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너를 보내고 / 이정하
너를 보내고, 나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찻잔은 아직도 따스했으나
슬픔과 절망의 입자만
내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어리석었던 내 삶의 편린들이여,
언제나 나는 뒤늦게 사랑을 느꼈고
언제나 나는 보내고 나서 후회했다.
가슴은 차가운데 눈물은 왜 이리 뜨거운가
찻잔은 식은 지 이미 오래였지만
내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내 슬픔, 내 그리움은
이제부터 데워지리라.
그대는 가고
나는 갈 수 없는 그 길을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보아야 할까.
안개가 피어올랐다.
기어이 그대를 따라가고야 말
내 슬픈 영혼의 입자들아.
떠나 본 적 없어서 떠나보낼 줄 모르고 산다면 운이 좋다 못해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이 깊고 푸르러도 한 곳에만 머물러서는 물이 아니다.
물이 갖고 태어난 천성은 흐름이다.
흐르는 것들에게는 만남과 헤어짐도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흐르지 않는 것들이 어디 있을까.
사랑도 그대와 나로 흐르다가 만난 일이다.
내가 사랑이 아니었듯이 그대도 사랑은 아니었을 것을 탓하지 않는다.
다만 그때도 우리는 흐르는 물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망각할 수 있었는지 그것이 신비롭다.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진 일도 아니었고, 비바람이 치는 날도 아니었다.
창세기의 등장하는 태초의 바다처럼 신들이 호령하는 물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대를 사랑하는 일은 나에게서 떠나온 일이었고 흐르지 않고 머무는 일이었다.
시간도 멈추고 하늘도 그대로, 세상도 움직이지 않는 일이었다.
흘러가는 것들에게서 그대를 빼앗아 놓고 나만 볼 수 있는 그대를 사랑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멈추었지만 사랑은 멈추지 못하고 흘러가야 하는 것,
물처럼 흘러가서 끝을 모르고 끝이 나야 완성되는 것.
그러기에 우리가 잠시 머물렀던 순간은 사랑하고 싶었던 사랑이다.
사랑 같았던 사랑이다.
가슴은 다시 흘러갈 준비를 하는데 눈물은 사랑했던 사람처럼 운다.
마음은 바다를 기약하는데 기어이 그대를 따라가고야 말 것 같은 이것은 무엇이냐.
그 뒤로 세상은 머무는 일 없이 흐르기만 하더라는 천 살이나 넘은 영국사 은행나무에게서나 들어봤음직한 이야기 한토막 꺼내놓고 흘러간 사내는 어디에서 무엇으로 살았는지, 흐르는 것들이 잊지도 못하면서 흘려보내지도 못하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