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18(수)
벌써 마꼬의 성별을 짐작해볼 수 있는 주수가 되었다. 맘 카페의 게시판에서 '각도 법'이라고 불리는 방법으로(나는 도무지 어떻게 보는 건지 모르겠더라) 아이의 성별을 추측해보는 질문이 종종 올라오곤 했다. 오늘 간 병원에서 "엄마는 어땠으면 좋겠어요?"란 선생님의 질문에 "아... 저는 딸이요"라고 대답했는데, 솔직히 내 입에서 '딸이요'란 말이 단번에 나올 줄 몰랐다. 그리고 '엄마'란 말에 내가 곧잘 대답한 자신에게 놀라기도 했다.
딱히 아이가 딸이기를 바랐다기보다는 나에게는 딸 이외의 선택지가 없는 것 같았다. 남자 형제가 없어서인지 아들을 기른다는 일은 상상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들을... 기른다고? 내가? 상상만으로도 어색한 일이다. 반면에 딸을 낳으면, 씩씩하고 자기주장 잘하는 아이로 기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딸이 차차 겪어갈 몸의 변화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해줘야지, 딸이 밖에서 차별을 당했을 때는 꼭 한 편이 되어줘야지, '여자가~'라고 하는 말에 대항하는 아이로 자라게 해 줘야지' 하는 등의 상상을 펼쳐본 적은 있었지만. 자잘하게만 해보았던 이런 상상의 조각들이 어느새 결심으로 굳혀진 걸까. 아이의 성별은 착상되었을 때 정해진다는데. 뱃속에서 커갈 동안 고기도 많이 먹지 않고, 딱히 고생시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딸이라고 생각했던 게 코미디 같았다. 시아버님은 아들 둘, 시할머니는 위로 아들 셋에 막내딸 하나만 두셨다. 우리 친가 쪽도 큰아버지의 수가 상대적으로 더 많다. 그리고 또 생각해보니 내 주변에도 남자 어린이가 많더라. 얼마 전에 만났던 아들 하나를 둔 친구도 요즘도 어린이 집에 남자아이들이 유독 많고, 성비가 맞지 않다며 걱정했었다. 세상에 남자가 이렇게 많은데 거기에 한 명을 더 보태게 될 줄이야.
어쩐지 조금 외로워질 것 같았다. 토토는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 제일 세심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이지만, '한국사회에서 남자로 길러져서' 나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던 때가 있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이점을 깨달았을 때 어찌나 기운이 빠지던지... 신혼기간 동안, 여자로 태어나 자라온 삶의 불편함에 대해 알려야 하는 일들이 일상에서 사사로이 일어났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날에는 택배 상자의 개인정보가 담긴 스티커를 반드시 제거하고 내놓아야 한다던가, 빨래를 널을 때 내 속옷은 창 밖에서 보이지 않게 널어야 한다던가 하는. 소소하게 불편하고, 성가시게 짜증 나는 일들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일러줄 때마다 여자로서 사는 삶의 불편함에 대해 토토는 하나 둘 알아갔다. 이런 부분을 전달하는 일은 나에게도 소모적이라 마음이 지치기도 했는데, 중요한 것은 토토가 상대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자신이 바뀌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란 것이겠지. 그래 그걸 잊지 말자. 마꼬도 토토처럼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애써보면 되지 않을까.
또 한편으로는 아이의 성별을 우리가 확정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 이건 생물학적인 거고. 우리가 추측한 성별이 마꼬가 원하는 성별이 아닐 수도 있으니 크게 의의를 두지는 말자. 아들이니 딸이니 하는 것보다 좋은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자. 같이 힘내자 마꼬야. 건강하게 자라서 꼭 잘 태어나야 해. 내가 좋은 엄마가 되도록 노력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