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서쪽의 마녀가 죽었다>와 상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쌈 싸먹어

by 정지영

제목만 봐서는 도대체 무슨 영화인가 싶을 것이다. 판타지 영화인가 싶기도 하고. 1994년에 출간된 <서쪽 마녀가 죽었다>는 일본 작가 나시키 가호의 소설로 일본에서 2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이며, 작가는 이 소설로 여러 상을 받았다(한국어 번역본은 비룡소에서 2009년 출간). 소설을 원작으로 2008년 영화가 만들어졌고, 영화는 일본 문부성 청소년 추천 영화로 선정되었다. 일본에서의 유명세와 달리(오래전에 나온 책과 영화라 지금도 유명한지는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낮으니 이 영화나 소설을 모르는 게 당연하다. 나 역시 농업 영화를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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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쪽의 마녀가 죽었다(이하 마녀)>는 청소년 영화이며, 성장 영화이다(이게 왜 농업으로 검색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왕따가 된 중학생 마이가 시골 외딴곳에 사는 외할머니 집에 머물며 경험하는 소소한 일상의 일들(마녀 수업)과 할머니와의 교감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할머니는 본래 영국인이다. 영국인인 할머니가 일본인인 할아버지와 결혼해서 낳은 딸이 마이의 엄마다. 할머니 역을 맡은 배우는 사치 파커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셜리 매클레인의 딸이다. 일본에서 오래 살았다는 설정상 할머니는 대부분 일본어를 하지만 이 말만큼은 영어로 한다. I know. 별것 아닌 이 대사는 불안한 마이의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준다.

영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줄거리를 이야기해야겠다.

중학교에 진학한 마이는 그룹을 지어서 생활해야만 하는 무언의 규칙이 답답해 스스로 혼자가 된다. 마이는 왕따이자 공동의 적이 된다. 등교를 거부하는 마이는 엄마손에 이끌려 외할머니 집에서 잠시 지내기로 한다. 산속 외딴집에서 은둔&자연생활을 하는 할머니와 같이 지내며 마이도 차츰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할머니 집안이 마녀 집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이는 마녀 수업을 받겠다고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할머니의 마녀 수업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정해진 일과를 그대로 따르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었다. 이웃의 겐지 씨 때문에 마음 상할 일이 많았던 마이는 할머니와 여러 번 부딪히다가 크게 싸우게 된다. 다시 부모님이 계신 도시로 돌아가도 마이는 그 앙금이 남아 할머니와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다. 2년 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할머니 집에 간 마이는 할머니가 남겨놓은 메시지를 보게 된다.

할머니는 자연의 삶을 추구하고, 자신의 선택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며 산다. 온화하지만 강단 있는 삶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음식은 대부분 서양식, 그러니까 토스트와 샐러드, 쿠기 종류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일본식으로 아침을 먹었다고 나오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밥순이는 나는 배가 고파진다.

집 주위에 넓게 펼쳐진 텃밭에서는 꽃과 채소가 함께 어울려 자란다. 집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닭장에서는 매일 신선한 계란을 가져올 수 있다. 할머니는 특히 허브를 좋아하는지 허브 종류가 많고, 산 쪽으로 올라가면 산딸기가 양지바른 곳에 한데 모여서 자라고 있다. 산딸기는 잼이 되고, 라벤더는 천연 향수가 되어 시트에 스며든다. 영화에서는 양상추가 나오지만 한국에서 흔히 쌈 싸 먹는 상추는 나오지 않는다. 키우지 않던가, 키우더라도 샐러드용이 아닐까 한다.

한국인의 향수를 자극하고, 힘을 내게 하는 음식은 무엇일까. 한국인이라고 묶어도 개개인마다 다 다를 것이다. 나는 외국에 나가서 알았다. 김치는 생각나지 않는데 믹스커피와 라면이 그렇게 생각나고, 금단현상인지나중에는 먹고 싶어 환장할 지경이 되었다. 어쩌다 고기 요리를 먹을 때면 양념 없이 웰던으로 찹찹찹 구워서 쌈에 싸 먹고 싶었다. 어릴 때는 귀찮아서 먹기 싫었던 쌈이 나이가 들수록 더더더 좋아졌다.

잎에 뭔가를 싸서 찌거나, 라이스페이퍼나 부리토로 채소나 고기를 싸서 먹는 문화는 있어도, 생 채소 잎에 이것저것 넣어서 먹는 쌈문화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알고 있다.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채소를 많이 먹으니 좋고, 식사를 준비하는(식당에서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고기를 덜 소비하게 되고 푸짐해 보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다. 보쌈이든 제육이든 회든 강된장이든 쌈이 곁들여지면 먹기 전에도 먹은 후에도 든든하다. 상추는 식탁의 든든함을 담당하기 위해 나타난 채소가 아닐까.

텃밭에서도 상추는 한 역할을 한다. 텃밭농사를 지으면서 상추를 안 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봄가을 철 모종 판매하는 곳에 가면 상추는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상추는 생명력도 강하고 병충해도 거의 없어서 잘 자란다. 조금 과장하자면 자기 알아서 자라는 독립심 강한 채소다. 모종을 심고 얼마 안 있으면 잎을 수확할 수 있고 계속 잎을 따주는 게 고될 정도로 쑥쑥 자란다. 날이 더워지면 꽃대가 나오고, 이때부터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씨앗을 받을게 아니면 아예 뽑아버리고 가을에 다시 모종을 심으면 된다. 겨울에는 실내에서 키우면 된다. 처음에는 뭣 모르고 상추나 쌈채소류(케일, 쑥갓 등)를 이것저것 심었던 사람들은 상추가 너무 잘 자라 놀라게 된다. 매일 상추쌈을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기껏 키워서 남 갖다 주는, 재주는 내가 부리고 돈은 딴사람이 받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다른 건 다 망해도 상추만큼은 잘 되니 초보 농부로서도 상추는 나의 형편없는 실력을 감춰주고, 뭐 하나라도 갖고 집으로 갈 수 있게 해주는 배려심 깊은 작물이다.

