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기적의 사과>와 사과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까? 말까?

by 정지영

텃밭과 나무. 애매한 조합이다. 텃밭에 나무를 심는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상자 텃밭과 임대 텃밭을 이용해 1년생 작물을 주로 심는 도시농부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나는 도시 농부가 된 이후 세 종류의 나무를 심었다. 김포 어딘가에서 구매한 '알프스 오토메(흔히 말하는 미니사과)'를 화분에 심어 볕이 잘 드는 옥상에 내놓았는데 새순이 나올 듯 말 듯하더니 그 상태로 정지, 죽어버렸다. 알프스 오토메와 함께 사온 앵두나무는 1층 화단(반음지)에 심었는데 이듬해부터 매년 응애의 습격을 받고도 꿋꿋하게 자라 많은 앵두를 생산했지만 이사를 하느라 두고 왔다. 시어머니가 시장에서 싸게 사 오셨다는 무화과나무는 주가지가 잘리고 옆가지가 삐쭉 자라 한쪽으로 기울어졌지만 보기와 달리 너무 잘 자라 매년 무화과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화분에 심긴 무화과나무는 여전히 함께 하고 있다. 큰 화분을 이용한다고 해도 과실수는 키우기가 쉽지 않다. 어찌어찌 키운다고 해도 맛있고(당도가 높고) 커다란 과일을 맺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텃밭과 어울리지 않는데도 <기적의 사과>를 뽑은 이유는 유기농업과 관련이 있어서이다.


도시농부 중에는 유기재배를 하는 사람이 많다. 처음에는 유기농업과 관행농업에 대해 쓰려고 했으나 자료 조사를 하다가 포기했다. 내 지식수준으로는 쓸 단계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정확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근거로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쓰고 싶었는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과학적, 언어적 한계도 있지만).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누군가 유기농업의 단점에 대해서 쓴 글을 읽게 되었는데 본문 중에 퇴비로 인한 염류집적에 대해 쓰면서 '염(소금)'이라고 쓴 것을 보았다. 한자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농업(토양학)에서 이야기하는 염은 소금이 아니다. 산에 포함된 음이온과 염기에 포함된 양이온이 결합하여 생성된 화합물을 염이라고 하는데 농업에서는 비료든 퇴비든 그 안의 성분이 토양에 흡착되거나 식물이 흡수하고 남은 성분을 염이라고 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질산태 질소(NO3)와 염소이온(Cl-)이다. 염이 많아져서 쌓이는 걸 염류집적이라고 하고 이렇게 되면 토양의 삼투압이 놓아져 작물은 수분을 흡수할 수가 없어 말라죽게 된다. 내가 지금의 지식과 경험으로 유기VS관행 농업에 대해서 썼다가는 염을 소금이라고 하는 식의 기초적인 실수를 할 것 같아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이 글에서는 사과 재배와 신념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먼저 사과나무 재배. 일단 묘목을 구해서 심어야 한다. 사과나무의 특이한 점은 접을 붙인 나무를 키운다는 것이다. 접을 붙인다는 건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식물을 붙인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아랫부분을 대목, 윗부분을 접수라고 한다. 사과나무의 경우 접수는 후지나 쓰가루(아오리) 등 이고, 대목은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실생대목으로 사과 씨앗을 심어 키운 나무나 꽃사과 종류이다. 두 번째는 이중접목묘이다. 실생대목에 왜성대목을 접목하고 거기다 또 접수(후지, 쓰가루 등)를 접목하는 것이다. 보기에는 하나이지만 실제로는 세 종류의 나무를 붙였다고 보면 된다. 세 번째는 자근대목으로 왜성대목인 M.9나 M.26을 직접 뿌리내리게 해서 여기에다 접수를 접목하는 방법이다. 요즘은 대부분 자근대목을 이용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사과 씨앗을 심지 않고 접을 붙인 나무를 키울까? 사과 안에는 여러 개의 씨앗이 들어있다. 이 씨앗을 심으면 우리가 먹었던 그 사과가 열리지 않는다. 유전자 조합에 의해 전혀 다른 사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자식의 외모가 부모와 비슷하지만 어느 쪽과도 똑같지 않은걸 떠올려보라). 우리가 마트(또는 인터넷 등등)에서 사 먹는 사과는 품종으로 따지면 몇 종류 되지 않는다. 대부분이 후지(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에서 개발한 품종)이고 아오리 역시 일본에서 개발한 쓰가루라는 품종이다. 아래 자료를 보면 2017년 기준으로 후지가 전체 생산 사과의 74%를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주석 1). 2021년인 지금도 크게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만 이런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식용하는 사과 품종은 그리 많지 않다. 유전적으로 거의 똑같거나 비슷한 사과나무들이 대규모로 재배되고 있기에 사과나무는 병해충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있다. 농약을 많이 뿌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농사로 사과 품종.png 농업기술길잡이5_사과재배



