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는 곤충, 집착하지 않는 스님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영화의 날씨에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모르겠다. 다리 한 짝은 또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절뚝거리며 방안을 배회한다. 익숙한 곤충이라서 놀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11월 중순 이 추운 날씨에 배고프고 고달픈 생을 이어가는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가 한없이 가여울 뿐. 먹이도 없고, 어디 놔둘 데도 없어서 화단에 놓아주었다. 녀석이 하루라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는 산에서도 밭에서도 굉장히 흔한 곤충이다. 그리 작은 곤충이 아니어서 발견하기도 쉽다. 이름이 좀 길긴 하지만 외우기에 어려운 이름도 아니다. 하지만 나비, 잠자리 같이 유명한 일부 곤충을 제외한 대부분의 곤충들처럼 요 녀석도 사람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간다. 어쩌면 농부들은 알지도 모르겠다. 요 녀석은 농사를 망치는 해충으로 낙인찍혀있기 때문이다.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 Riptortus clavatus Thunberg, 1783
성충은 요래 생겼다. 보디빌더처럼 튼실하고 굵은 뒷다리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달려있고(사진 2 참고) 통통하고 넓적하게 생긴 노린재들과 달리 몸이 길쭉하고 얇다.
요 녀석들의 아기 때 모습을 보면 마치 개미 같다. 잘록한 허리나 걸음걸이는 개미와 똑 닮아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이렇게 다른 곤충을 흉내 내는걸 의태라고 한다.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는 일 년에 2~3번 정도 발생하며 성충으로 겨울을 난다. 성충과 약충(노린재류는 불완전변태를 하기 때문에 유충이 아니라 약충이라고 한다)은 식물의 즙을 빨아먹는데 주로 콩과식물과 벼과식물이다. 요 녀석들은 잎과 줄기를 빨아먹기도 하지만 자기들도 맛있는 건 아는지 콩 꼬투리를 집중공략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콩 꼬투리가 떨어지거나 기형이 되고, 콩 역시 잘 자라지 못해 색이 변하거나 주름이 생기게 되어 농사를 망치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 녀석들로 인한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농약 때문에 천적들이 다 죽어버리다 보니 어부지리로 요 녀석들이 활개를 치게 되었다고 한다. 잘 날아다니다 보니 농약을 칠 때는 멀리 도망갔다가 한참 뒤에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돌아오는 아주 끈질 지고 영악한 놈들이라고. 농약 대신 페로몬을 이용한 트랩으로 잡기도 한다.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는 일반인들에게는 듣보잡일지 몰라도 콩 농가들에게는 한 해 농사를 망치는 철천지원수이다.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는 주로 콩과식물을 먹는다. 이 처럼 동물이 특정한 먹이만 먹거나, 병원균이 특정한 기주에만 침입할 경우 기주 특이성(host specificity)이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초식 곤충은 먹잇감에 대해 놀라우리만큼 까다롭다.
루이스 혼호번과 공저자들이 설명한 바에 따르면
현재까지 알려진 약 40만 종의 초식 곤충 가운데
약 80퍼센트에 해당하는 32만 종이 '기주 특이성'을 띤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오직 한 과에 속한 식물 혹은
그와 밀접한 유연관계에 있는 몇몇 과의 식물만을 먹는다.
니클라스 잰즈와 공저자들에 따르면 뜻밖에도
오직 한 과에 속한 하나의 식물 혹은 몇몇 식물만 먹고사는
엄격한 기주 특이성을 보이는 특수종이
유연관계로 묶이기 힘든 서로 다른 여러 종의 식물을 먹고사는
일반종 보다 수가 훨씬 많다고 한다.
길버드 월드바우어, <곤충의 통찰력>150~151p, 에코리브르
이 말은 주변에 아무리 많은 식물이 있어도 내가 먹는 '그' 식물이 없으면 차라리 굶어 죽는 곤충이 전체 곤충의 80%나 된다는 뜻이다. 누에는 뽕나무와 뽕나무와 가까운 몇몇 식물을 제외하면 절대 먹지 않는다. 배추흰나비는 배추과(십자화과)가 아닌 식물은 먹지 않는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가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먹는데 반해(초식동물이라 해도 다양한 식물을 먹는다) 초식 곤충은 식성이 무척 까다롭다. 다양하게 먹는 것과 일부만 먹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할까. 곤충에게는 기주 특이성이 생존에 더 유리했음이 틀림없다.
