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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Oct 14. 2019

작별인사는 후회 없이

2019. 8. 13(화)

대학생 시절에 러시아 연해주로 간 봉사팀에서 알게 된 오빠가 있었다. 그 오빠는 우리 봉사단 한 기수 위의 언니랑 사귀었는데, 둘은 졸업과 취업 등 긴긴 시기를 함께 보내고 결혼했다. 간간히 왕래가 있긴 했지만 다들 취업을 준비하고 사회생활에 적응하느라, 자기 생활을 하느라 연락이 뜸했다. 



오늘 오빠에게서 부고 소식을 듣기 전까지, 나는 언니가 많이 아팠었단 사실을 몰랐다. 문자를 받고 황급히 장례식장에 갈 준비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순간 망설이게 되더라. 임신하면 장례식장에 가지 않는 거란 걸 어릴 때부터 숱하게 보고 들어서... 근데 그게 임산부가 먼 길을 이동하는 게 힘들까 봐 나온 말이었다면, 나는 만삭도 아니거니와 서울에서 천안까지는 거뜬히 다녀올 체력이 있으니 괜찮고, 부정이라도 탈까 봐 찜찜한 마음에 나온 말이라면, 귀신이 무서우면 애는 어떻게 낳겠냐는 생각이 들더라(나는 귀신보다 가부장제가 더 무섭다). 임신을 하고서 몸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는데 때로는 그런 말들이 정말 임산부를 위한 마음에서 하는 말일까 싶다. 나도 미혼이었던 시절에 나보다 먼저 결혼해 임신한 친구들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몸 조심히 다녀'하는 말들을 종종 건네곤 했었는데, 임산부의 입장이 되어보니 그런 말도 차곡히 쌓이다 보면 마음이 불편해지더라. 내 마음이 편해지는 말 대신, 친구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해주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이미 해는 지고 있었고 장례식장까지는 기차를 타고 다녀와야 했는데 혹시 토토도 내가 장례식장에 간다는 걸 걱정하면 어쩌나 싶었지만, 다행히 '잘 다녀와, 잘 보내드리고 와.'란 대답을 들었다. 언제나 내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오빠는 먼 길을 와주었다고 많이 고마워했다. 나는 원래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는데... 대학생 코찔찔이 시절에 언니랑 오빠가 밥도 사주고, 세심히 챙겨줬던 게 생각나서 언니의 영정 사진을 보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전국 각지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동기와 선배들도 만났다. 임신 소식도 더불어 알렸고, 축하도 많이 받았다(동기들이 술을 권해서 알릴 수밖에 없었다). 몰랐던 사이에 이미 엄마가 된 친구들의 임신 경험담도 들을 수 있었고, 나처럼 먹덧을 겪은 친구가 있어서 세심한 조언도 들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다 언니의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망설임 없이 다녀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걱정만 하고 언니에게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 같다. 그리고 빈자리에서도 고마움을 느끼게 해주는 언니의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언니가 마음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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