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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Jan 06. 2020

빵은 포기 못해요

2019. 10. 16(수)

오늘 산부인과에 다녀왔다. 번호표를 뽑고, 체중과 혈압을 재는데 몸무게가 임신 전보다 10kg이 늘었더라. 체중계에 올라가는 그때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한테 한소리 들을 것 같아서 긴장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 선생님: 산모분 몸무게가 더 늘어서 오셨네요?(내가 이럼 안된다고 했는데) 맛있는 거 많이 드셨어요?(대체 뭐를 그렇게 열심히 드셨죠?) 과일 드셨어요?(내가 많이 먹지 말랬는데)

나: 과일이요? 아니요? 저 과일 많이 안 먹었어요...(억울합니다)

의사 선생님: 음... 그럼 빵 같은 건요?(안 먹고 쪘을 리가 없잖아요)

나: 아... 네... 빵은 먹었습니다...



선생님의 물음에 실토했지만, 어쩐지 숙제를 못해간 학생처럼 주눅이 들어서는 스스로를 변호하지 못한 것 같아서 속상했다. "선생님, 제가 뒤늦게 단팥빵, 슈크림빵의 맛을 알아버렸습니다. 처음부터 먹으려고 한 건 아니었고요,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배고파서 하나 사 먹었는데 어찌나 맛있던지요. 그게 아니라면 아삭하고 씹히는 양상추와 토마토가 들어있는 샌드위치도 좋아하게 되었어요. 너무너무 맛있는 걸요. 이렇게 맛있는 걸 어떻게 안 먹고 참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이런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그저 마음속으로만 전할 뿐이었고, 나의 이런 복잡한 마음을 알아챘는지는 모르겠지만, 토토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선생님은 나한테는 말해봤자 도통 들어먹지를 않으니, '남편분이라도 관리를 해주셔야 합니다'하는 눈빛으로 토토를 바라보며 이 시기에 체중이 늘면 나중에 막달이 됐을 때 산모의 몸이 힘들어진다고 (다시) 설명해주셨다. 토토가 부담되었을까 봐 앞으로 식단을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의 심각한 표정을 살폈는지 선생님은 웃으시며 "이제 다음 달에 올 때는 1kg만 쪄오세요."라고 했다.



임신 말기에는 거의 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간다던데 아직은 병원 점기 검진을 한 달마다 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검사를 받고 와서 신경을 쓴다고 해도 마음이 풀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한 달만에 다시 병원을 찾으면 체중계 앞에서 절망하고, 선생님에게 잔소리를 듣는 과정이 지난 4개월 동안 반복되었던 것이다. 내가 다른 산모들보다 관리에도 소홀하고 멋대로 이 시기를 보내는 걸까 싶어서 자책을 하기도 하지만, 내 몸 상태는 어떤지 물어봐주는 친구들에게 "애는 잘 자라고 있는데 출산 후에 힘들다고... 선생님이 제발 살 좀 그만 쪄오래!"라고 토로할 때마다 "아니, 살 얘기는 왜 하고 그래! 건강만 하면 되지!"라며 편을 들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마음이 금세 풀어지곤 한다.



오늘은 입체 초음파로 마꼬의 심장, 머리, 배 둘레, 몸무게, 눈, 코, 입과 귀의 위치, 손가락이랑 발가락의 개수를 확인했다. 그래도 심장에 미세한 구멍이나 구개열, 청력과 시력 검진은 초음파로 볼 수 없는 영역이라서 80%만 확인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고, 나머지 20%는 태어나야지만 알 수 있단다. 아직도 의학기술로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20%의 불안보다는 80%가 주는 안도감이 크더라. 그리고 비록 내 체중은 늘었지만, 마꼬는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보인 다니 다행이었다. 사실 그동안 선생님이 약도 잘 챙겨 먹냐고 물었을 때 잘 먹는다고 거짓말을 했는데(약 먹는 거 너무 싫다) 다음 검진 때는 피검사가 예정되어 있으니 다시 잘 챙겨 먹어야겠다. 학생 때도 항상 벼락치기로 공부를 했었는데, 임산부가 되어서 약 먹을 때도 이러는구나. 습관은 정말 평생 가나 보다. 그나저나 선생님... 단팥빵, 슈크림 빵은 이제 안 먹을게요. 하지만 샌드위치는... 채소가 들어간 거니까 먹어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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