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튜디오 포카 Feb 04. 2020

요가를 시작했다

2019. 11. 20(수)

작년 봄, 동네의 한 필라테스 학원에서 할인 프로모션을 크게 열었다. 전단지에 적힌 저렴한 가격에 혹해서 40회 수강권을 끊고 열심히 수업에 나갔다. 온몸이 단단하게 굳은 타입이라 매시간 몸을 찢어가며(?) 고문을 받는 느낌이었지만, 50분 간 스트레칭을 하고 나면 몸이 가뿐해져서 기분이 좋았다. 몸의 라인이 잡혀가는 것에 으쓱한 기분이 들거나, 안되던 자세에 성공한 날에는 퇴근하고 돌아온 토토에게 자랑했다. 계약했던 3개월 동안 차츰차츰 몸의 변화를 느꼈다. 기간 내에 수강권을 다 쓰고 재등록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얼마지 않아 예기치 못하게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 필라테스 학원에 임산부 반은 따로 없어서 2:1 레슨이나 개인 레슨을 받아야 할 텐데, 내 재정상황을 고려하자면, 불가능했기에 어쩔 수 없이 당분간 운동을 쉬기로 했다. 그 후로 임신 초기에는 몸을 조심히 해야 한다고 해서 반려견 산책, 걷기 외에는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았다. 운동으로 늘려놨던 근육은 다시 돌처럼 굳었고, 책상에 붙어서 일을 하느라 목은 점점 짧아져서 거북이처럼 되었는데, 여기에 먹덧으로 체중까지 불어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대로 지내다가는 굴러다닐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몸이 무거워지니 일상의 활력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속이던, 몸이던 둘 중 한쪽엔 병이 날 것만 같았다. 비용은 나중에 고민하더라도 임산부 대상으로 여는 운동 수업을 알아보기로 했는데 마침 내원하던 병원 게시판에서 문화 강좌 수업으로 임산부 요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서둘러 등록했다. 




오늘은 요가 첫날이었다. 평일 낮에 여는 수업이라 수강생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산달이 다 되어 배가 제법 나온 분들도 있었고, 아직 배가 덜 나온 임신 초중반기로 보이는 분들도 있었다. 임신 전에 요가 수업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필라테스보다 운동의 효과가 적게 느꼈었다. 또 자세를 억지로 따라 하다가 오른쪽 무릎에 통증을 느끼게 되었는데, 요가를 할 때마다 아파서 무리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무리는 할 수 조차 없더라... 체중계에서 늘어나는 숫자로만 가늠하던 내 몸무게를 직접 지탱해보니 운동을 쉬었던 만큼 내 몸이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온몸이 동글동글해진 기분이었달까. 동작도 느리고, 호흡도 가쁘고, 마치 유아기의 몸이 된 것 같았다. 제일 뒷자리에 자리를 잡은 터라 다른 분들의 뒷모습을 모두 볼 수 있었는데, 보통은 전신 거울을 보며 다른 사람과의 동작을 비교해 자세를 바로 잡는 편이었지만, 임산부 요가는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모두가 자신의 호흡과 아이에게만 집중하며 스트레칭을 했고, 간혹 몸이 불편해져서 자세를 따라 하기 어려울 때는 쉬는 분들도 계셨다. 모두들 뱃속에 자신의 태아가 있기 때문에 어떤 동작을 하더라도 숨이 가쁠 수밖에 없었다. 동글동글한 몸들이 열심히 몸을 늘려가는 모습은 귀여워 보이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필사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요가 선생님이 생리기간 중의 여성의 몸은 호르몬의 영향으로 모든 뼈마디가 벌어지고 느슨해진다고 했다. 나도 전에 '릴렉신(relaxin)'이라는 이 호르몬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 이 호르몬은 출산 후 4개월까지도 분비가 되어서 모든 부위의 관절이 계속 늘어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요가 선생님은 수강생들에게 "어때요, 임신 전보다 몸이 더 유연해진 것 같지요?"라고 물었는데 수강생들 모두가 동시에 "네???"라며 반문해서 다 같이 웃음이 터졌다.



아무리 호르몬의 도움(?)으로 관절이 늘어나 있다고 하더라도 안 되던 요가 동작은 안되더라... 그래도 다쳤던 무릎의 통증은 미미하게 느껴져서 불편하지 않았다. 출산을 생각하면 아득하고 겁이 나긴 하는데, 내 몸도 나를 돕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그나저나 갑자기 늘어난 내 몸무게를 관절들이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 배의 무게 때문에 앉았다가 일어날 때도 조심해야 하고, 한 동작 한 동작 따라 할 때마다 숨이 무척 가빴다. 고난의 한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래도 좀 기운이 났다. 요가에 등록하길 잘한 것 같다며, 목이 조금 길어진 것 같지 않냐고 토토에게 실컷 자랑했다. 토토는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잡채밥을 먹을 때는 어른이 된 기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