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알바
1984년생 엄마가 2014년생 아이에게
알바를 시작했단다. 오늘로써 6일째구나. 동네 식당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네 시간을 일해. 겨우 네 시간인데도 오랜만에 하는 노동이 피곤했던지 처음 3일간은 녹초가 되어버렸어. 엄마의 주된 일은 손님에게 주문받고,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나르고, 다 먹고 일어난 테이블을 정리하는 일이야. 점심시간인 11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정신없이 바쁘고 나머지 시간은 여유 있는 편이란다. 10시에 출근해서 비질을 하고 밀대를 밀어. 집이 아닌 공간을 청소하는 것이 아마 난생처음이지 않을까 싶어. 밀대를 미는 것도 몇 년 만인지!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어렸을 때엔 학교 청소를 학생들이 직접 했거든. 매주 토요일 서른몇 개의 책걸상을 교실 뒤편으로 민 뒤 빗자루로 쓸고 밀대로 걸레질을 했지. 나무로 된 마룻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하얀 왁스를 두고 마른걸레로 문지르기도 하고 말이야. 꽤나 힘든 일이어서 얼마나 남았나 몇 번을 고개를 들어 눈대중을 해댔지. 걸레가 지나간 자리는 맨질 맨질 윤이 났어. 겨우 다 했나 싶으면 교실 뒤편에 있던 책걸상을 이번에는 앞쪽으로 미는 거야. 그렇게 온 교실의 아이들이 각자의 구역을 쓸고 닦았는데 대학교에 입학하니 학생들에게 청소를 안 시키더구나. 고등학생 때까지는 ‘우리 교실’, ‘우리 학교’라는 개념이 있었는데 대학생이 되며 흐릿해진 걸 보면 공간을 직접 청소하고 관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알 것 같아. 지금 엄마가 일하는 가게도 엄마의 수고가 들어가서 그런지 공간과 조금 더 연결되는 느낌이야. 너도 알다시피 엄마가 정리정돈은 잘해도 청소에는 게으르잖니. 집에서도 안 하는 청소를 밖에서 해대니 아빠가 보시면 혀를 찰 일이지?
예전에는 밀대 걸레의 막대가 나무여서 굉장히 무거웠는데, 요즘 나오는 밀대는 스테인리스여서 가볍더구나. 밀대 걸레 물기 짜는 도구도 있어서 그새 밀대도 많이 진화했구나 싶어. 처음 보는 도구를 어떻게 쓰는지 몰라 헤매고 있으니 식당 사장님이 사용법을 알려주시더구나. V자로 생긴 공간에 밀대의 걸레 부분을 넣고 발로 페달을 밟으니 V자가 닫히며 밀대의 물기를 쭉 빼주는 거 있지. 엄마가 학생일 때는 밀대의 걸레 부분을 헹군 뒤 발로 꾹꾹 밟아댔거든. 몸무게가 실릴 때마다 시커먼 구정물이 줄줄 나왔지. 몇 번을 반복해도 구정물의 농도가 옅어질 뿐 맑은 물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슬그머니 수도꼭지를 잠그곤 했는데.
청소가 끝나면 주방으로 가서 숟가락과 젓가락이 가득 든 바구니를 가지고 나와. 지난밤 살균되어 나온 수저들이지. 마른행주로 닦은 뒤 쟁반 위에 가지런히 정리해. 테이블 위 수저통 속으로 들어갈 채비를 마친 아이들이야. 수저를 모두 닦으면 테이블을 돌며 수저통을 채워 넣어. 어제저녁 어느 테이블에 손님이 많이 앉았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지. 수저통이 유독 빈 테이블이 있거든. 헐비었던 수저통이 반짝거리는 수저로 꽉 차면 엄마 마음도 든든해져. 그다음은 밥그릇에 밥을 퍼 담을 차례야. 집의 밥솥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식당용 압력밥솥 뚜껑을 열면 하얀 김이 후끈 올라와. 마찬가지로 집의 주걱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식당용 주걱으로 밥을 휘휘 저으면 뜨거운 김이 엄마 손을 후끈 감싸. 밥을 퍼담는 이 시간은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야. 빈 밥그릇을 가득 채우는 행위가 만족감을 준단다. 이런저런 정리를 하다 보면 11시 30분이 다 돼가. 곧 손님들이 몰려올 시간이야. 처음에는 정말 정신이 없더니 하루하루 지날수록 나름의 시스템이 구축되어가며 조금 나아지고 있어.
