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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Jan 07. 2020

임신은 안물 안궁

2019. 10. 18(금)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보았을 때였다. 주인공 동백이의 회상씬에서 초음파 사진이 나오는 장면을 보고 웃음이 났다. 시청자들이 동백이가 들고 있는 사진이 태아, 쪼꼬미 필구를 찍은 사진인지 모를까 봐 그랬을까? 젤리 곰 이야기가 나오는 주수라면 초음파 속의 태아는 그냥 강낭콩만 해야 한다. 하지만 동백이가 들고 있는 사진 속의 필구는 팔다리가 모두 달려있는, 사람의 형상을 축소시킨 작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나도 임신하기 전엔 임신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자연히 임신의 진행과정에 대해 무지했다. 그런데 임신을 경험해보니 임신의 상세한 진행과정을 이런 식으로 왜곡하거나, 미화하거나, 덮어두고 '~하더라'하는 이야기들만 둥둥 떠다니는 사회의 어떤 부분이 싫어지더라. 또, 임신한 상태가 신성, 거룩한 것이라는 덧씌운 이미지를 얻거나 무작정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도 싫었다. 임신 초기에 주위 친구들에게 소식을 알렸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몸조심해'였는데 걱정해주는 마음에 고마움으로 답했지만, 나는 늘 그 말 대신 '출산 전에 뭐하고 싶은 거 없어?'라고 물어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도 임신한 상대의 몸을 먼저 걱정해주는 말을 이전에 다른 친구들에게 했던 전적이 있으므로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염려해주는 것보다 조금은 더 산모 개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축하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나의 일상을 공유했던 SNS 계정에서도 임신 라이프를 언급하면 팔로워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 가까운 지인이었던 분들도 더 이상 멘션이나 마음 찍기가 오지 않는 걸로 보아 '나를 뮤트 했구나' 하고 짐작되기도 하고(나는 트위터 유저다). 물론 타임라인을 어떻게 꾸릴지는 그분들의 선택이지만! 임신의 과정과 임신의 상태는 왜 늘 안물 안궁이어야 하는 걸까. 내가 오늘 하루 무엇을 먹었고, 어디에 갔고, 누구를 만났고, 어떤 걸 경험했는지를 공유해왔던 것처럼, 내가 경험하는 임신의 상태도 그렇게 보이기는 어려운 걸까. 임신의 경험은 꼭 당사자 되어서만 알게 되는 일이어야 하는지... 매일매일이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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