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간호사
중심 정맥관 소독과 헤파린 주입
"소독하는 건 익숙해졌나요?"
안경 너머로 교수님의 눈빛이 나를 향한다.
"아...네 어제 한 번 해봤어요."
"빨리 익숙해져야됩니다. 자꾸 해보세요."
"네 교수님"
항암 1차 입원 중 아침 회진 시간.
엄마에게 중심 정맥관 소독을 연습했는지 확인하시는 교수님이었다.
중심 정맥관은 항암제와 항생제, 수액 등등 앞으로 맞게 될 수많은 약제와
수시로 해야할 채혈 등을 위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튜브로
오른쪽 가슴 윗쪽으로 삽입해 목 아래 피부의 피하지방을 지나 심장으로 들어가는 중심 정맥과 연결되었다.삽입부가 외부에 노출되어있다보니 감염되지 않도록 잘 해주어야 했다.
초기에는 메딕스라는 부직포 반창고로 덮고 3일에 한번씩 소독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입원해 있을 때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알아서 해주시니 난 은우만 잘 잡고 있으면 됐지만
집에 가서가 문제였다.
"집에서는 어머니가 해주셔야해요. 3일에 한 번 해주시는데, 만약 그 전에라도 피나 고름이 배어나온 것 같으면 바로 소독 해주셔야 합니다."
"네..."
"자, 여기 메딕스랑 포비돈 들고 왔으니 어머니가 한번 해보실께요"
"지금요?"
"네~"
간호사 선생님들이 하는걸 여러번 봤지만,
보는 것과 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 먼저 아이와 내가 마스크를 쓰고
- 접착제 제거 스프레이를 메딕스 가장자리에 뿌린다.
(같은 부위에 계속 붙였다 뗐다 하게 되어서, 그냥 떼면 피부가 자극을 많이 받아 나중에 소독할때 아이가 많이 따가워한다고 했다.)
- 메딕스를 조심스럽게 아래에서 위로 떼어낸다.
(위에서 아래로 떼어내면 중심정맥관이 메딕스와 함께 쑥 아래로 빠질수도 있다.)
- 포비돈 스틱으로 삽입부 부터 점점 크게 원을 그리며 3회 소독한다.
- 한번 더 동일하게 소독한다.
- 관의 주변을 소독한다.
- 소독약을 조금 짜낸 스틱으로 한번 더 소독한다.
- 부위가 완전히 마른 후 새로운 메딕스를 붙인다.
은우는 접착제거 스프레이가 몸에 닿기만해도 울었다.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뭔가를 하는 분위기가 공포스럽고 겁이 났을 것이다.
"선생님, 집에서 소독하다가 애가 갑자기 움직이거나 잘못해서 관이 빠지면 어떡해요?"
"그럼 목에 여기 조금 튀어나온 곳 보이시죠? 여기를 꾹 눌러 지혈하시고 삽입부도 누르시고 응급실로 오세요."
말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고 겁이 덜컥 났다.
지혈을 하고 응급실로 오라니.
내 머리속에는 피바다가 된 방 바닥과 허둥지둥하는 나, 자지러지게 우는 은우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처음 집에서 소독하는 몇번은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땀을 한바가지 흘렸다.
남편이 은우의 팔을 잡아주었고 나는 손을 덜덜 떨며 병원에서 연습한 대로 하려고 했다.
왠지 삽입부에 스틱이 닿으면 은우가 아파할 것 같아 주변만 열심히 소독했고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소독약이 다 마르기도 전에 메딕스를 붙여서 몇시간 후 다 떨어져나가기도 했다.
소독할 때 남편과도 많이 싸웠다.
"아니 삽입된 부분을 잘 소독해야지~ 엉뚱한 데를 하면 어떡해?"
"공기가 안통하게 꽉 눌러서 잘 붙여~~"
잔소리에, '니가 해봐라~!!!' 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뭐...틀린말은 없었다. ㅠㅠ
소독이 문제가 아니라, 메딕스의 약한 고정력이 문제였다.
집에 온 은우는 소파에 기어오르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관이 조금씩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진료를 가거나 입원했을 때 보여주면 새로운 의료 아이템들이 제안되었고,
점점 더 강력한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메딕스에서 테가덤으로,
테가덤에서 IV 3000 으로 접착력이 가장 강한 투명 필름을 붙였고
필름은 자꾸 땀과 함께 밀려서 주변 테두리는 하이파픽스로 고정했다.