12시 30분이 지나면 만석이던 테이블이 하나둘씩 비기 시작해. 그릇들로 가득 찬 테이블의 잔반을 한데 모아. 손도 안 댄 반찬들이 무척 아깝지만 한 번 나간 반찬들은 모두 버려야 해. 반찬을 버리며 엄마는 생각한단다. 앞으로 식당에 가면 먹지 않을 반찬은 직원에게 말해서 미리 빼야겠다고 말이야. 이렇게 뒷정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오후 1시.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소리가 가게에 울리기 시작하지.
엄마는 몸을 쓰고 싶었어. 요 몇 년간 책상에 앉아 기획서니, 글이니 너무 글자만 보고 사니 육체노동에 대한 갈망이 피어오르더라. 원래는 건물 청소나 하우스키핑, 그러니까 몸을 좀 힘들게 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이마저도 이력서를 요구하더라고. 이력서라면 엄마는 질렸어. 엄마의 직업인 강사는 강의를 나갈 때마다 강의처에 이력서를 줘야 하거든. 이력서 양식도 제각기라 이력서를 그쪽 양식에 맞게끔 매번 작성해야 해.
처음에는 이력서 쓰는 일이 좋았어. 그동안 엄마가 했던 활동이나 성과들이 늘어날수록 이력서는 빽빽이 채워졌고 이는 엄마의 훈장처럼 느껴졌지. 엄마가 지난 6년 간 해온 강의나 출간은 모두 엄마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야. 이름을 세우고 하는 일인 만큼 자긍심과 만족감이 높았어. 엄마는 엄마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행복했어. 출간이 그렇고, 방송 출연이 그렇고, 인터뷰가 그랬지. 저자 강연도 엄마가 무척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이고 말이야.
그런데 말이지, 내가 어떤 일을 했고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고 그래서 이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내는 듯한 이 행위가 어느 순간 피로해지기 시작했단다. 나 이런 사람이에요, 끈질기게 세상에 외쳐야 하는 이 일에 조금 지쳤나 봐. 무언가 되어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고 그냥 몸을 쓰고 싶은 거야. 인터넷 구인 사이트나 일자리센터를 통하니 이곳도 이력서가 기본이라 그냥 말았어. 그리고 지역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린 거야. ‘오전 알바 구해요. 서비스직 잘해요.’ 딱 두 줄.
마침 당장 다음 날 새로 오픈하는 가게와 연이 닿았고,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물어보지 않은 채 당장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는지 여부만 묻고는 일이 성사된 거야. 심지어 서빙 경험이 있는지조차 묻지 않았지. 엄마의 출근 첫날은 가게 오픈일이라 모두 정신이 없었고 마치 임시직인 것처럼 일을 시작했어. 그러니까 인사만 하고 일을 시작한 거야. 다 정신이 없으니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도 없었고 눈치껏 일을 찾아야 했어. 22살에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도움이 되더라고. 우선 테이블 번호부터 외웠어. 1번부터 13번까지. 한눈에 몇 번 테이블인지 바로 인지가 되어야 일 하는 게 편하거든. 혼자 메뉴판을 보고 가격을 외우고 기본 반찬 세팅에 대해 물어보았지. 같이 아르바이트하는 직원이 비질을 하길래, 그럼 걸레질을 해야겠구나 싶어 밀대를 가져오고, 테이블 휴지곽이 비어서 채워 넣어야 하는데 휴지는 창고에 있겠구나 추측해서 창고로 가니 휴지 박스가 정말로 있고. 이런 식으로 일을 시작한 거야.
엄마는 이 일이 재미있어. 그리고 마음이 편해. 이 일은 심플하고 직관적이야. 주문을 받으면 음식이 나오고 음식을 다 먹으면 치우면 되지.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10시고 일이 끝나는 시간은 오후 2시야. 매일 하는 일이 가져다주는 가벼운 긴장감, 일상의 규칙성 등 반복되는 일정한 루틴이 있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줘. 적지만 매달 일정 금액이 입금된다는 것도 신나는 일이지. 쉬기 위해, 여가를 위해 알바를 시작한 선택은 탁월했고 당분간은 하루 4시간의 노동을 즐길 거야. 손님에게 인사하고 숟가락을 닦고 걸레질을 하고 음식을 나르고 쉴 새 없이 홀을 누비고 ‘오전 10시 출근’ 덕분에 늦잠을 잘 수 없는 이 노동 말이야. 엄마는 요즘 생각을 안 해. 무언가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무언가 되지 못하여 조급했던 엄마는 몸을 움직임으로써 뇌를 쉬게 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