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인터라켄 자전거 대여, 융프라우 요흐, 별 보기
※(1) 편에서 이어집니다.
유람선을 어떻게든 타고 싶어 하는 나를 보며, 세미패키지 친구들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포기해!"
그런데 '포기'라고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패배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분명 더 괜찮은 표현이 있을 거라고, 다른 단어를 떠올리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에 못했다고 해서 앞으로 영영 못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어쩌면 다음을 위해 아껴둔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유람선을 타는 대신, 친구들과 자전거를 빌려 2시간 동안 동네를 돌아보기로 했다.
서울에서도 따릉이를 애용하던 나에겐 자전거가 최적의 이동수단이었다. 바람을 맞으며 달리니 아주 시원하고 상쾌했다.
잘못 들어간 길에서 환상적인 뷰포인트를 만나기도 했다.
지나가던 현지인 아저씨는 여기는 주민들밖에 모르는 곳인데, 어떻게 알았냐며 신기해했다. 나는 길을 잃어서 오게 되었다는 말은 하지 않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반면에 길을 계속 잘못 들어서 힘들기도 했다. 산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울퉁불퉁한 돌바닥에서 자전거를 타니 진동이 전해져서 손이 얼얼했다. 자전거도 전동이 아닌 그냥 자전거였기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그래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순간들이 많았다. 말과 강아지를 동시에 산책시키는 사람, 벽처럼 높이 쌓여있는 통나무, 흙바닥을 기어 다니는 달팽이. 모두 자전거를 타고 가며 만날 수 있었다. 유람선을 탔다면 절대 보지 못했을 풍경이다.
'Schulerbad Interlaken "Delta"'를 반환점으로 찍고 보니 융프라우 요흐로 올라가는 기차시간이 촉박했다. 구글 리뷰마다 '수영하기 참 좋은 곳'이라고 적혀있었지만, 아쉬운 대로 손만 담가 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자전거를 반납하기 위해 열심히 되돌아갔다.
무사히 자전거를 반납한 후에는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기차를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뜀박질을 멈출 수 없었다. 달리다가 걷다가 달리는 걸 반복하다 보니 인터라켄 오스트 역에 도착했고, 다행히 예약한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융프라우요흐는 하루 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곳에 가기 위해 유람선도 과감히 포기했기 때문이다. 스위스 산맥의 설경을 보기 위해서는 약 2시간 동안 기차를 2번 갈아타서 가야 했다.
올라갈 때 걱정이 있다면 바로 '고산병'이다. 살면서 이렇게 높은 곳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에게 고산병이 있는지 미리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고산병 약을 미리 먹었다. 그 덕인지 융프라우요흐에 올라가서도 심장이 평소보다 두근거렸을 뿐, 별다른 증상은 없었다.
융프라우 요흐는 'Top of Europe'이라는 말로 자신을 알리고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이다!
역 밖으로 나가니, 풍경이 눈이 부시게 예뻤다. 산맥들은 눈으로 가득 뒤덮여 새하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눈(snow)이 굉장히 센 햇빛을 반사시켜서 눈(eye)이 미칠 듯이 부셨다. 게다가 내리쬐는 태양에 정수리가 뜨거워졌다. 다들 융프라우요흐에 갈 때 모자와 선글라스를 필수품으로 꼽은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다행히 나도 챙겨가서 두피와 눈 건강을 지킬 수 있었다.
융프라우요흐에서는 다들 설산을 배경으로, 스위스 국기와 함께 인증샷을 찍는다.
또 하나의 필수코스는 신라면이다. 융프라우요흐 역 0층 카페테리아에 가서 VIP패스를 보여주면 무료로 신라면을 준다.
오후 2시 반에 먹은 이 신라면이 내 첫 끼니였는데, 정말 눈물 나는 맛이었다.
그리고 역에는 얼음동굴이 연결되어 있었다. 동굴 안은 벽, 천장, 조각상까지 모두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게다가 얼음에 갇힌 아이스에이지 다람쥐를 보니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바닥도 얼음이어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처럼 미끄러지며 걷게 되었다. 나는 신난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 번 넘어지기도 했는데, 다친 데는 없었지만 약간 부끄러웠다. 그러나 때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이때쯤에는 유람선을 타지 못한 아쉬움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융프라우요흐는 왕복 이동시간만 해도 4시간 정도 된다. 그래서 마음껏 놀고 내려오니 어느새 저녁시간이 되어있었다. 남은 하루가 끝나기 전에 무얼 할지 고민했는데, 사실 나는 스위스 호수에서 수영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해가 지기 전에 해볼까 했지만,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하루 종일 돌아다녔기에... 이미 체력이 다한 상태였다.
결국 이번 스위스 여행에서는 유람선 투어, 호수 수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다른 풍경들이 멋지게 채워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걸 다 하지 못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아쉬웠던 부분들도 초점을 바꿔서 생각하니 행복한 일들로 가득했다.
오후 2시 반까지 점심을 못 먹었지만, 그래서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수영을 안 나갔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휴식을 할 수 있었다.
유람선을 이번에 타지 못했기에, 나중에 탈 유람선이 더 기대된다.
내가 아껴둔 계획을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설렌다.
이제 유람선과 수영은, 미래에 다시 올 스위스 여행을 위해 '남겨두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포기의 다른 말은 남겨둠이고, 내가 남겨둔 것들은 어느새 '기대'로 자라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