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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Nov 08. 2019

연예인이 되려고 가는 건가요?

2019. 9. 4(수)

학생 때부터 서울 국제 여성 영화제를 매년 기다려왔다. 영화제가 열리는 여름의 초입은 언제나 설레는 시기였다. 올해는 영화제가 여름이 아닌 가을에, 신촌을 벗어나 상암동에서 영화제가 열렸다. 그토록 애정 하는 영화제 이건만, 임신 후 무기력증으로 사전 예매 기간을 놓쳤고, 무기력증이 나아지고 나니 예매를 노렸던 바바라 해머의 장편영화 <질산염 키스> 온라인 예매가 모두 매진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현장 예매를 노릴 수밖에! 무기력증에서 벗어나니 다시 의욕이 샘솟았다. 그래서 상영 당일인 오늘, 나는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달렸다.



행선지까지 빨리 가 달라는 나의 부탁에 기사님은 오늘 월드컵 경기장에서 무슨 행사가 열리냐고 물어보셨다.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고 했더니, 그러냐면서 상암동에서 열렸던 이런저런 축제와 행사 이야기를 하시길래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영화제에는) 연예인이 되려고 가는 건가요?"라고 넌지시 물어보시는 게 아닌가. 그런 질문은 처음 받아봤고, 맥락상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순간 기사님이 희롱이나 농담을 던지려는 건가 싶어 바짝 긴장했다. '제발... 상쾌하게 아침을 맞았던 저의 기분을 망치지 말아 주시죠!'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나는 아니라고 영화 보러 가는 길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기사님은 질문했을 때와 같은 톤의 진지한 목소리로 "아, 그렇군요"라고 했다. 내 우려와 달리 그냥 궁금하셨던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이 일화가 재밌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해서 개인 SNS에 올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하시느라 바쁘게 사셔서 영화제에 가보신 적이 없으셨던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더라. 내가 영화를 좋아하니까 모든 사람이 영화제를 알 거라고 생각한 거다. 바보같이.



친구들 중에서 제일 처음으로 내 임신 소식을 들었던 내 친구는 축하의 말을 전하면서 '이제 남들이 해보는 건 다 해보겠구나!'라고 했었다. 싱글인 친구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반려견을 입양해 신혼생활을 유지할 때만 해도 남들과는 조금 다른 결혼 생활을 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아이가 생기자, 평범한 결혼 생활권에 들어서는 준비를 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 물론 좋고 나쁜 것만으로 가름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예전에는 임신과 출산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아이를 좋아하지도 않고, 낳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앞으로 출산도 육아도 경험하게 될 입장에 처하게 되니, 내가 겪을 앞으로의 경험이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는 기준이 될까 봐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그간 유지해 온 일상이 남들과 똑같지 않다는 것을 처음 만난 택시 기사님이 알려주신 것이다. 택시에서 내려 부랴부랴 티켓 판매 부스에 도착하니, 티켓은 마지막 한 장이 남아 있었고 그 마지막 한 장을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이 모든 게 기사님의 덕분이다!



내 주변의 누군가는 늘 나에게 뭐가 이렇게 고민도 걱정도 많냐며 스트레스받지 말고, 편하게 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시선과 다른 고민을 하는 것이 문제라면, 그냥 문제적인 사람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래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오늘 본 바바라 해머의 <질산염 키스>에서도 이런 내레이션이 나오더라. "여성이라는 뜻이 이미 반사회적이란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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