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 민 선생님, 나 이제 퇴근해요~
- 네 원장님, 수고하셨어요.
- 네 계속 수고해주세요~
오리온 남편이 생긴 이후로 나의 생활은 완벽한 밸런스를 이루었다.
커져가는 아이에 대한 애착 - 애정이라 하지 않고 애착이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으로
점점 늘려만 가던 육아시간과 그에 반비례 하던 나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상태는
더이상 버틸 수가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오리온에서 굿 타이밍으로 제안해준 남편 옵션은 그야말로
나에게 꼭, 반드시 필요한 변화였다.
내가 선택한 지후의 아빠, 그는 성실하고 다정하며 안정적인 성격의 남자였다.
물론 이 남자와 실제로 연애를 한다면 지루했을 법도 하지만,
지금 내가 필요한 사람은 연애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저없이 그를 선택했다.
연애하고 싶은 남자
결혼하고 싶은 남자
아이를 같이 키우고 싶은 남자
함께 늙어가고 싶은 남자
어떻게 저 많은 조건들에 부합하는 딱 한 사람을 고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는 말이다.
미션 임파서블 아닌가.
하지만 오리온에서는 필요에 맞는 대상을 찾을 수 있다.
그것도 정말 내 취향의 남자들을 말이다.
그렇게 나는 정민준씨(라고 하는 프로그램)를 지후의 아빠로 맞아들였고
그와의 데이트에서 그는 상상이상으로 나에게 안정감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원하는 답, 내가 바라는 행동, 호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다정한 말투,
거기에 훤칠한 키와 강인한 어깨, 따뜻한 눈빛 등등
좀 더 쾌활하고 적극적이었던 다른 후보들 보다 그가 주는 신뢰감이 좋았다.
나는 다시 일을 하기로 했다.
민준씨에게 지후를 맡기고, 최소 6시간만 접속하여 지후를 만나기로 했다.
이모님과 있을 때보다, 아빠와 있다가 만난 지후는 보다 더 밝고 많이 웃고,
그리고 조금 더 빨리 자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독박육아에서 벗어나 내 시간, 내 생활을 가지니 살 것 같았다.
물론 현실에서 모든 남편들이 이렇게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고, 쉴 시간 없이 남편마저 챙겨줘야 한다고 하던데.
오리온의 남편은 그렇지 않았다.
드디어 나의 삶이 밸런스를 찾기 시작했다.
나의 상담일은 스스로의 오리온 접속경험이 추가되자 더욱 성공가도를 달렸다.
내 환자들의 리뷰는 늘 칭찬일색이었고,
'공감받으면서 마음도 치유되는 이 시대 최고의 상담사'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내 병원을 개원하고 의사들을 두 명 고용했다.
확장된 사업이었지만 나는 매일 6시간씩은 지후를 만나러 가야 했고
나의 페이닥터들이 나대신 오리온 시대의 마음관리를 해줄 것이었다.
지후와 민준씨가 기다리고 있는 나의 집. 나의 가정으로 갈 생각을 하니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기쁨과 설렘이 차올랐다.
집으로 들어와 리클라이너 위에 놓인 니보 수트를 입어본다.
- 아, 뭣 좀 먹어야지.
이제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오는 길에 사온 소고기 덮밥과 탄산수를 먹었다.
든든한 체력이 뒷받침된다면 6시간동안의 오리온은 더더욱 즐거울 것이다.
양치까지 마치고, 이제 의자에 누웠다.
니보 수트를 입고 접속 버튼을 누른다.
눈을 감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오리온의 내 집이 떠오르기를
가만히 기다린다.
?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버튼을 눌러보지만 감은 눈 앞은 캄캄할 뿐이다.
여러번 버튼을 누르고, 수트를 벗었다 입었다를 반복해본다.
아무 반응이 없다가 드디어 메세지가 떴다.
-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황급히 시계를 들여다본다.
접속하기로 한 시간보다 30분이나 지났다.
오늘 민준씨와 지후를 데리고 오르세 미술관에 가기로 한 날이다.
