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삶이 머문 곳에서

지베르니(클로드 모네)와 오베르 쉬르 우아즈(빈센트 반 고흐)

by 나루

파리 여행 첫날에 방문한 오르세 미술관에는 수많은 명작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마네, 르누아르, 드가, 모네, 고흐, 쇠라... 유명한 이름을 옆구리에 달고 있는 그림들을, 나는 천천히 감상했다. 작품들은 실제로 봤을 때 더 아름다웠고 어떤 기법이나 이론을 모르는 사람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그렇게 감탄하던 중 모네와 고흐의 작품 앞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곧 가게 될 곳이, 이 그림 속 풍경일까?


나는 파리 여행의 셋째 날, '근교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인 일일투어를 가기로 했다. 그 투어는 지베르니 - 고흐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 - 베르사유 궁전을 돌고오는 코스였다. 베르사유 궁전을 편하게 가고 싶어 투어를 알아보다가 지베르니도 예쁘다는 후기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프랑스에 간 김에 여러 군데를 둘러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예약을 하게 되었다.


다시 오르세 미술관으로 돌아와서, 작품을 소개해보려 한다.

이 그림은 모네가 지베르니에서 그린 '수련' 연작 중 하나이다. 클로드 모네는 지베르니에 살면서 약 250여 점에 달하는 수련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백내장을 앓으면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은 엄청났던 것 같다.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가족 단톡방에 "고흐마을에 간다"라고 말했을 때 우리 아빠는 내가 아를에 가는 거냐고 되물었다. '아를이 어디지?' 생각하며 구글지도로 찾아보니 아를은 남프랑스에 있어서, 차를 타고 8시간은 달려야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아를은 못 가지만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간다고 답장을 했다.

'아를이 진짜'라는 아빠의 말에 궁금해져서 검색을 더 해보았다. 검색결과: 아를은 고흐가 사랑한 도시로, 1년 정도 머무른 지역이다. 그곳에서 해바라기, 노란 집을 포함해서 300여 개의 그림을 그렸고, 고갱과 잠깐 같이 살기도 했다.


흠. 그렇구나...

이렇게 궁금증을 해소하자 또 다른 궁금증이 뒤따라왔다. 그럼 내가 가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어떤 곳인가?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고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지 마지막 70일간 머물렀던 마을이라고 한다. 아를에 비하면 짧은 기간 동안 있었지만, 마지막을 함께했기에 더 의미 있는 장소일까?

빈센트 반 고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 교회'


이틀 뒤면 금방 갈테니, 검색을 더 하기보단 어떤 마을인지 직접 확인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이땐 몰랐다. 내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그렇게 큰 울림을 느낄지.






파리 여행의 셋째 날, 투어를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집합장소에 갔다. 버스를 타서 자고 일어났더니 어느새 지베르니에 도착해 있었다. 관광객이 너무 몰리기 전에 '오픈런'을 하는 일정이었기에 들어가기 전에 조금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하늘이 예쁘고 날씨가 너무너무 좋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왜 모네가 여기를 그렇게 사랑했고 43년간 살았는지 도착하자마자 이해가 됐다.

나는 6월 중순에 방문해서 꽃이 많이 피어있었다. 꼭 모네의 그림에서 본 것 같은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베르니에는 '물의 정원'과 '꽃의 정원'이 있는데, 아래는 물의 정원의 모습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아쉽게도 아직 수련이 거의 피지 않은 상태였다. 핸드폰 카메라로 열심히 확대해 보니 한 송이는 발견할 수 있었다. 6월 말~7월에 방문하면 활짝 핀 수련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꽃의 정원은 물의 정원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동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렇게 남의 집을 구경하다 보니, 내가 사는 집과는 정말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파트에서 사는 게 편하고 딱히 불만도 없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이라면 탐이 난다.

이 집은 모네의 생가라고 한다.


클로드 모네는 성공한 화가다. 지금도 유명하지만, 모네가 살던 그 당시에도 명성 있는 화가였다고 한다.


그리고 86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약 43년을 지베르니에 살았다. 43년이면 지겹지 않을까 싶었지만, 지베르니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모네가 정원과 집을 직접 설계하고 가꿨다고 하니, 지겹기는 커녕 애정이 넘쳤을 것 같다.


집 내부와 외부는 모두 따뜻한 느낌이 가득했다.

집 안에서 창문을 통해 보이는 정원 뷰

이렇게 지베르니 관광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로 약 1시간을 달려가면 고흐의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가 나온다.

