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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Jul 20. 2023

어둠을 마주하는 일

고백록


“구겨지고 망가진 나를 본다. 끊임없이 나를 들쑤시고 해체하며, 들여다 보기를 반복한다. 그러고는 아주 잠시 작은 빛을 본다.”


지금껏 삶을 이토록 다채롭게 느끼며 살아간 적이 있었나 싶다. 매일 같이 울며 내 안에 어둠을 이토록 고통스럽게 마주한 적이 있나 싶다. 수치스러울 정도로 내 안의 두려움이 이렇게나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적이 있나 싶다.


그리하여, 요즘 내 생의 밤은 유독 길다. 좀처럼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물리적인 시간 속의 어둠이 아닌 삶에서 마주하는 어둠이, 참으로 길고 깊다. 이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변태 變態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애벌레가 고치가 되어 나비가 되듯. 모든 생명이 생명으로 존재하기 위한 고군분투함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치열함 속에서 살다 보면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순간들이 연달아 휘몰아칠 때가 있다. 해일이 치듯,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면 물을 잔뜩 먹고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여전히 여물지 못한, 단단해지지 못한 나를 본다.


온몸으로 거대한 파도를 견뎌내듯이 수시로 휩쓸리고, 넘어지고 부딪히기를 반복했다. 멈추지 않는 파도 가운데, 놓아버리고 싶은 것과 놓아서는 안 되는 그 사이에서 쉬지 않고 줄다리기를 했다. 그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제발 그만하자고, 제발 그만 보여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면서 지금 겪는 깊은 고뇌와 깊은 절망을 나는 왜 마주 있는 걸까 하며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다.


참으로 쉽지 않다. 삶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 않는 이유는 그런 고통에서 한참을 몸부림치다 만나는 아주 잠깐의 자유 때문이다. 내 안에 실낱같이 빛을 발하는 사랑을 택했을 때 그렇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무섭다. 기꺼이 사랑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해서 내 안의 용기를 부르는 일이다. 제발, 조금 더 힘을 내어달라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의미를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삶은 결코 어둠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폭풍 속의 고요와, 달콤함 속의 씁쓸함과 슬픔 속의 기쁨이 함께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신기하게도 누군가의 어둠이, 누군가의 절망이 눈에 보였다. 그제야 알았다. 생이 한가운데서 거센 파도를 겪으며 길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슬픔을 느끼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먼저 그런 것들을 온몸으로 경험해야만, 누군가의 깊은 아픔과 절망을 보며 그들의 삶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는 그 속에서 진정한 사랑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감격이, 그 풍요가 모든 것을 이해하게 했다.


삶은 결코 하나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이 치열한 고통 가운데서도 아주 잠시 마주하는 그 기쁨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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