(그마저도 나중에는 은우가 자꾸 만지작 거리며 떼어내서 수시로 갈아주었다;)
삽입부 관에서 양갈래로 나뉘어지는 빨강관 파랑관이 덜렁거리고 아이가 자꾸 만져서
거기에는 멀티픽스라는 고정 찍찍이를 붙여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중간에 듀오덤을 붙여 관이 움직이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도록 보완했다.
이렇게 튼튼하게 처음부터 해줄 걸.
중간에 은우는 관이 너무 많이 빠져나와서 재수술을 해야 했다.
전문 간호사 선생님이 관 상태를 보시더니, 항암치료를 6개월 이상 해야 하는데 이러다 언제고 쑥 빠질 수 있는 상황이니 다시 잘 넣는게 좋겠다고 하셨다.
미리 가장 강력한 고정방법을 알았으면 그 수술은 안했어도 되는건데.
그 당시에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고 속상하고 또 속상하다.
재수술을 하고 강력한 고정방법을 찾을 때쯤엔
나도 꽤 능숙하게 소독을 하게 되었고, 은우도 편안히 기다려주었다.
손끝은 점점 야무지게 필름을 붙였고, 포비돈이 바싹 마를 때까지 충분히 기다리는 여유도 생겼다.
소독박스 : 손소독제, IV3000, 포비돈 스틱, 접착제거 스프레이, 하이파픽스, 멀티픽스, 듀오덤 (시계방향)
샴푸의자로 샀다가 소독할 때 요긴하게 쓴 의자
소독 전 셋팅상태 - 포비돈 액이 흐르지 않도록 종이컵에 꽂아놓았다.
그렇게 항암치료를 마지막까지 받고 나온 우리 부부의 최대 궁금증은 그거였다.
'이 정맥관은 언제 빼지?'
정맥관에 물 들어갈까봐, 필름이나 다른 고정 아이템들이 젖어서 떨어질까봐
은우는 물놀이는 커녕 샤워도 제대로 못시켰었다.
샤워를 한 번 시키려고 하면 비닐 장갑과 방수 투명필름과 테가덤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후딱 씻기고, 끝난 후에도 안에 고정해놓은 필름이 같이 떼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제거해야 했다.
만약 안에 물이 들어갔거나 안쪽 필름이 밀려내려와 삽입부가 노출되어있으면 바로 다시 소독을 했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간호사들에게 언제쯤 관을 빼냐고 물어보면,
아이마다 다른데, 치료 끝나고도 채혈이나 다른 검사를 위해 필요해서 최소 6개월은 유지한다고 했다.
'아직 멀었구나...'
소독 말고도 task 가 한가지 더 있었다.
관으로 피가 오가다보니, 관이 막히지 않도록 혈액 응고 방지를 위한 헤파린을 1주일에 한 번씩 주입해줘야 했다. 이 기간이 하루라도 벌어지면 관에서 금방 피딱지가 딸려나왔다. 치료 중에는 최소 3일에 한 번씩 병원에 왔으니 간호사 선생님들이 알아서 주입해주셨는데, 외래 간격이 한 달로 벌어지자 이 헤파린 주입도 집에서 해야 했다.
"어머니, 통치에서 교육받으시고 헤파린 처방받아 가시죠."
"네... 지금 교육해주시나요?"
"네 들어오세요."
통원 치료 센터에서 주사기에 헤파린을 정량으로 넣는 법을 보고, 실습하고,
관의 어디를 잡고 주입하고 어떻게 lock 을 하는지도 실습했다.
헤파린이 들어있는 작은 갈색병에서 주사바늘로 헤파린을 빨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공기방울을 빼내려다 헤파린 액이 줄줄 흘러나왔다.
주사기도 무섭고 lock 하는 것을 잊을까봐 내 자신도 무서웠다.
무시무시한 주사기들
"병원 지하에서 주사기랑 알콜 스왑 사가세요. 헤파린은 처방났으니까 약국에서 타가시면 됩니다.
만약 헤파린이 잘 안들어가면 관이 막힌거라, 응급실로 오셔야 해요"
소독과는 다른 차원의 주사기 다루기.
내 아이의 몸에 뭔가를 주입하다니.
잘못되는 건 아니겠지.
관이 막히는 일은 없겠지.
주사기를 밀어넣을 때마다, 쑥 들어갈 때마다,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알콜 스왑으로 닦고 닦고 또 닦고.
완료한 주사기와 헤파린 용액병은 철저히 처리하고.
"여보, 자기 간호사 해도 되겠어."
남편이 주사기를 든 나에게 웃으며 말한다.
"나 자신있어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