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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May 07. 2024

지리산 둘레길 19코스 -1

우리가 걸으면서 나누는


일본에서 가장 낚시를 잘하는 사람은 다나까.

일본 수도 국장 이름은, 무라까쓰지마. 그러면 일본에서 가장 빼빼한 사람은?

누가 뭐래도 계절의 여왕은 5월이다. 그야말로 만물이 손을 흔들어 환영한다.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 몸짓이며 표정이 새로 나기 시작한 가로수 이파리처럼 싱그럽다. 날마다 짙어가는 연한 것들이 순간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 마법처럼 세상이 홍해인*이 되고 나는 그 세상을 걷는 백현우*가 되기도 하는 꿈의 세트장, 메이 May. 5월이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비가 내렸다.

우리가 작년에도 비가 내려서 못 걸었잖아요. 5월에는 비가 자주 내리는 것 같아. 비 오면 안 가지? 다들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며 한 마디씩 품평을 했다. 비 오는 거릴 걸었어 너와 걷던 그 길을♬♪

아마 산이는 그 순간 속으로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비가 내리면 음 나를 둘러싸는 시간의 숨결이 떨쳐질까♬

산이가 그렇게 분위기 있지는 않다. 그저 이게 웬 떡이냐 싶어서 얼싸 좋다, 계속 비가 내리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던 동지이지만 또 제각각 서로 다른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5일 어린이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어디나 비가 내렸고 내내 내렸다. 6일, 대체 휴일 날씨를 검색했다. 구례 날씨 흐림, 강수확률 30%, 미세먼지 좋음, 초미세먼지 좋음. 시간대별 날씨도 확인했다. 큰 구름 앞에 작은 구름이 그려진 구름 두 개가 쭉, 예쁘다. 그리고 허리에 손이 갔다. 내 잘록하지도 않고 탄탄하지도 않으며 사연 많은 허리를 천천히 살살 쓰다듬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오빠가 잇, 아니다. 내가 있잖아!

그러니까 일본에서 제일 깡마른 사람은 비사이로마까다. 우리말로 하면  '비 사이로 막 가'.

어제 6일 지리산 19 코스, 오미에서 방광까지는 그 이름처럼 걸었다. 비가 잠시 멈춘 사이, 그 하루를 거기에 쏟았다. 지금 7일 아침에는 다시 비가 내리고 있다. 거리는 축축하고 도로 건너 아파트가 안개에 싸이는 아침이다.

아이들과 길을 걷는 부모들은 작전을 잘 짜야한다. 전술에 능해야 부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가 패하지 않는다. 그동안 걸어온 거리를 보면 아내와 나는 이기기 위해서 싸웠다기보다 지지 않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지냈던 듯하다. 5일 아침 빗소리를 들으면서 둘이 입을 맞췄다. - kiss가 아니라 말을 맞췄다는 뜻이다. - 얘들이 일어나면 내가 잠시 밖에 나가 있을 테니까, 둘이 앉혀놓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거야. 너희들도 알잖아 그러면서, 엄마하고 아빠가 오늘 걸으려고 준비했다는 거. 아빠는 한의원에도 가서 침도 맞고 그랬잖아. 너희들 시험 끝나기만 기다렸는데, 시험 끝났다고 산이는 친구하고 실컷 놀기도 했잖아. 그런데 이렇게 깨워도 안 일어나니까····.

가능한 뜸을 들이면서 말하라고 일러줬다. 화난 것처럼 말고 실망한 듯한 분위기가 더 효과적일 거라고 서로 끄덕였다. 우리는 한껏 너그러운 사람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기로 했다. 원래 계획은 6일이 출발이었지만 5일로 하루 앞당겼던 터다. 공교롭게도 비가 내렸던 것이다. 비가 내려서 어차피 밖에 나가지 못하는데 6일 날씨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 일단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었다. 이대로 6일도 지나버리면 너무 간격이 벌어지게 된다. 한 번 멈추면 그대로 그만두고 싶은 것이 바로 걷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설 연휴 이후로 두 번이나 걷지 못하고 계획을 수정했다. 그때마다 몸이 아프거나 사정이 생겼다. 언제나 상황은 불리하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누가 일부러 걷겠는가. 살기도 바쁜 세상에 말이다.

순진한 아이들에게 그것밖에 방법이 없었느냐는 회의가 남기는 하지만 실제로 전장에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의지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힘, 의지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때로는 부담도 의지가 된다. 부담 없는 책임은 없다. 모든 책임은 얼마간의 부담을 짊어진다. 다만 우리는 그 부담을 서로 나눠지는 식으로 길을 걷고 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주는 것이야말로 마땅한 이치다. 우리는 나이가 많은 엄마, 아빠라서 아이들이 자립적일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재산이 아니라 의지가 성장할 수 있도록, 자아를 성장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아, 미안하네.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게 들리는지 모를 것이다. 약속을 지키고 규칙을 지키려는 마음을 나는 배우지 못했다. 그래야 하는 줄은 아는데 잘 지키지 못했고 지켜지지 않았다. 배움이야말로 능동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나는 깨우치고 있다. 아무리 강조해도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했던 말이라도 내 안에서 반응하지 않으면 흘러가는 구름일 뿐이다. 천 번을 두들겨도 울림이 없다면 소리가 아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내 안에서 끌어모아 소리 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5일 아침 작전은 그렇게 성과가 있었다. 덕분에 6일은 일찍 움직일 수 있었다.

2024년 5월 6일, 09시 현재 흐림. 부대원 4명 지리산 둘레길 구례 센터 앞 도착. 작전 지역까지 6분 소요 예정, 목적지 운조루 입력, 알파 작전명 - 구름 사이로, 오메가 작전명 - 새 네 마리. 이상.

*홍해인, 백현우 - 드라마 눈물의 여왕, 남녀 주인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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