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집 살림
오랜만에 상담실 문을 열었다.
- 뭐지, 3일만인가.
예상보다 엄마되기 프로그램은 고난이도였다.
니보 11의 성능은 너무나 훌륭해서 임신, 출산의 경험은 떠올리기도 싫을 정도였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접속을 해제하고 나면 기절하듯 곯아떨어졌고
오랜 공복에 새벽에 저절로 잠이 깨면 강렬한 허기에 인스턴트 라면이나 빵 등을 허겁지겁 먹었다.
이제 3개월 째.
최소 접속시간을 채우려다보니 수면부족과 영양부족에 시달렸다.
현실이라면 몸보신해야 한다며 각종 보양식을 매일 먹었어야 하는 기간.
오리온에서의 출산은 몸이 축나는 것은 아니라지만, 아주 아닌것도 아닌듯하다.
이대로 지내다가는 정말 건강에 무리가 올 것 같아
상담실에 일주일 휴가를 내고 푹 쉬려고 했지만
엄마의 삶에는 이제 푹 쉬는 휴가란 없다.
휴가 기간에도 아이는 돌봐야 하는 것이다.
쉬는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3일을 보낸 후 나는 상담실에 출근했다.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훈님의 3번째 갱신이 되지 않았다.
지훈님의 후손들은 더이상 아버지/할아버지의 생명연장을 부담할 수가 없었다.
돌아가신지 10년이 넘은 지훈님을 위해 후손들의 삶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소울 빌리지에서 방문하여
지훈님의 구좌를 정리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는데
담당 상담사인 나의 서명이 필요한 문서들이 있다고 했다.
지훈님과, 정확히 말하면 지훈님의 뇌파와 대화하던 채널이 해지된 것이 맞는지
함께 확인하고 해지선고를 한 후 서명한다.
병원에서 의사들이 하던 사망선고와 같은 절차다.
- 휴가 중이신데 뵙자고 해서 죄송합니다.
- 아니에요. 해지선고 건인데요. 제가 해야죠.
상담 명단을 띄우고 지훈님의 이름을 클릭한다.
늘 초록색으로 '연결됨' 표시가 있던 칸에 이제는 '연결되지 않음' 빨간색이 뜬다.
소울 빌리지 담당자는 이리 저리 클릭을 하며
실제로 지훈님의 흔적이 없음을 확인한 후 나의 서명을 받아갔다.
내일이면 '해지' 라는 검정색 표시가 뜰 것이었다.
오랜만에 앉은 상담실 소파가 아늑했다.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깊이 잠들어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른다.
오리온에서 아기를 돌보는 일은 6시간 동안 논스톱이었다.
모두 처음 해보는 일이고 낯설어서 이리 저리 허둥지둥 하기 일쑤였고
신생아 아기는 툭하면 자지러질듯이 울어댔다.
육아서적과 블로그를 보고 본대로 하는데도
아기는 계속 그치지 않고 울었다.
우유도 안먹고 기저귀도 젖지 않았는데
왜 울까. 왜 울까.
그렇게 바라던 아기라서 처음 며칠은 황홀경 그 자체였다.
신기하고, 신기해서
만져보고, 또 만져보았다.
오리온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프로그램이라더니,
정말 아기는 리얼했다.
그 보드라운 솜털과 콤콤한 냄새.
접혀진 목 사이의 때까지, 그대로 구현했다.
심지어 아기는 손톱과 발톱도 자랐다.
신생아용 손톱가위로 손을 벌벌 떨며 손톱을 처음 잘라준 날은
목뒤와 어깨가 결려서 제대로 눕지도 못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목욕을 시킨 날은.....
아기가 하도 울어
이러다 내가 아기를 어쩌는 거 아닌가 싶어
결국 울면서 오리온 고객센터에 연락했다.
힘들다.
힘들다.
죽겠다.
이 생각이 머리를 지배한지 꽤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소할까. 해지할까.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엄마라는 일만큼 내 모든 것을 바쳐서 한 일이 있었던가.
