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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Aug 09. 2023

내밀한 日記

순하다


입추가 지났다. 더위는 기세가 꺾인 셈이다. 무작정 기다리는 사람도 무서울 판에 그 어떤 것보다 확실한 자연의 이치를 근거로 누가 이기나 내기라도 해보자는 사람을 이길 방법은 없다. 밤이 오고 아침이 밝아오는 일처럼 꼿꼿한 이 더위가 허물어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나도 그만큼 어딘가로부터 멀어지고 어딘가로 가까워질 것이다. 순리는 바람결처럼 매끄럽다.

어제는 짧은 글을 3개 쓰느라 오전을 거의 다 보냈다. 11시에는 공부가 부족한 학생을 불렀다. 노력은 하지만 성과가 나지 않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전방위로 사람의 두뇌 활동이 활발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그런 경우에는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안 되는 것은 따라가는 형세를 취하는 편이 본인에게 이롭다. 괴롭더라도 덜 괴로워야 한다. 꾸준히 따라가는 일은 꾸준히 앞서가는 일만큼 사람의 됨됨이가 요구되는 일이다. 외로운데 외롭지 않고 괴로운데 괴롭지 않으려는 자세, 아픈 것을 달래며 견뎌내는 어떤 숭고함이 그에게서 준비되는 현장이다.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기특한 사실인가. 하나를 얻고 하나를 내주는 셈도 인간적이며 천연스럽다. 어려운 것을 쉽게 해결하는 사람들, 쉬운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공존이란 말은 노력이란 말이 빚는 달덩이, 달이 밝으면 밤길도 훤하다. 밤길 가는 그대를 돕는다. 내가 도운 적 없는 사람이 나를 돕게 되는 이런 순환을 우리는 달려야 한다. 쉬운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그것으로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쉬우니까. 나한테는 쉬운 일이니까. 누구에게나 쉬운 일 하나쯤 있지 않던가. 가벼워서 아무렇지 않은 일 있지 않던가.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다. 걷는 사람이다. 쓰는 사람이다. 그것을 내놓겠다. 그것으로 나를 돕고 그대를 돕겠다.

하루는 나를 통과해서 어디로 갔다. 빛이 되었다가 재가 되었다. 그 빛은 열을 내기도 했으며 빛이 나기도 했다. 내가 남긴 재는 차갑다. 바람이 불면 사라질 것이다. 소멸은 순하다.

어제는 떠나면서 나를 오늘로 이끌었다. 그가 남긴 것들로 오늘을 차리는 나는 재미나게 장사를 시작한다. It is a fine day, isn't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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