묘목을 심는다고 그 해에 바로 사과가 열리지 않는다. 심고 나서 최소 1~2년은 걸린다고 한다. 적당히 가지치기를 하고, 물을 주고, 영양공급도 하고, 무엇보다 농약을 열심히 쳐야 산업적으로 의미 있는 사과 생산이 가능하다. 사과는 농약을 많이 치는 과일 중 하나이다(주석 2). <기적의 사과>는 무농약, 무비료로 사과 재배에 성공한 일본의 사과농부 기무라 아키노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2006년 일본 NHK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에서 '사과 농가 기무라 아키노리 씨'가 방송된 이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논픽션 작가 이사카와 다쿠지가 기무라 아키노리를 인터뷰하고 <기적의 사과>라는 제목을 책을 발행했고, 이 책을 원작으로 2013년 일본에서 영화를 찍었다. 책은 기무라 아키노리를 중심으로, 영화는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차이가 있다. 둘 다 읽고, 볼 만하다.



일본에서 제작한 영화 <기적의 사과>


아오모리현 이와키마치에서 태어난 기무라 아키노리는 결혼을 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사과 재배를 시작했다. 그도 처음에는 여느 농가와 마찬가지로 일정에 맞춰 일 년에 10여 차례 농약을 뿌렸다고 한다. 농약을 뿌리고 나면 그 독성 때문에 아내가 며칠씩 앓아눕고, 우연히 읽게 된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법>에 감명을 받아 1978년 즈음부터 무농약, 무비료 사과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확한 연도는 기무라 아키노리도 기억하지 못해 책을 쓴 이사카와 다쿠지가 추측한 연도이다. 8년 동안 나무는 해충과 병에 시달려 말라가고(당연히 사과 한 알 맺지 못했다고), 기무리 가족은 파산 직전까지 갔다. 경제사정이 나빠지자 그는 낮에는 사과밭에서 농사를 짓고, 밤에는 유흥업소에서 일을 했다. 농한기에는 타지에 나가 일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되게 일해서 받은 돈은 얼마 안 되었지만 그 돈으로 겨우 가족이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도 힘든데 주위의 멸시와 비난 역시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가족들은 불평 없이 그의 결정을 따랐다고 한다. 8년째 되던 해 여름, 농사를 포기하고 자살을 하려고 숲으로 올라간 그는 우연히 도토리나무를 발견하게 되었고, 비료도 농약도 없이 잘 자라는 나무의 비결의 흙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로 콩과 잡초를 키우며(?) 땅심과 나무의 뿌리가 살아나도록 하자 사과나무도 살아나 9년 만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었다. 기무라 아키노리는 지금까지 무농약, 무비료 원칙을 고수하며 농사를 짓고 있고,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농사법을 설파하는 유명 농부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무농약, 무비료 사과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있다고 알고 있다. 비료는 비료관리법상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화학비료와 유기질비료는 보통비료(대부분 환 같이 동그랗거나 동물 사료 같이 펠릿처럼 생겼고, 잘 녹는다)이고, 흔히 퇴비라고 말하는 것은 부산물 비료(나뭇잎, 짚, 오줌 등 유기물을 썩힌 것으로 발효가 덜 되면 똥냄새가 난다)이다. 대개 무비료라고 하면 보통비료를 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하다. 기무리 아키노리는 퇴비도 전혀 주지 않는다고 한다. 무농약은 애매하다. 어디까지 농약이라고 봐야 하는지 딱히 합의된 게 없다. 기무라 아키노리는 식초를 사과나무에 뿌린다. 식초를 농약이라고 할 것인가 아닌가. 친환경농업에서 자주 쓰는 석회유황합제(또는 최근에 개발된 황토유황합제)나 보르도액도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 엄격주의자는 무농약이란 아무것도 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법적으로 유기농은 '유기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농산물'이고 무농약은 '유기합성농약을 사용하지 않되 화학비료를 권장량의 3분의 1만 사용해 생산한 농산물'이다(주석 3). 유기농산물 생산, 제조, 가공 과정에 사용할 수 있는 허용물질로 만든 제품은 유기농업자재라고 하고 2021년 4월 기준 1905개가 등록되어있다(주석 4). 미생물을 이용한 농약이나 석회유황합제도 유기농업자재에 속한다. 정리하자면 농약도 화학농약 따로 유기농약 따로 있다는 말이다. 유기농약을 치고 '우리는 화학농약을 안 쳐요'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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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폐지된 '먹거리X파일'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한 번쯤은 들어보지 않았나 싶다. 좋은 식재료를 쓰는 '착한식당'을 찾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MSG를 안 써야지 착한 식당이라는 단순(무식)한 논리로 전국에 논란을 일으켰다(MGS 말고도 논란거리는 더 있지만). 이 프로그램에서는 착한농부를 찾기도 했는데 첫 번째로 선정된 분이 사과농사를 짓는 농부였다. 직접 방송을 보지는 못했지만 인터넷 서핑을 하며 찾아보니 그 농부는 유기농업을 하는 분 같았다. 문제는 방송사에서 붙인 '착한'이라는 타이틀이다. 방송에서는 화학농약이나 사과를 빨갛게 해주는 착색제를 쓰는 농가를 '나쁜 농부'라고 하는데 사과는 앞서 말했듯이 농약을 치지 않으면 재배가 무척 힘들다. 인터넷으로 무농약 사과를 검색해보라. 하다가 결국 포기했다는 사람도 많고, 사과나무에 드글거리는 해충을 사진 찍어 올린 사람도 있다. 착색제 역시 시장 즉 소비자의 요구가 아니라면 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색깔 때문에 제값을 받지 못한다면 누가 착색제를 거부할 수 있을까. 시중에 나와있는 나쁜 사과를 다 없애면 우리는 사과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유기농업은 착하고 관행농업은 나쁜가? 나는 <기적의 사과>를 본 사람들이 유기농업 만이 옳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유기농업 방식으로 텃밭농사를 짓지만(그리고 얼마나 힘든지 몸소 체험하고 있다), 부모님은 농약 듬뿍, 비료 듬뿍 주는 관행농업 방식으로 텃밭농사를 짓고 계신다. 처음에는 유기재배를 해야한다고 잔소리를 했지만 나중에는 그만뒀다. 모두가 유기농업을 해야하는 건 아니니까. 작년에 내가 유기농법으로 정성스레 키운 배추는 아무리 난황유를 뿌려대도 진딧물을 막을 수 없었다. 시꺼먼 얼룩이 잔뜩 생긴 배추는 나중에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이때는 정말 농약을 마구 뿌리고 싶었다.

