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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Nov 22. 2022

기도 53-1

재미있는 사연이 하나

2022, 1122, 화요일



날이 밝으면 아내의 건강 검진에 동행합니다. 보호자, 그것이 오늘 제 역할입니다.


재미있는 사연이 하나 있습니다.




2016년 그때도 아내가 건강 검진을 받았습니다. 바쁘게 사느라 한 해가 다 저물어서야 병원을 찾는 형편이었습니다.


사람은 평생 얼마나 많은 말들을 하면서 살아갈까요. 그 말 중에 하나, 그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는 국가 암 검진으로 만 40세가 넘으면 위내시경 검사를 지원해 줍니다. 잘 아시다시피 내시경은 어느 것이든 불편하고 힘이 듭니다. 수술받기 전까지 저는 줄곧 일반 내시경 검사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괜한 승부욕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여자들은 청첩장 받을 때 특히 그렇다는데 남자들은 어이없게도 사우나에서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 겨룹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그 전투는 더 치열합니다. 등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야 겨우 탕에서 빠져나옵니다. 그때에도 별거 아니네, 하는 표정으로 툭툭 털고 일어납니다. 수면 내시경은 값도 값이지만 저한테는 그런 승부욕을 발동시킵니다. 주사 맞을 때 절대 고개 돌리지 않습니다. 혈관을 못 찾고 두 번, 세 번 찌르러 들어오면 웃습니다. 그리고 ´괜찮아요~´ 꼭 끝을 올려서 말합니다.




아내에게 건넨 그 한마디 말 때문에 저는 지금 이렇게 아침 묵상을 적고 있는 줄도 모릅니다. 모른다고 말 끝을 흐리는 것은 정말 모르거나 대신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생각과 수많은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없습니다. 눈빛 하나도 제대로 담으려면 일생이 걸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신격 神格을 닮은 부분이 있다면 그런 부분일 것입니다. 계량할 수 없는 무한정한 것들 말입니다.




"일반으로 하면 힘드니까, 수면 내시경 한다고 그래요."




오히려 아프고 나서 아내에게 말을 편하게 하는 듯합니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연상인 아내에게 처음부터 말은 존대를 했습니다.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막 나갈 때는 브레이크도 들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아내는 내공이 깊어졌는지 세월이 갈수록 말이 부드러워지고 있습니다. 가르치지 않고 깨우치게 합니다. 도가 높습니다.




그 바람에 ´보호자´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수면 내시경은 보호자 대동이 조건입니다. 그렇다면 가는 길에 그 전 해에 받지 못했던 내 건강 검진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 정도는 원만히 처리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내심 건강하다고 자부하고 살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저는 문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동안 아침 묵상을 적으면서 이 대목을 한두 번 소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처음 듣는 분들을 위해 재방송을 들어야 하는 분들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저를 검사한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런 경우를 ´천운´이라고 생각해요. 들어갈 때도 못 봤던 것이거든요, 안에도 다 깨끗했고,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나오다가 걸린 거예요. 그러니까 보려고 본 것이 아니고 나오다가 보인 거예요. 그것도 생긴 지 얼마 안 된 거."




위암은 초기 증상이 없습니다. 조기에 발견만 되면 완치율도 상대적으로 높은 암입니다. 하지만 생활에 쫓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부러 병원을 찾는 일이란 누구 친한 이의 병문안이 전부입니다. 암 치료를 받으면서 하나 더 고마웠던 것이 의료 혜택, 의료 복지였습니다. 살림을 걱정하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나라가 좋아져야 하는 까닭을 현장에서 실감했습니다.




말을 잘할 것까지는 없어도 말은 참 중요합니다. 그 말이 사람을 살릴 거라고 누가 알았을까요. 저는 식도와 위가 연결되는 지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모두 끊어냈습니다. 위 胃 없이 위없는 진리를 깨닫고 있다면 지나칠까요. ´속없이´ 사람의 말을 듣고 말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꾸 연습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대로 건강했더라면 결코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성당에도 나가지 않고 내가 오래된 신자라고 거드름만 피웠을 것입니다. 더 자주 걷고 있습니다. 걸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머뭇거리지 않고 걷습니다. 미루지 않고 일기를 쓰고 설거지를 합니다. 어디에선가 눈이 그칠 것을 믿는 젊은이처럼 나도 멈출 것을 믿습니다. 환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 이 환한 것이 솔직히 부럽습니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이 부럽습니다. 내 것이 아니니까요. 불이 꺼지지 않게 땔감을 하나씩 넣어주는 그분이, 보고 싶습니다.




곧 날이 밝습니다.


하찮은 말들을 쌓아 올립니다. 내 것은 그렇습니다. 그러니 자기 것을 쌓으십시오. 빛나는 말들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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