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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Jan 12. 2020

좋은 사람, 좋은 부모

2019. 10. 27(일)

나의 첫 템플 스테이 장소는 용주사였다. 용주사는 서울에서 자차로 한 시간 반 가량 이동해 천안과 기안을 지나면 나오는 한적한 도로 옆 작은 절이었다. 당시 템플 스테이의 담당 스님 두 분이 비구니 스님이어서 마음이 더 편했던 기억이 있다. 스님들은 자유시간에도 오가며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대부분 스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당시 용주사에서 만난, 템플스테이를 여러 번 다녀온 바 있는 지인은 비구님 스님들이 진행하는 템플스테이는 처음이었다고, 다녔던 곳 중에서 제일 좋았다고 했다. 첫 번째 템플스테이의 경험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첫 기억이 좋아서였는지, 잠시 일상에 쉼표를 찍고 싶었던 건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한 달 전, 템플 스테이 모집 공고를 보고 또 신청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서울에서 열리는 일정이라고 하니 솔깃했다. 나는 대부분의 토요일마다 일을 하기 때문에 임신한 후로 일을 마치고 먼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이젠 조금 부담이 되기 때문이었다. 봉은사는 서울의 빌딩 숲 안에 있어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 됐다. 서울의 가장 붐비는 곳에서 코너만 돌아서면 한적한 절이 있다니! 기분이 묘했다. 아니나 다를까 템플스테이의 첫날이 일정이 나의 수업일정과 겹쳤고, 일을 마치고 이동하느라 오전 일정에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조계종 직원분께 미리 양해를 구했다. 저녁 식사를 오후 5시에 한다고 해서 식사시간에 늦으면 폐가 될까 봐(용주사에서는 식사시간을 놓쳐서 스텝분들이 따로 빵을 챙겨주셨었다), 밖에서 따로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또, 밤에 출출해질 것 같아서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간단한 간식거리도 샀다. 절에 도착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신 조계종 직원분의 안내에 따라 방을 안내받아 짐 정리 후에 옷을 갈아입었다. 108배를 하러 소강당으로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일러스트레이터 허안나 작가와 회화와 설치작업을 하는 김은정 작가, 그리고 그녀의 남편을 만났다. 안나와 은정은 처음 보는 사이라 서로 소개를 시켜주었다. 나는 108배에 참여하지는 않고, 뒷자리에 가만히 앉아 기도문을 집중해 들었다. 불과 삼십 분 전에도 도심 속을 휘젓고 다녔는데 고요한 절 한가운데 있자니 순간 이동이라도 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일정은 밤 9시에 끝이 났다. 스님은 잠들기 전에 봉은사의 야경보기를 추천해주셨다. 우리 넷은 어둑어둑해진 절을 천천히 걸었다. 찬 바람이 코에 시큰하게 닿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높은 빌딩에서 밝히는 크고 작은 불빛들이 봉은사를 애워싸고 있었다. 빌딩의 야경을 절에서 보다니, 그것도 나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라면 지금쯤에야 저녁을 먹었을 텐데 조금 허기가 졌다. 혹시 나처럼 다들 배가 고플까싶어서 호주머니에 넣어갔던 간식을 꺼냈다. "초콜릿 먹을래?"하고 물었더니, 셋 모두 "먹을래요, 먹을래!"라고 외쳐서 웃었다. 다 같이 코를 훌쩍이며 같은 옷을 입고 초콜릿을 까먹는데 단식원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템플 스테이 담당자분이 내가 임산부인 것을 알고, 마침 빈 방이 있다며 제공해주신 덕에 감사히도 편히 묵을 수 있었다. 나와 은정, 안나 셋은 새벽까지 수다를 떨었다.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와 명상, 요가를 했다. 후에 아침 공양 시간을 가졌는데, 어제 내가 봉은사에서 저녁을 먹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던 두 동생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은정이는 나를 보자마자 인사 대신 "언니, 왜 이제 왔어요! 저녁을 같이 먹었어야 했는데!"라고 외쳤다). 봉은사는 밥이 정말 맛있더라. 내 생애 먹어봤던 한식 중에 제일 꿀맛이었다. 맛있게 잘 먹었다고 애쓰셨을 보살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렸다. 마지막 일정으로 스님과의 차담 시간을 가졌다. 스님은 차를 내리시며 앉아있던 참가자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한 가지씩 물어보라고 하셨다. 다른 분들의 고민과 스님이 주시는 답변을 들으며 공감을 하기도, 내가 부족하게 굴었던 지난 일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는 동시에 내 차례가 올 때까지 마음속으로 질문을 고르고 골랐다. 



나는 "여태까지 좋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고민은 해봤지만, 좋은 부모는 어찌 되는지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하고 스님께 질문을 했다. 스님은 나의 질문에 한 불교 신자분의 가정 이야기를 예로 드시며,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라고 답을 주셨다. 그분도 끝까지 아이를 믿어준 덕에 가족 간의 사이가 더 두터워질 수 있었다고 했다. 어릴 때는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사춘기 때부터는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믿어주라고, 그러면 된다고 하셨다. 



차담이 끝나고 짐을 챙겨 신발을 갈아 신고 일어서려는데, 은정이가 곁에서 "언니는 이미 좋은 사람이라서 그런 고민은 안 해도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우리는 봉은사를 벗어나 지하철 역을 향해 걸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발걸음이 조금은 여유로워진 것 같았다. 넷은 지하철 역에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일상으로 돌아온 시간이 순식간이라 아쉬우면서도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토토와 포카, 우리 가족이 몹시 보고 싶어 졌다. 토토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전했다. 토토는 웃으며 자기도 아이가 생긴다면 그렇게 기르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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