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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Sep 19. 2019

하루를 또 기다려야 해

2019. 6. 29(토)

잠결에 눈 뜨자마자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빠른 배송 택배가 도착한 걸 뒤늦게 발견했다. 임신 테스트기는 아침 첫 소변으로 테스트해야 한다던데...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한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이라서 아무런 준비도 안 하고 있던 터라 함께 주문한 엽산 먼저 꺼내 먹었다. 나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토토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공유하고 함께 준비하는 것도 좋겠지만, 내 몸에서 일어난 일이니 내가 먼저 정확히 안 뒤에 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을 안다 해도 토토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엽산이라도 같이 먹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건 이미 늦었고.

회사일로 지친 토토를 위해서 한 달 전, 월드컵 공원에서 열리는 '숲 테라피' 강좌를 신청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다. 둘이 함께(사실은 셋이지) 가고 싶었지만, 토토는 전날의 회식의 후유증으로 함께 가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른 주말 아침이라 평소라면 나도 안 간다고 했을 텐데, 어쩐지 토토가 괜히 얄밉기도 하고,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고 싶어서 그럼 혼자라도 다녀오겠다 하고 집을 나섰다.

월드컵 공원에 도착해 맹꽁이 버스에 올랐다. 잘 도착했다고 토토에게 카톡을 하는데, 멀미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메슥거리는 느낌과 두통이 한 번에 왔다. 버스에서 내리니 울렁거림이 더 심해져서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귀여운 맹꽁이 버스를 타고서 멀미라니...

숲 선생님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맑은 공기를 마셨더니 속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잔디에서 다른 참여자 분들과 몸을 쓰는 놀이도 하고, 정자에 누워 잠깐 눈도 붙였다. 나 이외에는 아이들을 둔 두 가족이 왔는데, 평소와 달리 아이들이 참 귀여워 보였다. 임신 테스트기는 시도도 못해봤지만,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보자니, 임신이 맞는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끝으로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도 받았다. 검사 결과를 안내해주시는 분이 내 스트레스 수치가 꽤 높다며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있어서 그래요... 이게 참... 큰 스트레스군요.'라고 차마 말할 수가 없어서 요즘 일이 많았다며 대충 둘러댔다. 작업실로 가는 길에 허기가져서 무작정 버스에서 내렸다. 눈에 보이는 한정식집에 들어가 황태구이 정식을 사 먹었다(이전의 나는 황태구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 꽃집에서 작은 꽃다발도 샀다. 혼자서라도 자축하고 싶었다. 토토는 아직까지 아무것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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