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남편을 추가하시겠습니까?
독박 육아의 끝
- 지후야!!!!!
- 으아아아아아아아앙!!!!!!
오늘도다.
또 다치고 말았다.
기관지염에서 나은지 채 2주도 안되어 병원신세를 져야 한단 말인가.
아이가 아프거나 다치면
엄마는 너무나 힘들어진다.
원래도 힘든데, 컨디션이 안좋은 아이가 칭얼대고 매달리고 짜증을 부리고,
잘 먹던 밥도 입맛이 없어 잘 안먹고,
그러면 기운이 없어 다시 기분이 다운되는 엄청난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저 아기띠를 하거나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면 되던 천사 아기 지후는
2살이 되자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뛰어내리고, 집어 던지며
더 많은 모험과 위험에 자신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 하....
오리온에서 12시간씩 아이를 돌보는 일은 6시간과는 차원이 달랐다.
반드시 쉬어야 하는 2번의 휴식시간만을 애타게 기다리게 되었다.
휴식시간은 30분씩 2회로 1시간이었다.
그 동안 점심과 저녁 식사를 하고 스트레칭을 하며 12시간의 접속 시간을 버텨야 하는 것이다.
소아과 대기실에서 지후와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 신연재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오리온 육아 프로그램 담당자입니다.
부드러운 낮은 목소리의 남자였다.
- 아 네, 안녕하세요.
- 네, 잘 지내고 계신가요?
- 아니요...지금도 병원왔어요.
- 아이고, 지후가 또 다쳤나요?
- 네, 오늘은 아무래도 발목을 접지른것 같아요. 꽤 높은 미끄럼틀 위에서 뛰어내렸거든요.
- 지후 여전하네요. 아기때도 그렇게 뛰는 걸 좋아하더니.
- 하하. 그러게요.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나는 대화할 여력도 없었다.
그저 하루 종일, 니보고 오리온이고 다 꺼버리고 푹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고
또 오리온에 신청하면 이모님을 배정하여 언제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지후의 말간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차마 아이에게 못할 짓인 것 같았다.
- 그래도 내가 엄만데, 그럴 수는 없지... 엄마 되기가 쉬운가.
이런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버텨나가고 있었다.
- 저, 고객님. 다름 아니라 요즘 많이 지치신 것 같아서
고객님 컨디션 회복을 위한 옵션을 소개해드리려고 연락드렸습니다.
- 옵션이요?
- 네, 고객님 정말 지후에게 너무너무 좋은 엄마신데요, 엄마도 쉬셔야죠.
그래야 더 힘내서 사랑을 많이 많이 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 맞아요....그런데 막상 아이얼굴 보면 푹 쉬게가 안되네요. 남의 손에 맡기기도 좀 그렇구요...
- 그럼요, 그럼요.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지후에게 아빠를 만들어주면 어떠실까요?
- ......네?
- 하하. 지후도 아빠가 있으면 엄마와 놀이할 때와는 다른 부분의 발달이 이루어질 수 있구요,
또 무엇보다, 엄마가 마음놓고 휴식하실 수 있으니까요.
- 제가 어떻게 마음을 놓나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지후를 맡기구요.
- 고객님, 당연히 지후 아빠는 고객님이 선택하시는 겁니다.
당장 결정하시는 것은 아니구요, 온전히 고객님이 아빠에 대한 믿음이 생기실 때 선택하시면 됩니다.
선택하시고 나셔도 지후를 꼭 맡기시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후에게 좀 더 다양한 성장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이 이 옵션의 가장 큰 장점이죠.
엄마가 쉴 수 있는 건, 함께 오는 보너스 같은거죠. 하하.
정말 솔깃한 제안이었다.
솔깃하지만, 실제 남편이 있는 입장에서 또 한명의 남편이 생긴다는 건 메타버스에서라도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 그런데... 그 남편이 되실 분들을 지원을 받으신 건가요?
아빠되기 프로그램에 등록하신 분들 인건가요?
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
- 아, 고객님. 그렇지 않구요.
지후 아버님으로 추천드릴 분들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으세요. 그러니 불편하시지 않을 겁니다.
- 아... 그러면 오리온에서 개발하신 남편이라는 건가요?
- 네, 맞습니다. 저희 오리온의 연애, 결혼 프로그램 남성 캐릭터 중 육아 부문에서 높은 스코어를 내는 것으로 증명된 캐릭터를 선정하여 고객님께 제공해 드립니다.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언제 확인할 수 있나요?
- 고객님, 먼저 추가 등록을 도와드릴께요.
눈앞의 투명 디스플레이가 나타나더니
메뉴판이 나타난다.
육아 프로그램 카테고리가 클릭되고, 옵션 메뉴로 들어가니
남편 추가, 이모님 추가, 어머니 추가 등이 보인다.
남편 추가 메뉴가 클릭되고 작은 글씨로 약관이 로딩되었다.
- 고객님, 일단 약관 중에 중요한 부분만 설명드리고 고객님 서명 받겠습니다. 남편 후보분들은 5명까지 만나보실 수 있구요, 1일씩 데이트 하시고 그 다음주 월요일에 확정해주시면 됩니다. 최소 개월은 유지해주셔야 하고, 3번까지 변경할 수 있습니다.
상담원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따라잡기가 힘들다.
- 뭘 유지해요?
- 아, 죄송합니다. 한번 선정하신 남편과는 1개월간 공동육아를 하셔야 합니다. 그 이전에 변경하시게 되면 페널티가 발생하세요.
- 변경할 수도 있는거에요?
- 그럼요, 데이트와 육아는 다르니까요. 한달 경험해보시고 변경원하시면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 좋네요. 혹시 결혼 프로그램도 이렇게 남편을 바꿔가며 경험할 수 있는 건가요?
- 하하하하, 결혼 프로그램은 육아보다는 애착 형성을 위한 필수 유지 기간이 더 길어요. 아무래도 육아 프로그램은 파트너, 협력 적인 의미가 강하다 보니 기간이 짧은 편이구요.
배우자든 파트너든 뭐든,
바꿀 수 있다는 건 정말 획기적인 것 같다.
현실에서는 사람을 바꾸는 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인데 말이다. 그게 남이든, 나이든.
- 저 등록할께요. 여기 싸인하면 되나요?
- 네네, 그리고 옵션 추가비는 일 2시간 기준 월 100만원 입니다. 고객님 1년 이상 프로그램 이용 중이셔서 20% 할인가격 80만원으로 결제해드릴게요. 물론 시간이 늘어나면 비용 추가되시구요.
모든 것이 돈이다.
그러나 문득, 고요하고 어둡게 죽어있는 나의 집을 떠올린다.
그 곳에서 돈을 쌓아놓고 있느니
내 아이가 있고, 곧 생길 아이의 아빠도 있는 이 곳 오리온에서 돈을 쓰는 것이 훨씬 의미있게 느껴진다.
- 고객님, 감사합니다.
1시간 후에 남편 후보 프로필 보내드리겠습니다.
5명 골라주시면 미팅 일정 잡아드릴게요.
쇼핑은 늘 즐겁다.
하물며 남편 쇼핑이라니!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