100여 년 전 발명된 화학비료와 농약은 그 전까지의 농업의 한계를 완전히 깨부수었다. 농업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물론 그만큼 문제점도 많이 나타났다.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넘쳐나는 생산물은 쓰레기가 되고(한쪽에서는 기아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지만), 땅과 작물은 힘을 잃어버렸고, 환경은 오염되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유기농업이 떠올랐다. 현재로서는 관행농업과 유기농업은 함께 가고있다. 그 방향과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논의를 해야겠지만 어느 것이 일방적으로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게다가 단순히 화학농약&비료 사용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품종을 어떻게 다양하게 하고, 해충을 어느 정도로 허용하고, 축산업과 어떻게 서로 상생할지 등등 다양한 농법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진정한 유기농업이 될 수 있다. 유기농업으로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식습관은 물론 생활습관을 바꾸어야하고,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하고, 산업시스템도 바꿔야 한다. 사실상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기적의 사과>를 보면서 나는 유기농업보다 신념에 더 마음이 쓰였다. 기무리 아키노리가 파산에 이르면서까지, 가족들을 비참하게 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그 신념. 나는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나는 물음이 생겼다. 과연 내게도 신념이라는 게 있나. 종교적,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일상의 내가 매일 마주하는 신념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아마도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다'라는 신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른 데서는 차마 말 못 하는 나의 직업 아닌 직업. 출간한 책도 한 권 밖에 안되고, 글 써서 돈도 못 벌고 있고, 이렇다 할 전문 분야도 없어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지만 나는 스스로 글 쓰는 사람,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념은 타인의 지지를 받으면 더 굳건해진다. 기무리 아키노리 역시 가족들의 지지에 무려 8년을 버티지 않았나 싶다. 6살 딸아이는 작가가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엄마는 작가야'라고 종종 이야기한다. 딸아이에게만 비밀스럽게 이야기한 엄마의 직업을 공개적으로 밝히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대신 한 장의 글을 써야겠다.








주석 1. 농사로 https://www.nongsaro.go.kr/ 농업기술길잡이5_ 사과재배

주석 2. 머니투데이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9041108495835219

주석 3. 국립농수산품질관리원 - 친환경 인증관리 정보 시스템

https://www.enviagro.go.kr/portal/content/html/info/signintro.jsp

주석 4. 국립농수산품질관리원 - 유기농업자재

https://www.naqs.go.kr/contents/contentsTab.do



참고도서

1. <욕망하는 식물>, 마이클 폴란, 황소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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