아이들을 위한 가이드까지 예약해놓아서 정말 기대하던 날이었고
30분 후가 가이드를 만나기로 한 시간이다.
- 이거 왜 안돼!
고요하던 나의 마음에 순식간에 광풍이 몰아쳤다.
두 손이 벌벌 떨리고 정수리부터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 겨울에 덮고자던 오리털 이불을 휙. 빼앗긴 아기처럼
맛있게 빨아 먹고 있던 막대 사탕이 하수구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처럼
엄청난 상실의 공포가 엄습해왔다.
- 며...몇 번 이었지?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고 검색을 해본다.
타자도 잘 되지 않는다.
음성 검색이다.
- 오리온 고객센터.
고객센터 번호가 나타나 통화버튼을 눌렀다.
나는 핸드폰을 부서져라 꽉 잡고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서서는
안내 메시지와 클래식 음악을 한참 듣고 있었다.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에 땀이 흥건히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대기인원 몇십명을 거쳐 드디어 상담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 네..저...저...수트가 안되는데 왜 안되는거에요?
- 수트 고장 접수 말씀이신가요? 현재 사용하시는 수트 버전이 어떻게 되시나요?
- 아, 저..니보 11이에요.
- 네, 제품명 니보 11이시구요, 시리얼 넘버가 어떻게 되나요?
- 시리얼 넘버요? 모르는데요....
- 시리얼 넘버로 조회가 가능하십니다. 시리얼 넘버는 수트 하단 왼쪽을 보시면 확인가능하세요.
시리얼 넘버라니.
이 상황에 시리얼 넘버라니.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아내고 은색 수트에 흰색으로 적혀있어
도저히 발견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시리얼 넘버를 찾아냈다.
- 네 시리얼 넘버 확인되셨습니다. 신연재 고객님이시네요.
- 네네...
- 구입을 3년 전에 하셨어요. 중간 점검 기록이 없으시네요.
- 중간 점검 꼭 해야 한다는 말이 없었는데요.
- 네 필수는 아니신데, 고객님처럼 장기 접속하시는 분들은 해주시는게
수트 고장없이 오래 쓰실 수 있으세요.
- 그런가요...몰랐네요.
- 고객님 제가 지금 원격으로 확인해보니, 수트에 일부 마모된 부품이 보입니다.
촉각 쪽으로 보이는데요, 이 부분 수리하셔야 계속 잘 사용가능하세요.
SW 쪽 문제면 제가 원격으로 해결해드릴 수 있는데,
부품 교체가 필요한 부분이라 죄송하지만 제품 회수하여 수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 그럼 얼마나 걸리나요?
- 고객님, 지금 접수하시면 48번이시거든요. 저희가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드릴 테지만
앞에 기다리고 계신 고객님들이 계셔서요. 최소 일주일은 걸릴 것 같아요.
- 일주일이요?
일주일.
일주일이라니.
오리온 접속없이 일주일을 보내라니.
지후를 안지 않고
지후를 재우지 않고
지후를 먹이지 않고
일주일이나?
민준씨와 지후와 함께 하기로 했던 그 많은 계획들은 어쩌지.
아 맞다.
내일 모레 지후 유치원에서 학부모 참관수업이 있다고 했었는데.
그건 어쩌지?
이것이 공황상태인가 싶을 정도로
머리속에 온갖 생각들이 떠올라 정신없이 엉키기를 반복했다.
이것은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억지로 뺏긴 듯한.
아니 자기 방에서 잘 자고 있던 아이가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 것 같은.
충격이고 실종이었다.
나의 집
나의 아이
나의 가족이
사라져버렸다.
그 멍청한 부품 고장때문에.
- 아니, 그럼 일주일 동안 제 아이를 못본다는 말씀이세요?
내 목에서 쇳소리가 나왔다.
목소리도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 고객님, 죄송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일주일이 가장 짧은 수리시간으로 나오세요.
오늘 바로 제품 회수될 수 있도록 빠르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상담원의 목소리는 전혀 죄송하지가 않은 것 같았다.
- 일주일 동안 그냥 기다려야 하는거에요? 다른 수트를 빌리거나 다른 방법이 없는건가요?
