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로 Aug 22. 2018

시골살이 시작, 초록 대문 집

시골집을 계약했단다. 지금 당장 손에 잡히지 않지만 언젠간 내 삶에 존재할 것 같았던 시골집. 관리하기 힘들다며 다들 혀를 내두르는 시골집을 꿋꿋하게 알아본 지 3년, 예상보다 빨리 만났네.


시골집 앓이를 시작한 날짜를 기억해. 2016년 9월, 제주 여행이 물꼬였지. 그때 엄마는 관광지와 동떨어진, 그야말로 동네 주민만 사는 작고 조용한 동네의 민박을 예약했더랬어. 긴 팔에 반바지를 입으면 딱 적당한 날씨에 들린 민박집은 마당을 중앙에 두고 본채와 별채, 창고로 이루어진 제주 구옥이었단다. 집을 헐지 않고 뼈대를 그대로 살린 집이라 지붕은 낮고 방은 작았어. 미닫이 나무문을 열면 작은 마루가 한눈에 들어오고 정면과 좌우로 방이 실하게 들어앉아 있었지. 우리 방은 정면에 있는 방이었는데 가장 큰 방임에도 이불 두 채를 까니 꽉 들어차더구나.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거쳐, 공동 현관문을 나서야 비로소 밖과 연결되는 집에서 살아온 엄마에게 ‘즉시’ 야외와 연결되는 시골집은 퍽이나 생경했단다.


이튿날 새벽 5시, 평소보다 일찍 엄마는 눈을 떴어. 다시 잠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깊이 잠든 네 아빠과 너를 둔 채 미닫이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갔지.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데도 마루는 삐걱대는 소리를 냈어. 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내려서는 침묵이 내려앉은 집안과 달리 바깥은 이미 분주해.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지저귀는 새소리에 귀가 열리고, 바람은 따뜻하게 살랑이며 볼을 스쳤으며, 가을 햇볕은 강하지 않게 내리쬐고 있었지. 준비 없이 마주한 아침 풍경은 그야말로 얼떨떨이었다.


 ‘마당’은 실로 대단했어. 가령, 마당 한 귀퉁이에서 네가 흙 놀이를 할 때 엄마, 아빠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지.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아래 아무렇게나 놓인 철제 의자는 아무렇게나 앉아 발가락이나 꼼지락대며 게으름 피우라고 그 자리에 있는 듯 했고. 게으름 의자에 앉아 바람에 스치는 바스락거리는 나뭇 소리만 들을 뿐인데 시간도, 생각도 멈추었어. 재미있는 체험 정도 생각했던 농가에서의 하룻밤이 엄마 세계를 흔든거야. 엄청난 내면의 평화였어.


그 후 엄마는 시골 농가를 찾는 것이 하나의 취미가 되었단다. 시골 지 일이 있을 땐 꼭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며 시골집을 구경했지. 때론 궁궐 같은 한옥집을, 때론 다 쓰러져가는 폐가를 구경하며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날을 기약할 뿐. 1년, 2년 시간이 지날수록 약간의 체념이 생기더구나. 시골집은 대개 그랬어. 너무 멀거나, 너무 허름하거나, 너무 비싸거나. 많고 많은 집 중에서 ‘우리 집’이 될 인연은 결코 쉽게 찾아오지 않더라고. 어쩌면 그럴지 몰라. 사람이 집을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집이 사람을 선택하는 걸지도.


포기하고 있을 찰나에, 어쩌자고 보은의 그 시골집이 엄마를 찾아온 것일까. 어쩌자고 엄마는 집의 간택을 받은 행운의 주인공이 된 것일까. 친구들과의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다음 날, 그동안 잊고 지냈던 ‘시골 농가’를 검색했지. 무의식 중으로 휴대폰 화면을 오르내리던 손가락이 어느 순간 딱 멈추었어. 정보라고는 ‘충북 보은’, 사진이라곤 초록 대문 사진이 전부인 집. 무슨 생각에서인지 1박 2일 여행의 고단함도 잊은 채 집에 들러 너를 차에 태우고 충북 보은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60km 정도를 죽 달리다가 마지막 10km 구불구불 산길을 타고 산 하나를 넘어가는데 괜한 짓을 하는 걸까 내심 후회가 되더라고. 조용한 시골 마을로 들어가니 사진에서 본 초록 대문이 보였어. 오래된 시멘트 담은 거무죽죽하고, 빛바랜 기와지붕이 폐가처럼 빼꼼 보이더구나. 녹 슨 대문은 도어록은커녕, 열쇠 구멍도 없이 자전거 자물쇠로 걸어놓았네. 심란하다. 전화통화에서 안내받은 자물쇠 비밀번호를 맞추니 ‘딸칵’ 이음새가 풀려. 문을 밀어도 열리지 않아 발로 문 아래를 뻥 차니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한숨.


