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리 Jun 05. 2024

5. 마음은 벌써 호주 어딘가

아이들 여권을 신청하고 나서부터 이미 마음은 호주행 비행기를 타고 있다. 특히 어떤 옷을 가져가야 하나 계속 고민했다. 일단 우리랑 계절이 반대니 기본적으로 여름옷을 챙겨야 하는데 멜버른의 경우 하루에 사계절이 공존한다니 마냥 얇은 옷만 챙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나 추위를 많이 타는 내 경우에 바람을 막아줄 점퍼가 꼭 필요했다.

머릿속에 바람막이 점퍼가 넓은 영역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수지와 김태리, 김다미가 입고 나온 옷들이 계속 눈에 아른 거린다. 기본 방수에 방풍까지 되는 그 옷들의 가격은 생각보다 비쌌다. 가성비를 찾아 조금 더 저렴한 브랜드의 옷 목록을 뒤지기 시작했다(주부에게 가성비란 매우 중요하다). 그중 입을만한 제품을 찾아 매장에 직접 방문했는데 맞는 사이즈에 남은 색상은 네이비뿐이었다. 봄이라 밝은 색상의 옷을 찾았는데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결국 원하는 옷을 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왜 그리 속상하던지. 계속해서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는 가격과 디자인, 기능성 중 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말이다!


도대체 며칠째 고민인지 모르겠다. 오전 내내 인터넷 쇼핑몰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 하교할 시간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마음이 이리도 휘청거리는 것이었다니! 《싯다르타》를 읽고 필사한 구절들이 떠올랐다.  지식을 가르쳐 줄 수 있어도 지혜는 가르칠 수 없다더니 머릿속에  온갖 브랜드의 재킷 정보를 채우고서도  정작 선택을 하지 못해 번뇌에 빠져있는 모습은 어리석음 그 자체였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날 저고민을 해결하기로 했다. 정말 몇 년 만에 나를 위해 백화점으로 향했다. 화면으로 수 없이 보았던 그 옷들을 직접 입어보고 결정하고 싶었다. 세 명의 여배우가 입었던 옷들을 차례로 입어보았다. 그중 입는 순간 고민하던 내 얼굴을 확 펴지게 한 옷이 있었다. 같이 간 남편도 제일 잘 어울린다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마침내 카드를 긁어버렸다. 거짓말 안 하고 결혼하고 처음으로 백화점에서 신상품으로 내 옷을 샀다. 기분은 좋았지만 너무 비싼 옷을 사게 되어 미안한 마음에 집으로 향하는 내내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수다스러워졌다.



아직 태그도 떼지 않은 채 재킷을 옷장에 걸어 놓았다. 저 옷을 입고 호주를 갈 생각을 하니 또 설렌다. 그 때면 새 옷인 줄은 나만 알겠지만.



《싯다르타》헤르만 헤세 저/박병덕 역│민음사│2002년

매거진의 이전글 4. 극 J와 아마도 J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