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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Nov 07. 2019

길에서 미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2019. 9. 2(월)



"아니, 애한테 소리를 지르면 어떡해요!"

여자 아이의 엄마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홍제천의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에겐 상대방과 똑같이 화를 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포카의 산책 줄을 짧게 고쳐 잡고, 이 상황에 놀라서 포카가 긴장하지 않도록 진정시킨 다음에야 나에게 소리를 지른 사람에게 마주 섰다. 애초에 사과를 받을 거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오히려 상대방이 화를 내다니 기가 막혔다.



우리 집 털 동생, 반려견 포카랑 같이 작업실로 출근했다가 홍제천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인도 가장자리에 나있는 잔디와 풀들 사이로 포카는 천천히 냄새를 맡으며 걸었다. 나는 50여 미터 앞에 있는 징검다리에서 보호자랑 함께 놀고 있던 어린이를 보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간혹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나는 아이 엄마의 시선이 포카와 나를 보는 것을 확인했고, 아무런 제스처도, 말도 없길래 안심하고 그들의 옆을 지나갔다. 그런데 뒤늦게 포카를 발견한 아이가 양손을 뻗은 채 포카에게 정면으로 달려왔다. 겁이 많은 포카는 자전거 도로 쪽으로 점프하다시피 몸을 피했다.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전거 도로를 달리던 자전거라도 있었으면 아찔한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나는 도망가려는 포카의 산책 줄을 짧게 잡고, 포카와 아이 사이를 몸으로 막아섰다. 그런데도 아이의 시선은 포카에게로 꽂혀있더라. 애 엄마가 아이를 빨리 데려가길 바라며, "안돼, 오지 마!"하고 소리쳤다. 그런데도 아이는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고, 아이의 엄마는 뒤늦게 와서 아이를 붙잡았다. 여기까지가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짜고짜 나에게 화를 냈다. 놀란 건 우리 개인데.





“우리 애한테 소리를 왜 질러요!”


"저기요, 당신네 애가 우리 개에게 정면으로 달려들었어요. 어느 개라도 그렇게 달려들면 흥분해서 애한테 해코지할 수도 있는 상황이에요. 우리 개가 당황해서 당신 애를 물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러길래 왜 개를 밖에 데리고 다녀요? 그리고 애한테 소리 필요까진 없잖아요! 좋게 얘기해도 되잖아요!”


"아니 그럼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소리를 안 질러요? 내 개랑, 당신 애 둘 다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인데! 그런 상황을 만들기 싫었으면 애한테 개한테 다가가는 교육을 시켰어야죠"라고 했더니, 이제는 개 기르는 게 유세냐며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유세라니... 너무나도 뻔한 레퍼토리다. 나는 포카를 입양하고 4년 동안 거리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 사이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는 실랑이를 해봤자 나만 손해라는 것이다. 스트레스받아봤자 내 몸만 지친다. 티도 안나는 초기 임산부라 이럴 땐 또 억울하다. 똑같이 아이의 엄마가 될 입장인데, 어쩜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다를까...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가던 길을 가려는데, 아이의 엄마가 분에 못 이겨 내 등에 대고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 "저거 정말 미친 사람 아니야???"




아이가 다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을 하게 놔두고 어떻게 남 탓을 할 수 있지? 보호자 맞아? 화가 가라앉지 않았지만, 나는 포카를 달래며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아이가 영유아였다면 당연히 더 조심했을 것이다. 아이의 보호자가 개가 지나간다는 것을 인지했으니 안심하고 지나가도 좋겠다고 혼자 판단한 게 화근이었다. 저 나이 때의 자녀에게 개에게 다가가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반려견 산책을 많게는 하루에 세네 번씩 나가는데, 산책의 의무감과 피로감 못지않게 어쩔 때는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 제일 힘들다. 언성을 높이던 자리에는 작업실에 놀러 왔던 내 친구도 함께 있었는데, 한참을 같이 걷다가 "아까... 아까 있었던 일인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려. 애가 그렇게 달려들 줄도 몰랐고, 그 사람이 그렇게 화낼 줄도 몰랐어. 그 사람이 사과해야 했던 거 아니야?"라고 했다.