요양차 세 들었다던 전 세입자는 마당 관리를 전혀 하지 않은 듯해. 풀은 제멋대로 자라 있고, 그 흔한 바비큐 시설이나 파라솔 의자는 보이지 않아. 다만 긴 고무장화만 소박한 마루 한 구석에 세워져 있더구나. 집을 등지고 서서 마당을 보니 아로니아 묘목이 열댓 그루 정도 보이고, 대문 바로 옆에는 감나무가 서있어. 오른편에는 빨강 초록 고추가 주렁주렁 달린 텃밭이 보이네. 


작은 쪽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바깥에서 보기와 달리 부엌 한 칸과 방 세 칸이 나란히 붙은 제법 큰 공간이 나왔어. 현 세입자의 살림은 단출했고, 엄마 역시 살림살이가 많지 않으니 갑자기 공간 부자가 된 기분이야. 제일 안쪽 방은 옷방 겸 창고, 중간 방은 자는 방, 이 방은 서재로 써야겠다는 그림이 절로 그려져. 다시 한번 마당을 둘러보고, 초록 대문을 닫고, 자전거 자물쇠를 끼우고, 집 맞은편 담벼락 벽화를 바라보며 통화 버튼을 눌렀어. “계약할게요.”


이 모든 것은 엄마 마음대로 진행되었는데, 평소 벌레, 치안, 더위, 추위, 관리 등 시골집에 대해 다양한 우려를 늘어놓는 아빠와 상의하다가는 지척도 못 갈 판이거든. 하지만 결국, 근질근질한 입을 참지 못하고 아빠에게 집 사진을 날렸지. ‘평상 만들 준비 해.’ 

아빠의 반응은 예상대로야. 하지만 엄마는 알아. 그 누구보다 주말 시골 생활을 제일 즐길 사람은 아빠라는 사실을. 아빠를 이 집의 일꾼으로 내 멋대로 내정하였지만, 그 누구보다 성실하고 자발적인 주인이 되리라는 사실을.


 틈만 나면 엄마한테 전화해서 “진짜 계약했어? 진짜?” 물어대던 아빠가 한날은 엄마에게 그러더구나.

“회사 선배 아버지가 증평에서 농사를 지으신대.”

“응.”

“거기 예초기가 있다더라고.”

“예초기?”

“응, 그거 손으로 다 못 뽑아.”

결국 아빠가 예초기 돌린다는 얘기. 이럴 줄 알았어. 


이사 날짜까지 한 달 넘게 남았어. 그동안 엄마는 시골살이 첫 준비를 담력 키우기로 정했단다. 전원생활 커뮤니티 게시판에 ‘벌레’를 검색하며 온갖 괴생물을 두 눈 똑똑히 뜨고 바라보곤 해. 의연해졌나 싶다가도 발이 지나치게 많거나 발이 아예 없는 것을 번갈아 보다 보면 혼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어. 어쨌거나 일은 벌어졌다. 여유로운 푸른 잔디 뒤 얼마나 많은 땀이 존재할까. 반 평생 해로한 중년부부처럼 함께 잡초를 뽑고, 땀을 흘리고, 막걸리를 마시고, 개구리 소리를 듣고, 밤하늘을 볼 거야. 너는 새까맣게 타거나 말거나 시골 태양 아래 뛰어 놀겠지. 시골에서 우리는 쉴 거야. 바람과 햇살과 흙의 도움을 받아.




이전 07화 나의 시계, 너의 시계, 우리의 시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