기주 특이성은 돌발상황을 사전에 막아준다. 조상 대대로 늘 먹어오던 식물은 지금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안전함이 입증된 먹이이다. 설령 그 식물이 곤충의 피해를 막기 위해 방어 물질을 만드는 식으로 진화한다고 해도 곤충 역시 빠르게 그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처하기도 쉽다.
곤충은 개체수가 많다. 같은 종끼리의 경쟁도 치열한데 다른 종과 먹이를 두고 싸워야 한다면 생존은 더욱 어려워진다. 나와 비슷하고 익숙한 대상과 싸우는 것과 잘 모르는 상대와 싸우는 것, 무엇이 더 수월하겠는가. 기주 특이성은 먹이 영역을 나누는 기능을 한다. 한 곳에 A과, B과, C과 식물이 있을 경우 A과를 먹는 곤충은 B과를 먹는 곤충들과 싸울 필요가 없다. 쓸데없는 싸움에 노출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다.
곤충을 주제로 한 생태수업을 하면 몇몇 아이들은 자기가 애벌레를 집에 데려가서 잘 키울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곤 한다. 그때마다 그건 어렵다고 단호하게 답해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먹이이다. 애벌레가 먹는 신선한 식물을 매일 공급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애벌레들은 식성이 좋고 똥도 무진장 싸댄다. 입과 항문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이 애벌레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엄마들이 동물을 싫어하는 이유는 사육의 노동을 엄마가 짊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애벌레를 잡는다 해도 종류를 모르면(애벌레 때는 모습이 비슷해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이름을 알기가 어렵다) 어떤 먹이를 줘야 할지도 알 수 없다. 괜히 잘 살고 있는 애벌레를 잡아서 굶어 죽이는 경우가 생긴다는 말이다.
생태강사를 하던 시절,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초여름이면 종종 회양목명나방 애벌레를 잡아서 성충까지 키우곤 했었다(키우기 정말 쉬운 곤충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요 녀석들은 주로 회양목을 먹는다. 다행히 회양목은 곳곳에 있기 때문에 먹이 구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똥 치우는 게 일이었다. 어찌나 싸던지... 그리고 좀 더 상태가 좋은 회양목을 구하기 위해 동네를 배회하곤 했다... 애벌레 집사가 쉬운 게 아니에요, 친구들.
특정한 식물만 먹는 초식 곤충들과 달리 스님들은 특정한 음식만 먹어서는 안 된다. 주는 사람 마음대로 준 음식을 무조건 먹어야는데 이것이 바로 탁발이다.
불교국가가 많은 동남아시아, 특히 라오스에 가면 볼 수 이는 탁발. 탁발은 사진에서 보다시피 남에게 음식을 받아먹는 행위를 말한다. 걸식이라고도 한다. 탁발은 역사가 오래된 문화이다. 경전을 보면 부처님 역시 탁발을 나가는 모습이 많이 묘사되어 있는데 탁발은 당시 수행자들의 보편적인 문화였다.
부처님과 스님들은 하루 한 끼, 그것도 정오 이전에 식사를 마쳤다. 만약 탁발에 실패하면 그날 하루는 그냥 굶어야 했다. 부처님 역시 탁발에 실패한 기록이 남아있기도 하다. 스님들은 혼자 또는 다른 스님들과 함께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탁발을 했다. 탁발에는 여러 가지 규칙이 있었는데 가난한 집과 부잣집을 가리지 말고 차례로 탁발하라거나, 한번 갔던 집은 다시 찾아가지 말 것, 하루에 일곱 집까지 다녀서 실패하면 그날 탁발을 포기하라는 등 세세한 사항이 많았다. 그만큼 탁발은 중요하고 엄격했다.
일반인들이 자기가 먹을 음식을 덜어서 스님에게 주기 때문에 당연히 그중에는 고기로 만든 음식도 있었다. 당시에는 스님들이 고기를 먹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율(승단의 강제적인 규칙으로 일반사회의 법과 비슷하다)에 의하면 승려는 밥, 죽, 말린 밥(미숫가루 종류), 생선, 고기를 먹었다. 그렇다고 아무 고기나 되는 것이 아니라 삼정육三淨肉이라고 해서 도축하는 걸 직접 보지 않은 고기와 나를 위해 잡았다는 말을 듣지 않은 고기, 나를 위해 잡았다고 의심되지 않는 고기는 먹어도 괜찮았다. 탁발은 원래 상대방이 주는 대로 먹는 것이다. 맛이 있고 없고를 가릴 수 없고, 취향이나 아니냐를 따질 수 없으며, 채식이냐 육식이냐를 고를 수 없다는 말이다. 특정한 걸 달라고 하거나, 골라 먹는 것 자체가 탁발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탁발은 그저 밥을 먹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수행 그 자체이다. 탁발을 하며 수행자는 음식에 대한 집착을 놓는다. 또한 음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음식을 보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몸소 느끼게 된다. 남에게 밥을 빌어먹다는 생각에 선뜻 발우를 꺼내기 어려울 땐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고 또 내려놓는다.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 소장이 불교신문에 기고한 글(각주 1)을 보면 1950년대 스님들의 절절한 탁발 사연이 나오는데 읽다 보면 가슴 한구석이 왠지 찡해진다.
