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1. 11(토)
떡볶이를 좋아한다. 세상에 맛없는 떡볶이는 있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떡볶이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린다는 밀떡, 쌀떡 두 가지를 다 좋아하며, 달달한 맛, 매운맛, 얼큰한 후추 맛, 케첩 맛 모두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유달리 사람과 자리를 가리는 편도 아니지만, 이 떡볶이만큼은 아무 사람하고 먹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그만큼 나에게는 애정이 가는 음식이다. 평소 혼밥을 즐기는 타입이지만 즉석 떡볶이만큼은 예외이다. 혼자서 즉석 떡볶이를 먹기엔 양이 넘친다(사리와 볶음밥을 추가할 수 없는 건 슬픈 일이다). 가스버너를 사이에 두고 오손도손 하게 앉는 분위기도 혼자서는 조금 부담스럽다(차라리 고깃집에 혼자 가라면 갈 수 있을 것이다). 즉석 떡볶이 매장에 일행 없이 간다면 분식집의 떡볶이도 있을 텐데 굳이 즉석 떡볶이를 혼자 먹으러 온 것이 의아해 보일 것 같고, 일행이 있다면 조리가 될 때까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눠야 할 텐데 캐주얼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아니라면 피하고 싶다. 그리고 즉석 떡볶이의 피날레! 볶음밥을 맛있게 먹으려면 밥을 팬에 눌러 먹어야 하는데,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방법으로 식사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이다.
토토와 나는 축하할 일이 생기거나, 기분이 좋은 날마다 홍대에 있는 프랜차이즈 즉석 떡볶이 집을 찾았다. 맛도 분위기도 만족스러운 편이었기 때문에 딱히 그 외의 떡볶이집을 새로이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얼마 전, SNS 계정에서 잊고 지냈던 즉석 떡볶이집의 사진을 보고, 그동안 왜 이곳을 잊고 지냈을까 하고 생각했다.
여고 앞 단출한 기사식당 분위기를 한 즉석 떡볶이 집, 미림 분식. 며칠 전 그곳의 사진을 본 후로, 그 동네에 사는 친구 K를 졸라 떡볶이를 먹고 왔다. K와 나는 같은 학교 졸업생은 아니지만, 인근의 고등학교를 각기 졸업해 대학에서 가까워졌다. K는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같은 동네에 살고 있음에도 졸업 후에 미림 분식에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미림 분식 떡볶이의 맛은, 학생 때 먹던 맛 그대로여서 놀랐다. 그리고 그 맛을 기억하는 친구와 같이 와서 더 좋았다.
오늘도 미림 분식의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토토에게도 맛있는 떡볶이집을 소개해주고 싶었고, 지난번 K와 함께 갔을 때 먹지 못했던 짜장 떡볶이가 한동안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말이라 그런지 나처럼 남편과 같이 온 임산부의 테이블이 몇 군데 보였다. 짜장 떡볶이와 군만두는 너무나도 완벽한 조합이었다. 토토는 자신이 졸업한 학교 근처에는 즉석 떡볶이 집이 없었다고, 이렇게 맛있는 떡볶이를 학생 때 먹고 다녔던 거냐며 과거의 나를 몹시 부러워했다.
이마에 났던 여드름만큼 식욕도 왕성하게 돋던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이랑 테이블에 둘러앉아 떡볶이가 다 익을 때까지 벽걸이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노란 단무지로 배를 채웠던 때가 생각났다. 단무지도 양껏 먹었기에 사장님이 단무지를 커다란 김치통으로 가득 채워놓았는데, 아직도 그렇더라. 천 원짜리와 동전을 긁어모아 수업 끝나고 친구들이랑 떡볶이를 사 먹고 헤어지던 그때. 그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은 모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나도 곧 그러할 예정이다. 출산을 하고 나면 모유수유 때문에 떡볶이는 당분간 먹지 못하겠지... 그럼 축하할 일이 생긴다면 무엇으로 축하할 수 있을까. 출산 이후로 축하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모를까. 정말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떡볶이를 먹고, 길 건너에 있는 졸업한 고등학교에 들렸다. 수위실에서는 지금 공사 중이라서 출입이 안되다고 했지만, 졸업생인데 남편에게 학교 구경을 시켜주고 싶어서 왔다고 하니, 아저씨가 건물 내부에는 들어가지 않는 조건으로 들여보내 주셨다. 학교는 여전히 아담하고 정갈해서 예뻤다. 모든 게 변함없이 그대로여서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