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16(수)
오늘 산부인과에 다녀왔다. 번호표를 뽑고, 체중과 혈압을 재는데 몸무게가 임신 전보다 10kg이 늘었더라. 체중계에 올라가는 그때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한테 한소리 들을 것 같아서 긴장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 선생님: 산모분 몸무게가 더 늘어서 오셨네요?(내가 이럼 안된다고 했는데) 맛있는 거 많이 드셨어요?(대체 뭐를 그렇게 열심히 드셨죠?) 과일 드셨어요?(내가 많이 먹지 말랬는데)
나: 과일이요? 아니요? 저 과일 많이 안 먹었어요...(억울합니다)
의사 선생님: 음... 그럼 빵 같은 건요?(안 먹고 쪘을 리가 없잖아요)
나: 아... 네... 빵은 먹었습니다...
선생님의 물음에 실토했지만, 어쩐지 숙제를 못해간 학생처럼 주눅이 들어서는 스스로를 변호하지 못한 것 같아서 속상했다. "선생님, 제가 뒤늦게 단팥빵, 슈크림빵의 맛을 알아버렸습니다. 처음부터 먹으려고 한 건 아니었고요,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배고파서 하나 사 먹었는데 어찌나 맛있던지요. 그게 아니라면 아삭하고 씹히는 양상추와 토마토가 들어있는 샌드위치도 좋아하게 되었어요. 너무너무 맛있는 걸요. 이렇게 맛있는 걸 어떻게 안 먹고 참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이런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그저 마음속으로만 전할 뿐이었고, 나의 이런 복잡한 마음을 알아챘는지는 모르겠지만, 토토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선생님은 나한테는 말해봤자 도통 들어먹지를 않으니, '남편분이라도 관리를 해주셔야 합니다'하는 눈빛으로 토토를 바라보며 이 시기에 체중이 늘면 나중에 막달이 됐을 때 산모의 몸이 힘들어진다고 (다시) 설명해주셨다. 토토가 부담되었을까 봐 앞으로 식단을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의 심각한 표정을 살폈는지 선생님은 웃으시며 "이제 다음 달에 올 때는 1kg만 쪄오세요."라고 했다.
임신 말기에는 거의 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간다던데 아직은 병원 점기 검진을 한 달마다 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검사를 받고 와서 신경을 쓴다고 해도 마음이 풀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한 달만에 다시 병원을 찾으면 체중계 앞에서 절망하고, 선생님에게 잔소리를 듣는 과정이 지난 4개월 동안 반복되었던 것이다. 내가 다른 산모들보다 관리에도 소홀하고 멋대로 이 시기를 보내는 걸까 싶어서 자책을 하기도 하지만, 내 몸 상태는 어떤지 물어봐주는 친구들에게 "애는 잘 자라고 있는데 출산 후에 힘들다고... 선생님이 제발 살 좀 그만 쪄오래!"라고 토로할 때마다 "아니, 살 얘기는 왜 하고 그래! 건강만 하면 되지!"라며 편을 들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마음이 금세 풀어지곤 한다.
오늘은 입체 초음파로 마꼬의 심장, 머리, 배 둘레, 몸무게, 눈, 코, 입과 귀의 위치, 손가락이랑 발가락의 개수를 확인했다. 그래도 심장에 미세한 구멍이나 구개열, 청력과 시력 검진은 초음파로 볼 수 없는 영역이라서 80%만 확인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고, 나머지 20%는 태어나야지만 알 수 있단다. 아직도 의학기술로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20%의 불안보다는 80%가 주는 안도감이 크더라. 그리고 비록 내 체중은 늘었지만, 마꼬는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보인 다니 다행이었다. 사실 그동안 선생님이 약도 잘 챙겨 먹냐고 물었을 때 잘 먹는다고 거짓말을 했는데(약 먹는 거 너무 싫다) 다음 검진 때는 피검사가 예정되어 있으니 다시 잘 챙겨 먹어야겠다. 학생 때도 항상 벼락치기로 공부를 했었는데, 임산부가 되어서 약 먹을 때도 이러는구나. 습관은 정말 평생 가나 보다. 그나저나 선생님... 단팥빵, 슈크림 빵은 이제 안 먹을게요. 하지만 샌드위치는... 채소가 들어간 거니까 먹어도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