텃밭의 상추처럼 나를 지지해주는 인물이 영화 속에서는 할머니이다. 나는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봤다. 영화와 소설은 거의 똑같은 내용이다. 영화 속 우체부 이야기는 소설에는 없지만 그 외에는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책 뒤에 옮긴이의 말이 있는데 딸과 함께 초고를 읽으면서 함께 울었다는 글을 보고 좀 놀랬다. 나는 영화를 봐도 책을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이런 극과 극의 반응은 어찌 된 영문일까. 나도 모르겠다.

영화(소설) 속 생각할 거리 하나. 할머니는 마이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고 찬찬히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주신다. 고개를 끄떡이며 할머니의 말을 듣던 마이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할머니는 언제나 스스로 결정하라고 하지만, 나는 왠지 할머니가 유도하는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만 같다.'라고 말한다. 청소년기에는 이 두 가지가 참 어렵다. 스스로 결정하기가 어렵고, 남의 말을 걸러 듣기가 어렵다(어른에게도 쉬운일은 아니다). 선택의 폭이 좁기도 하지만, 나만 다른 결정을 내리기가 눈치 보인다. 학교와 학원이라는 좁디좁은 영역 내에서만 생활하는 아이들은 서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진다.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다름이 아니라 틀림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선망이 되어 질투를 부를 수도 있고, 미움이 되어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가장 좋았던 건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학교도 회사도 내가 싫으면 그만둘 수 있고, 만나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으면 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대가(때로는 엄청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마이를 적으로 돌린 같은 반 아이들은 마이보다 더 큰 불안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까딱하면 마이처럼 왕따가 된다는 사실이 매일매일 눈 앞에 보이니 말이다. 마이가 전학을 가고 난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불안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딱히 청소년의 문제만도 아닌 것이 사람들은 누구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누구의 말을 흘려들을지 선택하기가 힘들다. 수많은 말들이 쉴 새 없이 쏟아 들어오니 말이다. 요즘처럼 매체가 많아진 세상에서는 오히려 귀를 막고 싶어진다. 나이 마흔은 불혹이라고 했지만 나는 공자 선생님이 아니라서 그런지 시시때때로 흔들린다. 흔들리면 내가 귀가 얇은가 고민이고, 흔들리지 않으면 내가 꼰대인가 고민이다. 이럴진대 청소년들은 더 할 것이다. 도대체 내 생각은 뭔지,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나라는 필터가 튼튼해야 하는데 필터는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고, 연약하다.

예전에 어느 대안학교에 일을 보러 갔을 때가 생각난다. 그 학교에는 유명한 작가의 자녀가 다니다가 다른 학교로 갔다고 했다.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이 자기 생각이 있어도 부모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산전수전 겪은 부모와 논리 싸움을 벌여도 결국 부모의 의도대로 대화가 흘러가고, 결론도 그렇게 난단다. 겉보기에는 참으로 민주적인 대화를 했지만 어차피 부모가 정한 대로 결정된다고. 유명한 작가도 그렇게 자녀를 대화(?)에서 이겨 다른 학교로 보냈다고 한다. 예민한 마이는 할머니 역시 자기를 한 곳으로 몰고가는건 아닌지 의심한다.

할머니는 주부로서의 삶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워킹맘의 삶을 선택한 딸과 조금 부딪친다. 마이와 한바탕 하고 난 이후 다시 딸을 만난 할머니는 이제 자신이 올드패션일지도 모른다며 쓸쓸한 웃음을 짓는다. 비록 생각도 삶의 방식도 달라도 할머니는 마이가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포근한 후원자이다. 할머니는 말한다. "마녀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의지력이야.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힘, 자신이 결정한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 말이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책에는 다시 도시로 돌아가 새 학교로 간 마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마이에겐 독특한 절친이 생겼다. 절친은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아이니 마이 역시 비주류 중의 비주류로 머물고 있을 것이다. 할머니에게 마녀 수업을 받은 마이는 예전과 달리 모든 일에 끈기를 가지고 도전하고, 그런 모습은 '언제나 똑바로 서서 정면을 응시하는' 왕따 친구에게도 존경심을 일으킨다. 짧은 한 달간의 마녀 수업이 마이의 삶을 튼튼하게 해 주었다.

상추는 초보 농부의 농사를 튼튼하게 해준다. 초보에게도 어디 기대어 쉴 작물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까지는 상추심어서 망했다는 텃밭농부의 한탄을 들어보지 못했다. 괜히 많이 심어서 골치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말이다. 상추 덕분에 초보농부는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농사를 지을 힘을 얻는다.

나는 아직 텃밭에 상추를 심지 않았다. 지난 수요일인 14일 아침 온도는 3도. 중부지방에서는 곡우를 지나 심어야 냉해 피해가 없다고 해서 곡우 지나서 심을 계획이다. 옹기종기 모여서 예쁘게 자라날 상추를 보면서 나는 나만의 마녀 수업을 해나가야겠다. 중1 마이보다 못한 의지력을 가진 불혹의 나이기에 특급 마녀 수업이 필요하다. 서쪽의 마녀(할머니)의 수업을 받지 못하기에 스스로 수업을 해나가야한다.

서울의 마녀, 지금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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