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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Oct 17. 2019

우리 꼭 다시 만나자

2019.8.18(일)




목요일 오후, 해외 체류로 연락이 뜸했던 한 동기가 카톡을 보내왔다. 

'나리야, J 소식 들었어?'



일하던 중에는 메시지 확인은 안 하는 편인데 그날은 평소와 좀 달랐다. 카톡을 확인하고 수업했던 자리를 서둘러 정리하며 콜택시를 불렀다. 목동으로 향하던 택시를 탔을 때 비가 많이 내렸다. 시답지도 않은 농담을 던지던 택시 기사의 말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이제 호흡기를 떼기까지 한 시간 남짓 남았나...' 

병원에 도착해 서둘러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10층인 건 기억이 났는데, J의 남편분이 전화로 설명해주셨던 병실 호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안내 데스크의 간호원에게 물어보았다. J의 이름을 말하자 간호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까지 안내해줬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J가 떠났다. 

그녀와 나는 같은 해에 같은 과로 편입해 만났다. 그 해 편입생 수는 넷. 그중에서 제일 웃는 모습이 아가 같고, 마음이 착한 친구였다. 재학 시절의 나는 우리 학과 수업보다는 타과 수업을 주로 들었던 터라 대화를 나눴던 동기도 몇 명 없었고, 졸업 후에도 연락하고 지내는 동기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J는 그런 나를 잊지 않고 졸업 후에도 동기들의 소식을 간간히 전해주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큰일이 아니고서야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도 J는 주기별로 나의 안부를 묻거나 밥을 먹자고 약속을 잡기도 했다. 전화 안부의 첫인사는 늘 "나리씨(최근에 동기들이 그것은 '나리찡'이었다고 알려주었다) 요즘도 바빠?"였는데, 항상 피곤한 목소리로 "응, 바빠"라고만 대답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J가 결혼하던 날 나는 바보같이 지하철을 잘못 타서 예식장에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었다. 그렇게 무심할 수 있었을까. 너무나도 민망하고, 미안한 마음에 축의금이라도 전달하려고 식장에 도착해 전화를 했는데, 식당에서 신랑 분과 한달음에 달려 나와 식권을 손에 쥐어주고 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밥 꼭 먹고 가라며 자리 안내까지 해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은 신혼초라서 정신없을 테니 일상이 정리되면 만나자고 해야지. 연말에는 전시 보러 오라고 해야지. 그때쯤에는 안정기일 테니 임신 사실도 알려야지'하고 마음만 먹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는 J에게 연락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임신했더니 좋은 인연을 많이 알게 된 것 같다고 주변에 자랑처럼 말하고 다녔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니,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좋은 사람을 잃은 것 같아서 무서웠다. 어찌 되었건 되돌릴 수 없는 일이기에 후회가 컸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면서 결혼식 때처럼 또 지각할까 봐, 마지막 인사도 못하게 될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그림도 생전에는 그려준 적도 없다가 빈소에 가져다준 게 미안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J의 가족들이 있었고, 부모님이 J와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게 해 주셨다. 호흡기를 떼기 전, 침대에 누워있는 J의 손을 잡아보았는데 순간 내가 먼저 친구의 손을 잡아본 것이 처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까지 미련한 친구라서 J가 서운하진 않았을까... 나는 J의 다정함을 항상 몰라봤다. 착한 사람은 왜 이렇게 서둘러 떠나는 걸까.



장례식 장에서는 동기들을, 발인하는 날에는 J의 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J의 동네 친구들이 담배를 권해서 임신했다고 하니, 아내를 도우려 육아 휴직을 했었다는 육아 유경험자 친구가 육아팁을 쉬지 않고 알려주었다. 세 친구 모두 초면인데도 임신했단 사실을 기뻐해 주었다. J대신 좋아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감사했다. J의 예식장에 갔었지만 지각했었다고 하니, 그때 찍은 동영상과 사진이 정말 많다며 휴대폰을 쥐어주고 사진첩을 보여줬다. 역시 웃는 모습이 참 예쁜 친구였구나 싶었다. 친구들을 보니 그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를 더 알게 되었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던 날에는, 과동기가 차를 태워줬는데 동기의 집과 내 작업실이 걸어서 1분 거리도 채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업실까지 차를 태워다 준 동기는 J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가까이 지냈는지 몰랐을 것 같다고, J가 자기 대신 가까이 지내라고 이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J를 안타까워했고, 그리워했다. J가 얼마나 좋은 친구였는지. 



언젠가 J와 꼭 다시 만나고 싶다. 해주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서.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는 내가 더 잘 챙겨주고 싶다. 그러니까 우리 다시 만났으면, 꼭 다시 만나 친구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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