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생전 처음으로 수영을 배워보기로했다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지루해 난 하품이나해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입으로 자우림의 '일탈'을 흥얼 거렸다.
29년, 살아생전 처음으로 수영을 배워 보기로 했다. 물과 앙숙이던 내가 몇 년 전 프리다이빙과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면서 또 다른 꿈이 생겼다. '핀 없이 수영을 하고 싶다.' 물속에서 맨 몸으로 멋들어지게 자유형을 하는 나를 자주 상상하곤 했다. '아 얼마나 짜릿한가.' 그때부터 수영에 대한 동경은 시작됐다.
하지만 바쁜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취미를 만들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퇴근 후 밀린 집안일 조금 하다 보면 금세 잘 시간이고, 야근이라도 하는 날에는 이마저도 사치일 뿐 지쳐 쓰러져 잠들기 바쁘다. 몇 달 전 큰마음먹고 등록한 헬스는 축 져진 몸뚱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매번 그 앞을 지나치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운동을 시작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빡빡하게 들어찬 스케줄 속에서 빈 시간을 만들어 내기란 여간 골치 아픈 일이다. 무언가 하나를 포기해야 하니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귀하디 귀한 나의 수면 시간에서 일부분을 조금 떼어내 보기로 했다. 지친 몸으로 저녁에 수영을 가는 건 헬스와 비슷한 꼴이 날 것 같으니 차라리 하루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아침이 나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나의 삶에는 새로운 활력소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이왕이면 나의 몸과 정신을 동시에 깨울 수 있는 무언가. 마음 같아서는 모든걸 때려치우고 훌쩍 떠나버리는 조금은 과한 일탈을 하고싶다는 충동도 불쑥 불쑥 올라왔다. 그러나 발을 딛고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니. 이럴땐 그 중간지점에서 적당히 조율을 해줄 만한 환기점이 필요하다.
지금 나는 특별한 이벤트 없이
매일이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에서
스스로를 끄집어내야했다.
몇 날 며칠을 인터넷으로 집 근처 수영장을 검색했다. 기준은 딱 한 가지였다. '새벽에 수영 강습이 있는 곳'
[0000 스포츠 센터 : 성인 수영 새벽 6시 수업, 2회 / 신규 등록 가능]
'찾았다! 여기다!'
이른 새벽부터 신규 등록을 하기 위해 스포츠 센터로 향했다. 가장 치열하다는 신규 등록반을 선점하기 위해 전날부터 알람을 맞춰 놓고 단단히 준비를 했더랬다. 여섯 시 땡 치자마자 도착한 그곳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약해져 가는 관철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수영을 시작하는 동네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더불어 자녀에게 수영 과외를 시키겠다는 열혈 어머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오셨나요? 번호표 뽑고 기다려주세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황하는 나에게 직원이 말했다.
대기번호 40번.
번호를 보는 순간 절망했다. 나의 열정이 부족했던 것인가. 이 피 튀기는 정글 같은 세계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일까. 하지만 수영이 운명이라면 나의 자리 하나쯤은 남아있을 거라 믿어 보기로 했다. 기다린지 40분이 됨과 동시에 기적처럼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40번 고객님. 어떤 운동 등록하실 건가요?"
"평일 새벽 수영반 등록하려고요. 자리가 남았을까요?"
"네 현재 화, 목 반 등록 가능하세요."
역시, 이것은 수영을 하나는 하늘의 개시다. 속으로 박수를 치며 비명을 질렀지만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럼 그 반으로 3개월로 등록해주세요."
경험 삼아 한 달만 등록하려고 했던 처음의 계획은 오늘 아침의 광경을 보고 나서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뀌었다. 카드를 내밀며 과감하게 결재를 했다. 역시 돈 쓰는 맛이 가장 짜릿하다. 그리고 나의 앞엔 더 큰 짜릿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으니 그에 맞는 T.P.O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인터넷으로 온갖 수영복을 구경하며 장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운동은 장비 빨'이라는 말을 그 누구보다 성실히 실천했다.
'띵동' 경쾌한 문자 알림 소리가 들린다.
'고객님의 소중한 상품이 도착되었다는 소식을 알립니다.'
하나 둘 집으로 도착하는 택배를 보니, 설렘이 배가 된다. 이미 마음만은 물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선수나 다름없다. 오늘까지는 상상 속의 나를 만끽하기로 해본다.
침대 옆 차곡 차곡 샇아둔 수영복 가방을 보며 눈을 감는다. 내일은 다섯 시에 일어나 수영에 가야 하니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 어떤 날들이 펼쳐질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새로움에 대한 두근거림을 느낄뿐이다. 팔딱 팔딱- 물고기마냥 가슴이 뛴다.
뭐든, 처음은 신나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