보였다. '그래, 엄마가 진심으로 행복하고 불안하지 않아야, 우리 아이도 행복할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해서인 지, 그동안 정신력으로 버티느라 무리를 해서인 지 몰라도. 나의 몸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남편 몰래 아스피린과 진통제를 달고 살다가 결국 허리 디스크가 터져서 곧 걸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진단까지 받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이 정도로 심하면 한 달은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좋은 엄마는 못되어도 '나쁜 엄마'는 되기 싫으니 정신력으로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래서 오기가 생겼다. 내 몸은 내가 돌보는 거야.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말자.



허리디스크는 기적적으로 많이 나아서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둘째는 마음속으로 포기했다.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동생을 안 만들어준다고 나쁜 엄마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픔을 이겨내면서 굳이 나쁜 엄마가 되지 않으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존재만으로도 귀한 나의 자식이듯이, 아이에게도 세상의 유일한 엄마이자 그 아이의 굳건한 편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결심을 바꿨다. 지금 아이가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 줄 수 있고, 나중에 힘들어할 때에 도와줄 수 있고, 한 인간으로 돌아볼 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나쁜 엄마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 세상의 시선에서 좋지 않은 생각과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강박을 버리기로 했다. 그게 보다 아이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안심하면서 신뢰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난 심리학이나 아동학 전공자가 아니다. 그저 한 아이의 엄마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무게감이 적지 않다. 엄마란 아이가 살아가는 세상을 처음 보여주는 창문이기도 하고, 세상에 나아갈 때 무서우면 돌아와 쉴 수 있는 둥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엄마로서 세상을 바로 바라봐야 하고 아이의 불안과 힘듦을 품어줄 수 있을 만큼, 나 스스로가 안정되고 건강해야 한다.


그때 솔뫼성지에서 들린 목소리는 결국 나의 내면에서 겨우 외친 말일 지도 모른다. 30여 년을 무시했던 내면의 자아가 이제는 그만 주변을 돌아보고, 이제는 자신을 봐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한 마디가 내가 그동안 많은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리고 나의 불안을 그저 정신력으로만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그 목소리를 들어주고 돌봐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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