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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Nov 26. 2019

길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2019. 10. 2(수)



며칠 전, 포카랑 산책 나갔다가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뜯고 있는 (얼마전에 자기를 맘마 먹고 싶은 고양이라고 소개했던) 고양이를 만났다. 얼마나 배가 고팠나 싶어서 포카를 얼른 집에 데려다 놓고 바로 먹을 것을 챙겨서 데리러 갔다. 고양이에게 인사했더니 '야옹야옹'하고 받아주더라. 보는 앞에서 고양이 캔을 따서 그릇에 담아서 보여주고, 쓰레기 뜯으면 동네 사람들한테 혼난다고, 우리 집에 가자며 밥그릇을 들고 일어섰더니 알아듣고 조심조심 따라와 줬다. 



요 며칠 냐옹이를 처음 만났던 날에 찍었던 동영상을 돌려보았는데 뱃살이 두툼하게 쳐진 것이 아무래도 임신한 것처럼 보인다. 고양이를 오랫동안 키웠던 친구에게도 보여줬더니 그런 것 같단다. 다시 만나면 주려고, 고양이 캔이랑 사료를 넉넉히 사두었다. 친구의 말로는 캔사료처럼 고열량의 음식을 먹으면 애기들이 뱃속에서 커져서 출산할 때 힘들다길래, 닭가슴살도 구매해 익혀서 미리 쟁여두었다. 밥 한 번 챙겨준 게 다인데 만날 때마다 믿고 따라와 주는 게 고마워서라도 이왕이면 좋은 걸 먹이고 싶더라.



오늘 아침에는 출근하려고 대문을 나섰던 토토가 카톡을 보냈더라. '고양이 친구가 아침부터 집 앞에 와 있네. 내가 나오니까 놀라서 도망갔어'라고. 고양이가 점점 우리 집에 찾아오는 시간이 늘어간다. 반갑고, 기분이 좋으면서도 책임감도 느껴진다. 정말 임신했던 게 맞았나 싶어서 슬금슬금 걱정도 되더라. 출산 장소로 우리 집이 낫겠다고 생각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토토가 먼저 '고양이가 임신한 게 맞다면 창고를 내어줘야 할까?' 하는 카톡을 보냈다(먼저 물어봐줘서 고마웠다). 우리는 우리 집에 큰 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고양이가 우리 집을 선택한다면 머무는 동안 잘 돌봐주기로 했다. 아무래도 고양이용 집을 사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고양이가 밥을 먹으러 오던 시간에 맞춰 나가 봤는데 그림자도 보이지 않더라. 밥그릇을 닦고, 새 물이랑 사료를 담고, 그 위에 영양제도 얹어주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는데 고양이가 기척도 없이 바로 뒤에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얘가 어떻게 이렇게 뿅 하고 나타났지! 고양이는 정말 놀라운 존재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럴 수 있었던 비밀을 차차 알게 되었다. 우리 집 대문으로 향하는 길목에 누군가 쓰다 버린, 식물을 길렀던 용도로 보이는 큰 고무 다라(?)가 있는데, 고양이는 내가 집에 올 때까지 거기에 숨어서 기다렸던 거였다. 그 고무 다라 안에서 포카랑 토토가 지나가면 눈만 내놓고 보고 있고, 내가 지나가면 모습을 나타냈던 것! 눈만 내놓고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감쪽같이 숨었다고 생각했겠지만 귀는 감출 수 없고)... 



이제 날이 점점 추워질 거라서 거기서 기다리면 안 돼... 오늘 고양이 집 주문했어. 

이제 거기서 기다려, '다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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