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근 Jan 03. 2023

[시리즈]16. 웹소설의 제목 명명에 관하여

웹소설이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법

흔히들 외모과 목소리가 첫 인상을 결정하는데에 무려 50%의 지분을 차지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는 웹소설 판도 마찬가지다. 웹소설 플랫폼에 들어가보면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제목이 분명히 존재한다.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유독 그 제목만이 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 작품이 나를 만족스럽게 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웹소설의 제목은 인간의 '첫인상'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라고 하겠다. 


돌이켜보면 2000년대 판타지소설 시대부터 오늘날의 웹소설 시대까지 제목을 짓는 방법들이 조금씩 달라져왔던듯 싶다. 제목도 하나의 '표현'인 것으로 생각해본다면, 여기에 반영되는 의도들이 시대마다 달라졌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웹소설의 제목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가'에 대한 전략적 고찰이 아니라, 시대적 변화나 미디어 환경과 결부지어 '웹소설의 제목'이 갖는 의미와 그 효과에 대해 살펴보는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우선은 아래의 두 사진을 보자. 이 사진들은 각각 네이버 시리즈와 카카오 페이지 두 곳의 랭킹 작품 혹은 추천 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작품들이다. 



웹소설의 제목은 플랫폼마다 조금씩 상이한 경향이 없지는 않다. 이는 기본적으로 플랫폼마다 추구하는 색깔이나 연재 방식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컨대 네이버 시리즈(네이버 웹소설 플랫폼)에서는 보다 많은 연령층을 공략하는 것 즉 대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카카오페이지(카카오 웹소설 플랫폼)에서는 보다 장르친화적인 경향이 좀 더 강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특징들이 공통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제목만 봐도 해당 작품이 어떤 내용인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주인공이나 특정 신기(神器)의 이름이나 '~전기'로 쓰거나 혹은 나름대로 있어 보이는 분위기를 풍기거나 의미있는 단어를 제목으로 삼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예컨대 룬의 아이들, 비뢰도, 카르세아린, 다크메이지, 소드엠페러, 이드 등과 같은 이름이 그러했다. 이처럼 과거의 제목은 곧 '작품의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과거의 제목은 곧 작품 세계로 진입하는 일종의 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대형작가가 아닌 이상 이런 식의 이름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왜? 직관적이지 못하다는 이유에서이다. 이제는 무수한 작품들이 웹소설 플랫폼에 나열되기 때문에, 첫 대면에서 이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를 알려줘야 하는 시대이게 되었다. 독자 입장에서는 자기 취향이 아닌 작품을 읽는 것만큼 시간낭비인 것도 없다. 따라서 지금의 웹소설 시장에 '드래곤 라자'나 '룬의 아이들' 같은 제목이 등장한다면 곧장 시장에서 사장될 수밖에 없다. 이유를 구체화한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첫 대면에서 어떤 작품인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곧장 호기심을 잃고 다른 작품으로 시선을 옮겨가며, 둘째, 어느 정도 짬이 있는 독자들은 이러한 유형의 제목을 보고 작가주의적인 작품일 것이라는 판단을 한다. 작가주의는 대체로 환영받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오늘날의 웹소설 시장은 적어도 제목짓는 법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공식이 존재하는 셈이다. 가령 웹소설의 제목은 명사보다는 주로 문장 단위의 제목이 쓰이며, 설령 명사형 제목이라고 해도 곧바로 어떤 컨셉인지를 알 수 있게끔 작명이 이뤄진다. 첫 인상에서 '나는 무엇입니다'라고 단번에 알려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 사진에서는 '환생표사'나 '결혼적령기 무림교관'과 같은 이름이 좋은 예시이다. 필자는 두 작품 모두 읽어보지 못했지만 환생표사는 모종의 사연으로 억울하게 죽었을 어떤 인간이 환생하여 최고의 표사가 되리라는 꿈을 꾸는 내용이지 않을까 싶고, 결혼적령기 무림교관은 아마도 강한 연인와 결혼하기를 꿈꿨던 노총각/노처녀 주인공이 혼기가 되도록 상대가 없다가 어떤 무림학원에 선생으로 취직하여 찾는 내용일 것으로 짐작된다. (행여 틀렸다면 해당 작품의 독자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드린다) 이렇게 오늘날의 독자는 첫 대면에서 대상 작품이 어떤 내용인지를 판단하고 자신의 취향에 반추하여 이 작품을 읽을 지를 순식간에 결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웹소설 제목은 광고 혹은 작품 홍보(정보 전달)의 성격이 짙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작명 트렌드가 왜 이렇게 변화했는가? 이유는 명쾌하다. 시장을 넘어 '일상'이 그 자체로 이미 콘텐츠 과잉이기 때문에 콘텐츠 내용의 '직관적인 전달'이 중요해진 것이다. 최근에는 아예 키워드+ 문장 형태의 작명법이 자리잡게 된 것도 역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는 키워드와 더불어 장르 그리고 서사의 흐름까지 단번에 알 수 있는, 콘텐츠를 곧바로 파악할 수 있는 '취향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작명 방식이라고 하겠다. 





물론 이러한 작명이 결코 일반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남성향은 대체로 이런 규칙이 통용되는 느낌이지만, 여성향은 다소 제목을 짓는 방식이 다르게 보인다. 여성향은 제목을 좀 더 관능적으로 혹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끔 짓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위사진은 네이버 웹소설 여성향 작품들의 랭킹이다. 날 닮은 아이, 곧 이혼할 사이, 대리 왕후지만 첫날 밤을, 아내를 그만두는날, 맹수 사용설명서 등과 같은 작품들이 순위권에 올라와 있다. 척 보기만 해도 은밀한 호기심과 더불어 일말의 관능적인 느낌까지 느껴지지 않은가? 이렇게 '정보'보다 '느낌'을 선호하는 여성향의 제목짓기 양상은, 개인적으로는 남성과 여성의 세계와 대상을 감각하는 차이에 기인한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성향과 관련해서는 추후의 글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살펴보건데, 다음의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아무리 좋아도 읽히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인식이 웹소설 작가들 사이에게 지배적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제목짓기의 전략은 이러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의 일환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작명 방법을 거슬러 올라가면 궁극적으로 하나의 의도에 도달한다. '나는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이러한 '차이'를 갖고 있어요. 흥미가 생긴다면 부디 날 읽으세요.'  





어느 덧 웹소설에 관한 주제도 15편을 돌파했다. 이쯤되니까 슬슬 글의 패턴이 비슷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목표로 하는 수치가 있기 때문에 에쎄이를 그만둘 생각은 없고 다만 새로운 생각들로 채워나가고자 노력할 따름이다. 여전히 부족하구나 싶으면서도 이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공부가 되리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 글을 접하는 여러분도 새해 복 많이 받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나의 기억 그리고 나의 생각


                    

이전 17화 [시리즈]15. 웹소설과 양산성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