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응급실
"여보. 응급실 가자."
"면역력이 저하된 아이는 감염에 취약합니다.
감염이 되면 봄철 산불처럼 순식간에 염증이 번질 수 있습니다."
"...뭐에 감염이 되는건가요?"
"흔한 감기 바이러스, 곰팡이 바이러스, 음식에서 오는 바이러스 다양합니다.
집 환경을 위생적으로 관리하고 청소 자주 하시고.....
특히 출근했다 오는 아빠나 형제들 손 잘 씻고, 철저히 하세요.
감염 증상은 발열이니 열이 나면 바로 응급실로 오세요."
"그럼 열이 몇도까지 나면 와야 하나요?"
"아이들마다 다른데, 평소 열 패턴에 비해서 오르고 있다 싶으면 오면 됩니다."
"열 패턴이요?"
"이제부터 희망신호등 이라는 수첩에 매 2시간마다 열을 재서 기록하세요.
평상시 열 수준보다 오르는지 보일 겁니다."
입원하고 며칠 후 병동 한쪽에 있는 작은 "부모 교육실"에서
성기웅 교수님은 우리 부부를 앉혀놓고 한시간 가량 교육을 하셨다.
A4 용지의 반 페이지는 은우가 받게 될 치료와, 병을 치료하는 약이 오히려 다른 병을 가져올 수 있음을 설명하고, 나머지 반 페이지는 부모의 역할과 감염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아이의 치료를 병원에 맡긴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저는 부모님이 저의 치료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집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기 때문에 집에서 아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아이의 치료결과는 천지차이입니다."
단단히 정신교육을 받고 항암치료를 마친 후 집에 온지 3일째 되는날.
그동안 남편은 세스코를 불러 매트리스 소독과 공기 살균기를 설치하고
애지중지하던 해수 수족관을 해체하여 치우고, 커다란 화분들도 모두 처리했다.
(동식물이 집에 있으면 미생물들이 자라 안된다고 했다)
끓인 물을 식혀서 먹이고, 수저를 삶고, 손으로 줘야 하는 음식이 있으면 비닐장갑을 끼고....
초긴장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는 나날들
"여보, 은우가 열이 나거든?"
".....응? 몇돈데."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조금 넘었다.
자다가 아이 다리가 닿았는데 뜨끈해서 재보니 37.2도라고 한다.
"가자. 응급실 가자."
순식간에 잠이 확 깨면서 심장이 뛰고 머리가 띵했다.
급하게 가방에 기저귀와 우유와 젖병, 물티슈를 챙기고
음... 또 뭐가 필요하지....서성서성대다가 최대한 빨리 응급실로 오라는 교수님 말씀이 생각나
일단 출발했다.
첫째 아이는 한밤중이었고 그대로 남편이 들쳐업고 집을 나섰다.
두 아이를 태우고 병원으로 가는 길
우연인지 연출인지
밖에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한참을 정적속에 있다가,
"열이 나는구나...."
"....뭐가 잘못 됐을까? 어디에 감염된 걸까..."
답이 없는 질문을 서로에게, 자신에게 하며 자책감과 함께 응급실로 달려갔다.
그 새벽 시간에도 응급실은 문전성시였다.
먼저 온 앰뷸런스 불빛이 요란하게 돌고 있고
코로나 시국이라 응급실 내부 대기실에서 대기할 수 없고 밖에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이미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저....지금 항암치료 중인데요, 열이 나서 왔거든요. 열나면 빨리 오라고 했어요"
"네 아이 이름하고 등록번호 알려주시고 잠깐 기다리세요"
한 20분 정도는 기다린것 같다.
우리는 너무 초조하고 응급실인데도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나 싶었다.
"정은우 아기!!"
"네~~~~"
아기띠를 하고 밖에서 기다리던 나는 드디어 호출을 받아 소아응급실로 들어갔다.
"여보~ 일단 집에 가서 더 자~ 연락하께?"
"응 뭐 더 필요한거 있음 바로 올테니까 연락해~"
"응 알았어~ 호은이 좀 더 재워줘"
소아응급실 격리병실로 들어간 후,
열나면 하는 6종 셋트 검사를 했다.
당시에는 처음 간 응급실이라, 왜 이렇게 끝도없이 검사를 하는지 정말 뭐가 크게 잘못된 건가 싶어 너무 무섭고 긴장되었다.
1. 중심정맥관에서 피검사 - 수치 확인과 감염원인 확인 목적
(관 상태 보고 필요하면 소독 병행)
2. 팔이나 발에서 뽑는 말초피검사 - 감염원인 확인 목적
3. 엑스레이 - 병실로 이동 엑스레이 기계가 들어온다
4. 항생제 반응검사 - 피부에 주사바늘을 찔러 알러지 여부 검사
5. 소변검사 - 감염원인 확인 목적
6. 혈압과 체온
혈압만 재도 울어서, 검사 하나하나 할 때마다 진땀을 뺐다.