- 고객님, 고객님의 수트가 고객님의 신체와 신경조직에 최적화되어 셋팅되어있기 때문에
다른 수트를 입으시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지럼증, 구토, 두통등을 호소하신 분들이 계셔서 대여는 불가하세요.
- 제가 지금 육아 중인데요. 그럼 아이는 일주일 동안 어떡하나요?
제가 매일 6시간씩 돌보게 되어있는데요.
- 고객님, 그 부분 문제없도록 제가 시스템에 처리해 놓겠습니다.
수트 수리 기간동안은 고객님 남편이신 이민준 님께서 아이를 전적으로 잘 돌보실 겁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아빠가 있지만... 그래도 아이가 엄마를 찾을텐데요. 아이에게 따로 연락할 방법이 없나요?
상담원이 작게 한숨쉬는 소리가 들렸다.
- 고객님, 오리온 접속은 니보 수트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원하시면 메모를 전송해드리겠습니다. 영상으로 아이에게 보내는 메세지를 찍어서 저희 고객 센터에 접수해주세요. 바로 연결 도와드릴까요?
- 네, 네.. 그렇게 해주세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지후도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상실감, 당황스러움, 분노를 똑같이 느낄 것이다.
내 아이를 안심시켜줘야 한다.
나의 핸드폰이 부르르 떨리더니
동영상 모드가 실행되었다.
- 지....지후야......엄마야. 오늘 유치원 잘 다녀왔어?
엄마랑 아빠랑 오늘 미술관 같이 가기로 했는데...
엄마가...회사에서 좀 더 일해야 할거 같애.... 미안해....흑...
예상치도 못하게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 흑....!! 지후야...엄마가 금방....금방 마치고 갈께....
그동안...아빠 말씀 잘 듣고...잘 놀고 있어야돼...알았지?
자기 전에 뭐 먹지 말고...쉬 꼭 하고 자? 알았지?
동영상을 저장하고 오리온 홈페이지에 들어가 업로드했다.
지후가 괜히 더 울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괜히 영상을 보냈다. 민준씨가 잘 할텐데.
한 시간 후,
드론이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현관 문을 열어보니 박스에 연결된 드론 한 대가 도착해있었다.
박스 앞에 안내문에는,
[ 박스 입구를 열고 니보 제품을 더스트 백에 넣은 후 박스를 닫으세요. ]
간략하지만 명확한 가이드가 적혀이었다.
나는 신주단지처럼 니보 수트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혹시라도 다른 부품마저 고장나 수리기간이 연장될까봐
한걸음 한걸음 조심 조심 옮겼다.
그리고 전용 더스트 백에 넣고 박스 입구를 닫았다.
박스는 반 자동으로 작동되어 삼중 잠금장치가 나의 니보수트를 안전하게 밀폐했다.
[ 박스를 닫았으면 출발 버튼을 눌러주세요.]
커다란 '출발' 버튼을 누르자 드론의 프로펠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웅--------
드론이 날아간 뿌연 하늘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내 방으로 들어갈 일도 없고, 때에 맞춰 식사를 할 일도 없고,
그야말로
할 일이 없어졌다.
나의 삶이 반토막 난 기분이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내 인생 중 절반이
한순간 사라져버렸다.
어둑어둑한 내 집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먼지가 쌓여있는 바닥과 소파.
아까 먹은 밥 그릇이 그대로 남아있는 식탁.
작은 소리로 돌아가고 있는 공기 청정기.
나는 갑자기 기분이 차분해졌다.
차분이라기 보다는, 깊이 깊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무거운 공기가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아
더 이상 서있을 수가 없었다.
거실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불과 두시간 전의 충격과 죽을 것 같은 마음때문인지
나는 모든 것이 귀찮고 피곤한 상태가 되었다.
- 좀 쉬자.
한참을 바닥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소파로 기어올라간다.
그리고 얼마 만인지 모르는 낮잠에 빠져들었다.
너무 피곤하다.
정말 너무,
너무 너무 피곤하다.
좀 잘께.
좀 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