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1. 05(일)
새벽 3시 10분. 잠든 지 두 시간 만에 눈이 떠졌다. 다시 자려고 이리저리 뒤척여보았지만 스멀스멀 온몸이 가려워진다. 임신 후에 몸이 무척 건조해져서 늘 고생하고 있다. 특히 발목과 왼쪽 날갯죽지 부분이 심하게 가렵다. 피부가 약해지는 부위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한 시간 가량 뒤척이다 결국 참지 못하고 일어나 반신욕을 했다. 땀을 빼고, 튼살 방지 로션을 치덕치덕 온몸에 발랐다. 등 부분은 로션을 바르기가 어려워서 늘 토토의 도움을 받곤 했는데, 이 새벽에 깨울 수는 없으니 손이 닿는 만큼만 바르고 이너 피스를 외쳤다. 그리고 다시 누워서 잘 생각이었는데 세상에...
코피가 났다.
혈액순환이 너무 잘 되었던 걸까. 새벽에 잠도 못 자고 코피를 쏟고 있자니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원래 어릴 때부터 머리에 열이 많아 코피를 잘 흘렸던 터라 코피에는 익숙했다. 체육시간에 운동장에서 햇빛을 많이 받거나, 날이 조금이라도 건조한 날이면 어김없이 코피를 말 그대로 주룩주룩 흘렸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내 짝꿍들은 피를 보고도 견뎌야 하는 일상을 보내야 했다(짝꿍들이 미안해). 그렇게 코피를 쏟는 일이 담담하고 익숙한 일이었음에도, 다들 잠든 시간에, 임신한 상태에서 코피를 흘리고 있자니 어쩐지 좀 서럽다. 성인이 되고서는 코피를 쏟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근래의 몇 년간은 잊고 살았었는데... 막달이 되어가니 내 몸 여기저기가 버거워하는 것 같다.
오후에는 그림 그릴 종이가 다 떨어져서 화방에 가야 했다. 버스를 탔는데 빈자리가 없었었다. 버스 안에 사람도 많았고, 히터로 데워진 공기에 숨이 차서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어떤 젊은 여성분이 임산부 태그를 보고 자리를 양보해주셨다. 정말 너무너무 감사했다. 오늘은 유독 힘든 것 같다. 내 체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은데 마지막까지 잘 버틸 수 있을까? 특별히 큰 이벤트가 없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젠 내 배가 제법 많이 나왔는데도 못 본 척, 기타를 들고 임산부석에 버젓이 앉아있던 청년은 쫌 미웠다... 음악 하는 사람이었을까? 평생 인기 없는 뮤지션이 되어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