일반인들에게도 식사는 중요하다. 식사는 인간의 생명을 유지시킬 뿐만 아니라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이기도 하다. 이런 즐거움을 포기하고 하루에 딱 한 끼만, 그것도 남이 주는 대로 받아먹어야 하는 탁발 앞에서 수행자들은 자주 흔들렸다. 불교의 율은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있지 않았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율이 만들어졌는데 음식과 관련된 율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봐서는 음식과 관련한 갈등이나 사건사고가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갔던 집에 또 가지 말라거나 부잣집과 가난한 집을 구별하지 말라는 율이 있다는 말은 누군가는 좋은 음식을 주는 집에 자꾸 갔거나 부잣집만 골라 가서 문제가 생겼음을 보여준다. 맛있는 음식, 풍족한 음식에 대한 집착을 놓기란 수행자에게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허스님이 썼다고 알려진 <선방일기>에서도 치열한 구도심과 함께 배고픔에 대한 절절한 묘사가 이어져 먹고산다는 건 때론 구차하고 비루하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해 준다.
부처님께서 열반이 든 지 100여 년이 지났을 때 계율문제로 교단이 시끄러워진다. 시골 출신의 야사라는 스님이 당시 상업도시였던 바이샬리에 왔다가 이곳 스님들이 계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10개의 문제(십사十事)를 제기한다. 이를 십사비법논쟁이라 한다. 바이살리에서 행해지던 십사는 아래와 같다(각주 2).
1. 염정(鹽淨) : 소금을 약이 아니라 음식물로서 보관해 두었다가 먹는다
2. 이지정(二指淨) : 원래 정오까지 식사를 마쳐야 하나 태양의 그림자가 정오에서 두 손가락 길이 정도를 지날 때까지는 먹어도 된다.
3. 취락간정(聚落間淨): 한번 탁발을 해서 식사를 했으나 정오가 지나지 않았으면 다른 마을에 가서 다시 탁발을 할 수 있다.
4. 주처정(住處淨) : 한 곳에서 포살을 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포살을 할 수 있다.
5. 수의정(隨意淨): 원래 상가의 일을 논할 때 전원참석이 필수이나 모든 비구가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정한 후 나중에 알리고 허가를 받아도 된다.
6. 상법정(常法淨): 스승대부터 해오던 일을 관습적으로 해도 된다.
7. 생화합정(生和合淨): 정오 이후에는 물이나 과즙음료 외에는 먹으면 안 되는데 석밀石蜜을 섞은 우유를 먹어도 된다.
8. 음도루가주정(飮樓伽酒淨) : 발효되지 않은 술을 먹어도 된다.
9. 좌구정(坐具淨) : 좌구(방석)을 규정에 따르지 않고 취향대로 만들어도 된다.
10. 금은정(金銀淨) : 금, 은, 돈을 소유하여도 된다.
이 중 논쟁의 핵심은 염정과 금은정이었지만 잘 보면 10개 중 4, 5, 6, 9,10번을 뺀 5개가 음식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천 년 전의 스님들 역시 먹는데 진심이었던 것이다. 지금 봐서는 저게 문제가 되나 싶기도 하고, 굳이 저렇게라도 해서 먹어야 되나 싶지만 인간의 욕구란 원래 그렇지 않을까. 끝도 없고 방향도 없다. 욕구라는 놈은 사방팔방으로 무한히 뻗어나간다.
십사는 당시 바이샬리에서는 별문제 없이 통용되었지만 원칙주의자들이 보기에는 그저 편법일 뿐이었다. 결국 장로들이(장로는 원래 불교용어로 덕이 높고 존경받는 원로스님을 말한다) 모여 열띤 논쟁을 한 끝에 결론을 내린다. "이건 정법淨法이 아닌 비법非法이다." 이 문제로 결국 승가는 상좌부와 대중부 두 개로 쪼개지게 되었다. 부처님 당시에 제정된 것은 절대 변경할 수 없으니 십사는 잘못됐다고 말하는(비법) 측은 상좌부, 부처님 당시의 계율을 변화된 사회문화에 맞게 수정하거나 완화해도 정법에서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는(정법) 측은 대중부가 되었다. 이를 근본분열이라 하고, 야사의 십사를 논의하기 위해 장로들이 모인 것을 2차 결집이라고 한다.
