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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Oct 21. 2019

너의 마음은 내가 잘 알지

2019. 08. 22(목)


어제는 초음파 검사를 하고 왔다. 다행히도 마꼬는 주수에 맞게 쑥쑥 잘 자라고 있단다. 정기검진을 마치고 병원을 나섰는데 토토가 계시받은 오늘의 메뉴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가츠 산도가 먹고 싶었다. 하지만 병원 근처에는 가츠 산도를 파는 곳이 없었고, 반차를 내고 병원에 함께 가준 토토가 오늘은 회사로 일찍 들어가 봐야 한다고 했다. 대신 가까운 곳에 일본식 카레집이 있어서 거기라면 돈가스라도 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갔는데... 야속하게도 오늘이 휴일이란다. 결국 그 근처 다른 식당에 가서 피자와 리조토를 사 먹었다. 메뉴를 고르는데 어쩐지 속이 상했다. 먹는 것 때문에 마음이 이렇게 상하기도 하다니... 임신이란 대체! 먹고 싶은 걸 먹지 않으면 오늘의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처럼,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 것처럼 마음이 불편해지고 만다. 하지만 토토는 그날의 선택이 최선이었기에 "가츠 산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맛있는 걸 먹었지?"라며 물었다. 토토 마음에도 당연히 가츠 산도를 같이 먹고 싶었을 텐데, 걱정하게 하기 싫어서 "응 맛있었어"라고 답했다. 먹덧만 아니라면 오늘 먹은 음식도 맛있었을 텐데... 하지만 나는 맛있게 먹을 수가 없었다. 내가 먹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니었기에 시큰둥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찾는 가츠 산도를 먹으려면 한남동까지 가야 한다. 하지만 그 메뉴는 오전에만 판매하기 때문에 회사로 출근하는 토토와 함께 가기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꼬의 등장 이후로, 먹는 것 앞에서는 인내심의 수치가 바닥인 상태라 주말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는 일로 마음이 상하는 것을 며칠 동안 반복해 겪고 싶지 않았다. 그날의 먹고 싶은 음식은 그 날 먹음으로써 기분이 나아지게 해야 한다... 계시받은 메뉴를 다른 음식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먹덧을 겪어보지 못한 이들은 영영 모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가츠 산도를 먹기 위해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다. 한남동까지는 집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가량을 이동해야 하는 거리. 가츠 산도는 브런치 시간에만 파는 메뉴이므로, 재료가 소진되면 먹을 수가 없게 된다. 오로지 가츠 산도를 먹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포카 산책도 마치고, 밥을 넉넉히 챙겨주고 집을 나섰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가츠 산도 사 먹기에 실패할까 봐 불안한 나의 마음을 진정시켜줄 읽을거리도 챙겨 왔다. 정말 꼼꼼한 계획이 아닐 수 없다. 회사가 많은 동네라 혼자 식사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지만, 그런 것 따위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웨이팅 석에는 나만 앉아있었는데 여기까지 와서 못 먹고 돌아가게 될까 봐 마음이 초조했을 뿐이다.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자리를 안내받아 가츠 산도를 주문할 수 있었다. 직원이 메뉴를 확인하고 돌아갈 때는 지나갔던 서운한 시간이 행복감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가츠 산도의 맛은 내가 상상하던 그대로였다. 샌드위치 빵 사이, 촉촉한 돈가스처럼 내 마음도 촉촉해졌다. 



마꼬는 오늘 하루도 쑥쑥 잘 자랄 것이다. 평소에는 사 먹지도 않던 볶음밥, 오므라이스, 돈가스, 햄버거... 등등의 메뉴가 내가 임산부임을 실감케 한다. 마꼬가 아기인 건 알지만, 당기는 메뉴가 모두 어린아이의 입맛 같아서 때로는 기가 막히고, 신기해 웃음이 나기도 한다. 임신 기간 중에는 먹고 싶은 것을 나눠 먹으며(아직 난황이 있을 때이지만) 양육자와의 합을 맞춰가는 건 아닐는지. 서로 간에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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