아이도 울어서 땀나고, 나도 땀나고, 어찌나 덥던지...
"은우야, 이거는 아픈거 아니야 그냥 사진만 찍을거야."
"은우야, 이거는 쪼금 아플거 같애. 미안해 미안해...."
"은우야, 이거 봐~ 쓔우우우웅~ 빵빵 왔네~~~"
쉴새없이 말을 걸고 떠들었다.
그 말들은 은우 뿐 아니라 나를 위해서 였던 것 같다.
가만히 지켜만 보면 '나 때문에 열이 났어. 내가 더 힘들게 하네..' 란 생각에
너무 괴로울 것 같았다.
항암 시작 후 10일~16일 구간이 백혈구 수치가 바닥을 치기 때문에
그 때를 열나는 구간이라고 했었다.
피검사 결과 백혈구 수치는 10 이었고 (정상 수치는 4천) 바로 항생제와 수액을 달아주었다.
"서8병동에 자리가 나면 바로 올라가실께요"
"아...입원을 해야 하는 건가요?"
"네, 수치가 낮은 상태에서 열이 나면 수치 올라올때까지 입원하셔야 되요"
"얼마나 오래 해요?"
"아이마다 다른데, 보통 5~6일 정도 하더라구요"
응급실에서 다 검사하고, 항생제까지 달았는데 입원도 해야 하다니....
금방 집에 갈 수 있는게 아니었구나.
지친 은우를 우유먹여 재워서 눕히고 한숨 돌렸다.
시간은 아직 새벽 5시
병원에는 시간도 계절도 없다
항상 밝고, 같은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출근해야 하는 남편이 조금 더 잘 수 있도록 기다렸다가
6시반 정도 되었을때 전화를 했다.
"여보, 입원해야 한대. 5~6일 정도."
"아.....그래? 뭐에 감염된거래?"
"결과는 아직 안나왔는데, 지금 수치가 낮아서 며칠 있어야 한대"
"그래...."
"좀 있다 병동으로 올라갈 거 같애. 올라가서 정리하고 필요한 거 알려줄 테니까 자기 이따 퇴근하고 가져다 줘"
"그래? 바로 갖다줘야 하는거 아니야?"
"은우는 우유랑 기저귀 있고 밥은 병원식 신청하면 되니까 저녁까진 버틸수 있을거 같애"
"알았어~ 리스트업해줘"
이송요원을 따라 아기띠를 하고 폴대를 밀며 본관 8층 서8병동으로 올라갔다.
1인실에 일단 격리되어 코로나 검사를 하고
다음날 음성판정이 나온 후에 다른 병실로 옮길 수 있다고 했다.
한참 쿨쿨자고 있는 은우를 깨워 코로나 검사를 하고 ㅠㅠㅠ 다시 재웠다.
그제야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쁘게 오가는 차들,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벌써 길게 줄을 선 택시 스탠드.
서8병동의 1인실은 뷰가 참 좋았다.
도심 속 작은 숲을 옆에 두고 있어서 한참을 바라 보았다.
회진 시간이 교수님이 오셨다.
"네, 열이 났네요. 열이 많이는 안났으니까, 떨어지길 기다려봅시다."
집에서 어떻게 했느냐 추궁할 줄 알았더니, 늘 있는 일인것처럼 얘기하셨다.
교수님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느냐에 따라
하늘위로 날았다가 땅속으로 처박혔다 하는 나날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응급실 첫 경험 이후,
6차 항암을 받으면서 열이 안났던 적은 없었다.
4차 정도 되니까, 응급실로 출동하는 새벽도 익숙해지고, 검사들도 능숙해졌다.
엑스레이나 코로나 검사를 언제 오는지 물어봐서 그 타이밍에 최대한 맞추어
먹이고 재우는 일도 가능해졌다.
내가 할 일은 은우가 겪어야 하는 모든 일들을 최대한 수월하게
더 힘들지는 않게 하는 것 뿐이었다.
왜 그런지 원인을 알아내 자책하고, 앞으로 있을 일을 걱정하는 것보다
지금 해야할 일을 하고 아이를 편하게 해주는 일이 더 중요했다.
그건 투병 중이든 아니든 진리인 것 같다.
이 글을 쓰기로 한 것도, 지난 1년간 내가 느낀 중요한 깨달음을
앞으로 살면서 잊지 않기 위해서다.
1년동안 우리집 현관에는
응급실 가방, 1주일 입원용 가방, 2주 이상용 가방이 준비되어있었다.
언제든지 빨리 출동하기 위해.
"출동준비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