나는 지금 내 세포 하나 하나까지도 소진하며 이 아기의 엄마노릇을 하고 있다.
그런데 오리온에서 나오면, 상담사 일도 해야 한다. 현실의 일은 또 나를 기다리고 있다.
현실을 해지하고 싶을 지경이다.
나는 지금 현실과 오리온 사이에서 두개의 인생을 살고 있다.
하나의 인생은 숨막힐 것 같이 고요한, 고독한 인생.
하나의 인생은 숨막힐 것 같이 피곤한, 요란한 인생.
오리온에서의 요란한 인생은 고달프지만 오감으로 가득차있다.
울고 웃고 기쁘고 슬픈 수십가지 감정이 수시로 내 마음속을 휘젓는다.
풍요롭다.
힘들지만
풍요롭다는 느낌이다.
실로 오랜만에 써보는 단어인 것 같다.
- 띵동.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환자가 접속한 소리에 퍼뜩 눈을 떴다.
급히 몸을 일으켜 화면을 보니 은주님이다.
오리온에서 여행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시고,
마지막 상담 때 꿈에 그리던 세계 일주를 떠난다고 했었다.
벌써 다녀오신 건가.
휴가 중이었지만 오랜만에 접속한 분이라 냉정하게 끊을 수가 없었다.
- 안녕하세요, 은주님.
- 선생님.....선생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 무슨 일이세요? 지금 우시는 거에요?
영상 온 해도 될까요?
밝고 명랑한 은주님이 울고 있다. 무슨 일일까.
벽면 커다란 스크린에 은주님의 모습이 나타났다.
눈물을 흘린지 오래된 듯 눈은 부어있었고, 바닥에 엎드린 채였다.
화면 옆에 옆으로 넘어진 휠체어가 보였다.
은주님은 하반신 마비였다.
- 은주님, 왜 울고 계세요. 저한테 얘기해보세요.
- 흑...선생님....흑.....저.... 저 이제 여행을 못할 것 같아요....
돈이 없어요...
- 아...네.. 세계 일주는 다녀오신 거에요?
- 흑...네....세계 일주하다 보니까 너무 좋아서 계속 기간을 연장했더니...
생각보다 비용이 너무 많이 나와서요... 등록 쿠폰이 끝나버렸어요.... 저 이제 어떡해요?
전 여행을 못가면 못살 것 같아요. 휠체어 위에서 남은 제 삶을 보내야 한다면 차라리 죽어버릴래요!
역시 오리온의 문제다.
역시 돈의 문제다.
몸의 장애가 주는 물리적인 결핍을 극복하게 해주는 오리온의 마법은 이렇게,
많은 이들로 하여금 이성을 잃고 과도한 지출을 하게 하고 있었다.
그 세계에 있다보면,
이제 현실에서는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휠체어 위에서는.
- 은주님, 은주님? 진정하시고, 일단 기댈 곳을 찾아서 앉아보세요.
그리고 저 따라해보세요.
두 손을 가슴위에 교차해서 얹고, 깊게 심호흡 하세요.
두 개의 인생 중에 하나가 끝장난 것 같은.
하필이면 더 좋은 쪽이 빨리 끝나 버린 것 같은.
그 암담한 기분.
이제 은주님은 오랜 우울증에 사로잡힐 것이다.
오리온에서 잠시 잊었던 자신의 장애를 다시금 새로이 인식하며
처음부터, 다시 처음부터, 좌절감과 심적고통에 적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잘 살아나가려는 생각이란 자리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리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은
돈을 모아 오리온에서 다시 한 번 자유로운 신체를 누리는 것이었다.
그 희망은 돈이 떨어지는 순간 다시 사라지지만
그 다른 어떤 것도, 어떤 위로도 대안이 될 수 없었다.
한 번 맛 본 자유를 잊기엔
오리온은 너무나 치밀하고, 진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