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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Feb 04. 2020

감사한 일에는 감사한 마음만

2019. 11. 18(월)

퇴직 후에 프리랜서가 되기로 마음먹고,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이 모인 신촌의 한 공동작업실에서 월세를 쪼개 내며 6년을 보냈다. 작년 가을, 인왕산 아래로 이사하면서 작업실을 독립했지만, 아직도 그때 만났던 작가님들을 만나곤 한다. 공동 작업실 '츄잉룸'의 멤버로 지내며,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월례 모임을, 연말에는 송년회를, 연초에는 신년회를 가졌다. 오랫동안 시간을 함께 보낸 곳이라 정이 들어서 작업실을 나오기까지도 수개월, 수차례의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그해 연말 송년회에 특별히 초대를 받았는데, 덕분에 새로 영입된 새 멤버들과 인사하는 자리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 새 멈버분들과도 오며가며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지난 멤버이긴 하지만, 올해에도 츄잉룸 송년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작업실 독립 후, 혼자 지내는 시간이 고요해서 마음에 들다가도 가끔씩 말동무가 없는 게 적적하여 팟캐스트를 듣거나 작업하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SNS에 올리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다 같이 모이는 자리에 초대된 것이 설렜다. 



올해의 송년회 멤버는 모임의 주최자인 여행작가 지나, 츄잉룸의 원로 멤버인 정은, 함께 지냈던 개월 수보다 더 오래 알고 지낸 것 같은 안나, 츄잉룸의 새 멤버 재현 언니, 작업실에서 자주 보진 못했어도 매주 업데이트되는 팟캐스트로 친숙한 블블님. 모임의 주최자였던 지나 작가가 모임 장소도 사전에 예약해주어서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맛있는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후식을 먹을 즈음, 츄잉룸 멤버들의 깜짝 임신 축하 선물을 받았다. 예쁘게 포장된 보자기 안에는 새하얀 배냇저고리 세트와 건강을 기원한다는 사슴 모양의 팔베개 그리고 담요가 들어있었다. 몇몇 친구들이 돈을 모아 '호호당'에서 직접 고른 선물이라고 했다. 이렇게 축하하는 마음과 애정으로 응원을 해주는데, 마꼬를 만날 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나가 이때 선물을 개봉하는 나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줬는데, 나중에 받고 보니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어려서인지 표정이 밝지 않아서 아쉬웠다. 더 기뻐하고 신나 했어야 하는데, 신경 써준 것에 고마운 마음이 반, 미안한 마음이 반... 기쁜 마음의 표현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 또 미안해졌다. 친구들도 내가 미안한 마음으로 선물 받기를 원치는 않았을텐데, 바보같이 왜 그랬을까. 앞으로는 고마운 일에는 고마운 마음만 드러내고 싶다고, 감사함만을 잘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나가 우아영 작가님의 책 '아기 말고 내 몸이 궁금해서'도 선물로 주었다. 만나기 한참 전에 미리 사두었는데, 내가 이미 읽고 SNS에 후기글을 올렸던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래도 사두었던거니 다시 또 읽으라며 주었다. 책의 간지에 송년회 자리에 있었던 작가님들이 돌아가며 임신 축하 메시지를 적어주었다. 



선물 받은 보드라운 담요에는 '하얗기는 구름이요, 따숩기는 비단이라. 덮고 자면 꿈결도 달콤하네.'라고 자수로 한땀한땀 시 한구절이 적혀있었다. 마꼬를 재울 때마다 작업실의 옛 동료들이, 그 비단결 같고 따뜻한 마음이 생각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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