스님들의 식문화는 중국에 들어와서 크게 변했다. 일단 기후가 달라졌고(남방에는 없는 혹독한 추위는 복장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스님들도 농사를 짓다 보니 하루 한 끼로는 너무 힘들어지게 된 것이다. 결국 하루 세끼를 먹게 되었고, 511년 양나라 무제가 단주육문(斷酒肉文)을 제정하여 육식이 금지되었다.
탁발도 변화를 겪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은 1964년 탁발을 금지했다. 흔히 말하는 '땡중'들의 가짜 탁발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하고, 정식 승려의 정당한 탁발이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기도 하고, 탁발을 수행이나 보시가 아닌 동냥으로 보는 시선도 많아서 부득이하게 폐지하게 되어서 한 세기 이상 우리는 탁발을 볼 수 없다. 물론 개인적으로 스님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는 문화는 남아있지만 어디까지만 '비공식'이고 말이다. 가끔 이벤트성 탁발을 종단 차원에서 하기도 한다. 행여 승복(스님옷)을 입고 가게나 일반 가정에 불쑥 들어와 목탁을 치며 보시(돈)를 요구하는 건 100이면 100 가짜 스님이라고 봐도 된다.
프랑스의 법관이자 미식가인 브리야 사바랭 했다는 '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음식이라는 제한된 취향과 선택이 그 사람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을까.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먹느냐에는 수많은 요인이 관여한다. 게다가 요즘은 먹는 걸로 끝나지 않고, 버리는 문제(음식물 쓰레기, 포장쓰레기 등)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저 말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될 위험을 내포한다. 한 인간은 '나'라는 틀을 통해 음식이라는 대상을 볼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내가 해석한 음식으로 또다시 타인을 재단하는 건 오만하고 위험하지 않을까. 최근에는 음식으로 상대의 도덕성을 가늠하기도 한다. 개인의 건강을 넘어서서 사회와 지구에 더 나은 음식, 정당한 음식이 있다는 주장은 분명 설득력이 있고, 나 역시 이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으며, 현재의 식문화나 식품산업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단 하나의 방법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의 답만으로는 복잡하게 얽힌 식품산업의 실타래를 풀기도 어렵고, 인간의 식욕을 충족하기도 제어하기도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정답을 고집하면 할수록 인간은 정답 외의 음식을 더 갈망하게 된다. 하지 마란 말은 하라는 말보다 항상 강력했음을 기억하자.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는 생존을 위해 콩과식물에 집착하고, 스님들은 해탈하기 위해 음식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 쌀과 고기는 물론이고 물까지 남이 생산한 식품에 기대 목숨을 이어가는 21세기의 도시인인 나는 절식과 과식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요리를 싫어하지만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밥상을 차리며 괴로워한다. 공기, 아니면 이슬(파란색 두꺼비가 들고 있는 그 이슬 말고요)만 먹고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먹는 것도 여전히 골치 아프니 이게 인간의 숙명인지 아니면 먹을 것이 지천이어서 문제인 현대 인간의 배부른 고민인지 모르겠다.
1. 구미래, "[사찰후원의 문화사] <5> 탁발①," 불교신문, 2021년 3월 18일,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938
2. 안양규, "2. 근본분열과 제2결집," 불교신문, 2007년 1월 13일,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78349
1. 박덕기, "[곤충 이야기]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 자닮, 2016년 12월 29일, http://m.jadam.kr/news/articleView.html?idxno=10345
2.3.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 2024년 1월 15일 접속, https://species.nibr.go.kr/species/speciesDetail.do?ktsn=120000024124#;
4. 김철응, "아파트 나무 ‘매미나방의 습격’을 막아라 [김철응의 나무진료 시대]," 한국아파트신문, 2023년 6월 3일, https://www.hap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8925
5. 여태동, "‘꽃보다 청춘’ 감동시킨 평화로운 ‘탁발〈托鉢〉의 나라," 불교신문, 2014년 11월 24일,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37514
6. 교보문고, "선방일기," 2024년 1월 15일 접속,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165397
1. 박부영. 불교풍속고금기. 서울:은행나무, 2007.
2. 길버트 월드바우어, 곤충의 통찰력. 김홍옥 역. 서울:에코리브르,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