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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Nov 06. 2019

내 몸이라고!

2019. 9. 1(일)


시할머니의 생신이었다. 할머니의 아흔 살 생신을 맞아, 수원의 한 레스토랑에서 시가 식구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한다고 했다. 토토네 가족들은 시간 약속을 칼 같이 지키는 분들이라 십 여분 늦게 도착한 우리가 제일 꼴찌로 도착한 꼴이 되었다. 뒤늦게 도착하자 모두들 임신 소식을 들었다며 축하의 박수를 쳐주셨다. 작은 아버지께서는 조카들에게 2만 원 미만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재밌는 선물을 가져오라고 미리 공지를 하셨다. 선물 증정식을 마치고 가족들의 인기투표로 작은 선물도 주신 댔다. 우리는 순위에서 탈락되어도 괜찮으니 좋은 걸 해드리자고 해서 할머니께 백화점에 가서 스카프를 사드렸다. 재미있는 선물이 쉬지 않고 나왔다. 둘째 집의 도련님은 할머니에게 감사 표창장을, 고모댁의 시조카는 직접 만든 엄청 큰 생신 카드를 머리 위로 번쩍 들고 나오기도 했다. 선물 퍼레이드를 마치고, 가장 아이디어가 돋보였던 선물을 준비한 조카들에게 문화 상품권이 돌아갔다. 식사를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식구가 많아서 카메라에 얼굴만 겨우 담았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재미있었던 선물에 대해 이야기했다. 토토는 "우리만 너무 뻔한 선물을 준비한 것 같아서 좀 아쉽던데... 할머니한테 우리가 준비한 선물이 마꼬라고 할 걸 그랬나?"하고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뭐라고? 토토의 할머니와 가족 모두에게 증손주, 새 식구가 생기는 건 크게 기쁜 일이겠지만, 그 아이가 사람의 모습을 갖춰 태어나기까지 수고하는 것은 내 몸인데... 나는 곧바로 정색했다. 

"얘는 아직 사람이 아니야. 내 몸이나 마찬가지야. 아직 내 몸에 붙어있는 세포 같은 존재라고... 나는 마꼬가 태어나서 자기 코로 숨쉬기 전에는 사람이라고 생각 안 할 거야. 태어나기 전까지는 내 몸의 일부일 뿐이야. 그런데 그게 왜 할머니한테 드리는 선물이야, 다시는 그렇게 말하지 마!"라고 말했다. 토토는 곧바로 미안하다고 했다. 



내 몸에서는 매일 같이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적응하기 위에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나의 임신 상태를 하나의 이벤트로 생각하는 것에 화가 났다. 그리고 만약에 토토가 임신한 상태라면 절대로 같은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순간 욱하는 마음에 뱉어 버린 말이었지만, 진심이 담긴 말이라 마음에 남았다. 이건 내 몸이야.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그러니까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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