예전에 모 유기견 보호소 카페의 게시판에 자녀랑 같이 봉사활동을 오고 싶다고 문의글을 올렸던 한 엄마가 있었다. 자기의 애가 개를 정말 좋아한다며, 선의로 동참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자녀가 몇 살이냐는 봉사자의 질문에 그분이 대답한 나이는 꽤 어렸다. 아마도 미취학 아동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봉사자들은 이곳은 대형 견사가 있는 곳이며, 성격이 예민한 개들도 있으니 데리고 오지 않는 게 좋겠다고 잘라서 말했는데, 아이 엄마는 그 말에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었다. 보호소는 개를 구경하러 오는 곳이 아닌데... 그 사람에게 보호소의 개들은 자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관찰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부모가 참 많더라. 산책 나온 남의 집 반려견을 만져보라고 하거나, 때려보라고, 때릴 수 있겠냐고 채근하고 시켜보는 부모, 아이를 안은 채 개 짖는 흉내를 내면서 산책 나온 보호자와 개를 쫓아가는 부모도 봤다. 그런 일들을 직접 보고 겪으며, 자기네 가족만 생각하는 부모가 자녀에게 다른 집의 '가족'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바로 가르쳤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주 드물긴 해도 산책 나온 반려견들을 올바르게 대할 줄 아는, 보호자에게서 교육을 받은 듯한 아이들을 만난 적도 있다. 그런 아이들을 만나면 내심 기쁘고 반가워서 포카랑 인사도 하게 해 주고, 간식도 직접 주게 하고, 포카의 개인기도 보여준다. 굳이 내 반려견과 예의 없는 아이들을 만나게 해, 포카가 어린이들에게서 불안한 감정을 느끼도록 만들고 싶지 않다.



한 편, 아동을 '애새끼'라고 칭하는 몇몇의 반려견 보호자들을 보면 복잡한 감정이 든다. 반려견 놀이터에 아이들이 들어오면 ‘애새끼는 왜 데리고 오냐’는 말을 하는 사람들... 위에서 말했듯이 주 양육자의 예의 없는 행동을 아이들이 답습하는 것일 텐데, 대부분의 반려견 보호자들은 어린이들도 덩달아 미워한다. 나는 양측의 사람들 모두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동과 반려견을 같이 양육하는 가정은 이중 고립을 경험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하다.



연남동 신혼집에 살 때였다. 경의선 숲길 공원을 포카랑 산책하는데 이제 막 겨우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정도로 보이는 어린이가 포카에게 정면으로 달려와 포카가 뒷걸음질 치며 짖은 적이 있었다. 아이의 보호자가 안 보여서 순간 당황했는데, 어디선가 아이의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급히 달려와 아이를 들쳐 안았다. 순간 나는 '아... 또 싸움이 나겠구나. 이럴 땐 또 어떻게 싸워야 하나...'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분명히 삿대질이나 욕설이 날아오겠지, 개를 공원에 왜 데리고 나왔냐고 하겠지...' 싶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의 보호자는 '우리 애가 순식간에 달려가서 잡을 수 없었다, 개를 놀라게 해서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뒤이어 달려온 아이의 엄마도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과를 받아본 게 난생처음이라서 고마운 마음에 순간 눈물이 핑하고 돌았다. 아이의 보호자가 사과하는 모습을 본 행인들 중에는 "맞아... 저러면 개가 놀라지, 자기를 해코지하는 줄 알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전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말이라 놀라웠다. 그 집의 아이는 참 바르게 자랄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세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온 마음을 다해 빌었던 기억이 있다.





홍제천에서 만난 아이의 엄마는 내 기분 상하라고 욕을 한 거겠지만, 미친 사람이면 또 어떤가. 포카랑 내년에 태어날 마꼬 모두 나에게는 소중한 가족이다. 나는 우리 가족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싶을 뿐이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사람보다 개를 먼저 생각하는' 나의 행동이 미쳐 보였다면 미친 거라고 하라지. 더한 욕을 한대도 내 마음은 아무렇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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