화려하고 알록달록하던 지베르니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느낀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첫인상은 잔잔하고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이곳의 라부 여인숙 5번 방에서 70여 일간 머무르면서 7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정신적으로 괴로운 상태에서도 하루에 한 점 꼴로 그림을 그렸다니, 그보다 더 열정적일 수 있을까. 나는 고흐의 성실함에 감탄하게 되었다.


고흐의 방(촬영 불가)은 보존되어, 들어가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계단을 올라가 방을 마주하는 순간... 왠지 모르게 숙연해졌다. 방은 생각보다 많이 작았고, 비스듬히 나있는 창 하나로 옅은 햇빛이 들어올 뿐이었다. 벽면에는 옛날의 나무액자가 몇 개 전시되어 있었다. 약 135년 전, 고흐가 이곳에서 느꼈을 고독함이 상상되어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모네와 고흐, 두 화가는 너무 다른 삶을 살았다. 모네는 장수했지만, 고흐는 단명했다. 모네의 집은 생기가 넘쳤지만, 고흐의 집은 단출했다. 고흐 역시 유명한 화가이지만, 생애동안에는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다. 죽은 뒤에야 사람들이 고흐를 알아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는 동안에는 많이 외로웠고, 정신적 고통도 심했다고 한다. 고흐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온 이유도 앓고 있던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결국은 이겨내지 못하고 권총자살을 시도했는데, 한 번에 끝내지를 못했다. 밀밭에서 피를 흘리며 방까지 걸어와, 자신의 방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 사실이 나를 더 마음 아프게 했다.

그래도 고흐에게 힘을 주는 소중한 존재가 있었다. 바로 우애 좋은 동생, 테오다. 방 안에는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적었던 편지의 한 구절이 적혀있었다. "Some day or another I believe I will find a way to have my own exhibition in a cafe." "언젠가, 카페에서라도 나만의 전시회를 열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고통 속에 살면서도 고흐는 예술혼을 불태웠고, 자신만의 꿈이 있었다.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중에라도 빛을 본 걸까? 사는 동안 꿈을 이루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러지 못했다면 죽어서라도 알아주는 게 나을까?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일까? 내가 고흐라면 나중에라도 자신을 인정해주는 게 고마울까? 아니면 왜 진작 몰라줬는지 원망스러울까?


머릿속에 답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다.

사진 속 위치에서 고흐가 '나무뿌리들'을 그렸다고 한다. 잔뜩 엉켜있는 나무뿌리들이 고흐의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이처럼 마을 곳곳에서는 반고흐가 그린 그림 속 장소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고, 건 다른 이들에게도 흔치 않은 경험일 거라고 생각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예전의 모습은 사라지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더 그렇다. 빠르게 발전한 탓인지, 덕인지, 예전의 그림 속 풍경들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그러나 유럽은 달랐다. 어제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였다.


다음은 오베르 쉬르 우아즈 교회이다.

교회를 보는 순간, 오르세 미술관에서 봤던 그림과 너무나 똑같아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정말 백몇 년 전에 빈센트 반 고흐가 이 자리에서 교회를 그렸다는 말인가, 그림이 담고 있는 풍경에 내가 와있다니... 놀라움 그 자체였다.

교회를 지나 뒷길을 따라 가니 고흐가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그린 배경인 그 밀밭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이 그림 표지판도 세워져 있었다. 이 작품은 고흐의 슬픔, 고독이 표현되었다고 해석된다. 이곳에서 그가 죽음을 결심했다니, 나도 모르게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교과서 속 인물은 때때로 그들이 실존인물이 아닌 것 같은 위화감을 들게 한다. 내가 직접 확인한 적이 없는 존재이기에, 알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빈센트 반 고흐도 그랬다. '뛰어난 화가', '귀를 자른 화가', '광기 어린 천재'같은 단편적인 설명으로만 알고 있었다. 마치 영화 속 등장인물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하지만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그의 흔적을 바라보니, 괴로워하는 '한 사람'이 느껴졌다. 죽기 전 실제로 머물렀던 마을이- 고흐가 그린 모습 그대로 남아있으니 그 모든 장소들을 마주하는 순간 어떤 영혼의 교감이 일어난 기분이었다. 그의 눈빛이 슬픔을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진심으로, 고흐가 안쓰러웠다. 나는 깊은 애도를 한 후에야 밀밭에서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밀밭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오베르 교회를 지나쳤는데, 누군가의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곳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의 [전혀 다른] 이야기가 겹쳐지고 있었다. 저들에게는 오베르 교회가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나에겐, 어떤 기억으로 남은 걸까?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뭉클함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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